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중년 남자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왔다. 추레한 차림새를 한 환자는 의자에 앉자 양말을 벗었다. 오른쪽 발등이 많이 부어 있었고, 숨을 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발가락이 썩는 냄새가 났다. 진단을 내릴 필요도 없다. 보니 당뇨발(DM Foot)이다. 먼저 발가락뼈의 손상이 없는지 엑스레이 사진부터 찍었다. 사진에는 새끼발가락이 이미 상해있었다.

“아니, 이리되도록 병원에 한 번 안 가셨나요?” “저는 8년째 노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당뇨 합병증으로 발가락이 상하고 피부가 썩고, 염증이 발등까지 부어올랐으니 입원치료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혈당 재어보신 적이 언젭니까?”
“6개월이 넘었어요. 당뇨약을 먹지는 않았고요. 하이(High, 혈당체크 불가)로 나왔어요.”
“입원을 해 드릴 테니, 가족이나 친척에게 연락하세요. 치료비 걱정은 마시고.”

올해 55세인 환자의 말은 이랬다. 아내와 이혼하고 노숙한지가 8년째란다. 주로 어디서 잠을 자느냐니까, 토성동 부산대학병원 지하도에서 잔다고 했다. 부산대 응급실에 들어갔다가 쫓겨나고를 되풀이한다고. 구걸하여 몇 푼 얻으면 찜질방에도 가기도 하고. 환자는 알겠다며 보호자를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다음날, 그 다음 날도 환자가 오지 않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다시 안 오면 어떡하지?


플라치도

얼마 전 대한당뇨병학회에서는 국내 당뇨병 환자 3명 가운데 1명이 발이 썩어들어가는 당뇨병성 족부궤양(당뇨발) 발병 가능성이 큰 '당뇨병성 신경병증 통증'을 앓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발의 말초신경이 손상돼 극심한 통증이 발생하는 당뇨병성 신경병증 통증을 버려두면 당뇨발로 악화돼 발이나 발가락을 절단할 수 있다. 당뇨병성 신경병증 통증 유병률이 33%에 달해, 당뇨병 합병증으로는 눈의 망막 이상(34.4%) 다음을 차지했다. 그만큼 당뇨합병증 중에서 가장 비참한 합병증이 바로 당뇨발이다.

이틀 전, 환자가 보호자를 데리고 왔다. 아들과 함께. 며칠 사이에 염증은 더 진행되어 종아리까지 벌겋게 부어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더 이상의 애증도 없다고 했다. 입원 절차를 마치고 병실에 갔더니, 아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수녀의 말로는 환자가 사관학교 출신이라고 했다. 얼굴도 잘 생겼고 번듯한데 이혼을 왜 했을까? 아내는 모 교회의 집사라고 했다. 자세한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이혼하고 거리의 남자가 된 남편을 두고 교회에서 기도하면 마음이 편할까? 하루 항생제를 투여했는데, 장딴지의 염증은 가라앉았다. 날도 추운 겨울철이다. 노숙자들이 아프지 말고 온전히 겨울을 날 수 있기를 바란다./플라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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