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역할에 대해서는 의과대학에서도 배우고 평생 의사로 살아가면서 고민하게 되는 주제인 것 같다. 최근 BMJ에서 Editor가 뽑은 주제로 Role of the doctor가 있었는데 많은 의사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의사의 역할에 대해 의견을 내놓았다.


의사의 변하지 않는 역할은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한다는 것이다. 이 것은 의사의 핵심 역할(core role) 이고 앞으로도 이 부분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핵심 역할만 가지고만 생각해도 의사란 직업은 인간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전문가로써 환자를 기쁘게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충고나 해야할  것들을 말해야할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옳은 일(right thing)을 충고하는 선생님(teacher)의 역할과 중복된다고 하는 견해들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 의사의 사자를 스승 사(師)를 쓰는 것 처럼 해외에서도 teacher의 역할이 의사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의견들도 볼 수 있었다. (BMJ는 영국에서 발행되는 의학저널로 대부분의 경우 영국의 의사들의 의견이다.)


의사의 핵심 역할이 건강을 위한 옳바른 충고인데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힌다. 흡연을 30년간 해온 사람에게 "지금이라도 금연하십시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도 않고 마음에 와닿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기 싫은 소리를 계속 해야하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고 이를 사랑에 표현하면 "tough love"에 해당된다고 하는 의견들도 있었다.


환자에 대해 언제든 듣기 싫은 충고를 할 마음의 준비가 되있는 의사야 말로 좋은 의사다. 또 의학적 충고를 귀담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야 말로 건강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나 역시 여기 포함된다) 의학적 자문에 대해 소홀히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최선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귀담아 듣지 않고 처음 부터 차선을 요구한다. 금연하지 않고 혈압약을 증량하거나, 식이 조절을 하지 않으면서 약으로 살을 빼려고 한다.


또 아플때 쉬라고 권해도 대부분의 경우 쉬지 못한다. 아플 때 병가 내고 쉴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 안된 것도 큰 이유다. 이 부분은 개인의 잘못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아직 선진국이 되지 못해서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맞는 것일 수도 있다.


상황은 웰빙(wellbeing)이라는 유행에 의해 더 왜곡되어졌다. 웰빙은 건강함을 뜻하는 것이고 웰빙 센스(wellbeing sense)는 건강한 느낌을 의미하는 것인데, 실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과 식이조절을 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일부 있었으나 대부분 건강을 구입가능한 상품으로 인식하게 만들어버렸다.


이러한 시대 흐름에 맞춰 의료도 질병의 치료와 예방의 핵심적 기능에 제한을 두지 않고 웰빙의 시장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환자들은 개인적 이득을 위한 것들과 (예. 태반주사, 마늘주사, 보약, 건강식품들...) 의학적 근거에 입각한 치료를 구별하기 더 어려워하는 것 같다. 병의원뿐 아니라 약국, 한의원들도 웰빙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고 의료 시장 자체가 웰빙의 영역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한다.


의료 시장이 이렇게 변화되다 보니 의료 시장(?)은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딱히 좋은 해답은 주지 못하고 있고, 정치가들은 세금으로 안하니만 못한 생색내기를 하기 일쑤다. 건강에 대해 오해와 편견이 난무하고 의학과 의료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더욱 낮아지고 궁극적으로는 잘못된 의료, 건강 관련 지출이 늘어나고 질병의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나 치료제로 시간을 허비하기 쉬워졌다.


보기 싫은 것이 많은 세상에 눈을 감고 내 할일만 열심히 하겠다는 의사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때이기도 하다. 지금 의사가 의료 전문가로써 해야할 일은 옳바른 선택을 위한 정보 제공이 아닐까? 의료 시스템을 고칠 수는 없지만, 건강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리는 단초는 제공할 수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