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1월 1일부터 의료기관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이 감염성 폐기물의 명칭이 의료폐기물로 명칭 변경되고 격리의료폐기물, 위해 의료폐기물, 일반의료폐기물로 분류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내용이 담긴 기사를 읽다 보니 의료폐기물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갑자기 떠올라 몇 자 적어봅니다.


외과계 전공의들이 실수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일들이 있습니다. 실수 대신에 펑크라고 은어적으로 표현을 합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수술 스케줄 펑크내서는 안됩니다. 큰 대학병원들은 정해진 시간 내에 다음날 수술 스케줄을 컴퓨터로 입력해야 하는데 정해진 시간이 넘어가면 수술 스케줄을 올릴 수 없습니다.


두 번째로 수술실에서 조직을 분실해서는 안 됩니다. 스페시멘(specimen)이라고 부르는데, 번역하면 조직 표본을 뜻합니다. 수술을 마치고 난 적출물들은 해부병리실로 옮겨져 조직검사를 하게 됩니다. 환자의 이름과 병원 번호 등을 라벨링 해서 병리검사실로 넘기는 일이 외과계 1년차가 하는 실수 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입니다.


그 외에도 당일 입원 병실 확보와 입원할 환자의 병력 파악과 필요 시 협진을 통해 수술 가능하다는 마취과의 확답을 받는 일등 의사면허를 따기 전에 꿈꾸던 의사 생활과는 다른, 사실 전혀 의학적이지 않은 일들이 실수해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 던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들이기 때문에 의사가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찌 되었든, 저 역시 위에 이야기한 모든 실수를 병원에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동안 다 해봤습니다. 때로는 병실을 구하지 못해 원무과 앞에서 환자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도 숙여봤고, 입원하러 온 환자가 아스피린을 복용해서 긴급 퇴원도 한 적이 있었고, 수술 스케줄을 올리지 않아 마취과와 수술방에 피자 20-30판도 돌려봤고, 수술 환자 금식 처방을 하지 않아 다음날 수술을 오후로 미루기도 해봤습니다.


그 중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했던 것은 조직(specimen)의 분실입니다. 수술을 마치고 나면 적출물이나 생검을 한 조직을 따로 두는데 큰 적출물이야 청소하시는 분들이나 함께 수술실에 있는 간호사, 의사 모두 중요한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고가 나는 것은 아주 작은 조직입니다.


하루는 환자를 회복실로 옮기고, 수술 후 처방을 내고 수술실에 다시 들어와 보니, 이미 청소도 끝나있고 거즈 위에 올려놓은 조직도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고년차 선배에게 혼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수술한 환자가 양성인지 음성인지 판단하는 중요한 검사였기 때문에 의료폐기물을 수거해간 청소 아주머니를 찾아 몇 시간 동안 거즈 하나 하나를 펼쳤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밤 늦게 조직이 들어있는 거즈를 찾았고 윗년차 선생님에게 무척 혼났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났습니다. 이후에 제가 고년차가 되었을 때 입에 밴 말이 'specimen 챙겼냐?' 였습니다. 아마 지금도 조직을 챙기는 일은 전공의 저년차가 할 겁니다. 후배들은 '뭐 그렇게 못미더워 하나' 싶었을지 모릅니다만, 과거에 했던 실수에 대해서는 편집증 환자처럼 확인하게 되더군요.


이와 같은 실수들을 정리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병원에서 생기는 일들에 대해 더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메디컬 드라마보다 더 실감나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죠.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전공의 선생님들, 오늘도 무사히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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