어릴때 내가 아프다고 하면 '학교가기 싫어서 꾀병부리는거지?'라고 부모님이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친구들에 비해서 아프다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아서 그래도 아프다고 하면 귀담아 들어주셨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아프다고 이야기 하지 않았던 것은 안 아팠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아파도 학교에는 빠져서는 안된다'는 엄한 가르침 때문이였다. 덕분에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동안 결석을 해본적이 없다. 총 12년간 결석이 없다는 것은 이상한 것이다.


아픈 사람에게 대한 시선이 왜곡되는 때가 있다. 자녀가 아플때나 부하 직원이나 동료가 아플때, 며느리가 아플 때, 학생이 아플 때 다양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시부모님은 며느리가 명절 때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하면 ' 평소 몸관리를 잘해야지 명절때 아프면 어떻하냐'며 타박하는 경우도 있다. 병원에서 보면 명절 때 입원한 며느리들이 맘 편하게 누워있지는 못하는 것 같다. 물론 반대로 명절때 입원을 선호하는 일부 며느리도 분명 있기는 하지만..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양호실을 애용하는 학생들도 있기는 하지만, 왠만큼 아파도 학교는 나와야한다고 생각한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몸이 아파도 직장에서 장렬히 쓰러지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다들 병원에 올 시간이 없다고 한다. 몸이 아픈데도 말이다. 내가 아픈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난 아팠지만 직장 또는 학업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몇일째 심한 감기로 고생하는 은행 창구 직원분에게 좀 쉬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하자 감기가지고 쉬는 것은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전공의로 근무하면서 '입원할 정도가 아니면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온 것 같다. 의사니까 입원해 있는 내 환자를 생각하면 아파도 일하는 것이 '미덕'이자 '의무'기도 했던 것 같다.


한 사람이 쉬면 다른 사람이 대신 일해야하는 대부분의 직장에서 보이지 않는 눈치가 존재하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병가'를 쓰는 직원은 경영자나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 아플 때 쉬는 것은 권리인데도 말이다.


이렇게 아파도 직장을 나가고 학교를 나가는 사람이 많다보니 직장과 학교가 끝나고 병원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의원들도 외래시간을 저녁 늦게까지 연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입장은 아니지만 간혹 보면 쉬는 것이 여러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


눈치가 보여 출근했다는 은행 직원의 경우에는 감기가 나을 때까지 다 쉬는 것까지는 불필요하겠지만 하루 정도 집에서 푹 쉬고 요양하는 것이 회복도 빠르고 타인에게도 낫다는 거다. 콜록거리면서 민원인을 만나는 것이 실례라는 생각도 해야한다. 옆 동료에게도 마찬가지다.


어린이 집에 다니는 아들은 매일 감기에 걸려온다. 어린이 집에 오는 아이들 중 상당수가 감기에 걸려 있다. 감기에 걸린 아이들은 보내지 않는 것이 다른 아이들에게 더 좋겠지만 맞벌이에 시달리는 부모 입장에는 그러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이런 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아플 때 쉬는 것은 기본적인 권리이다. 사람들 앞에서 콜록 거리며 있는 것은 손님이나 동료에게도 실례일 뿐이지 미덕이 아니다. 이러한  경우 쉬는 것이 노동력 상실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빨리 회복하게 해서 일의 효율을 더 높이고 다른 직원에게 전염의 가능성도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을 바꿔야하지 않을까. 아픈데도 병원에 올 시간이 없다는 환자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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