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소화기내과를 전공하고, 담도내시경(ERCP) 등의 고위험시술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술은 많은 수에서 그 대상이
암환자들입니다. 주로 담도암과 췌장암환자가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암은 대부분 말기에 진단됩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이런 암의 특징이 수술이 가능한 시기를 넘겼거나, 수술을 하여도 재발하는 경우가 많고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의 효과가 아주 낮습니다. 그래서 이 중 많은 환자분들이 진단 후 여명이 길지 않습니다. 근무하는 곳이 지방에 있는 종합병원인데, 아무래도 암이란 말씀을 드리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아가 다시 검사를
하십니다.


그러나 항암치료도 해보고, 수술도 해보고, 그러다 지쳐서 원래 사시던 곳으로 돌아와 다시 저에게 치료 받으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죽음이 가까워 지면 돌아온다... 때로는 제가 있는 병원이 코끼리의 상아무덤과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입니다.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삶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스피스는 암환자와 가족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또 호스피스에 대한 관심은 의사나 간호사나 일부 관심있는 사람만이 아닌 국민 모두가 학교에서 받아야할 교육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암환자를 포함해서 여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있는 환자분들에게 각별히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저역시 그러한 경험을 여러 차례 했기때문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진짜 환자가 아닌 나이롱 환자는 사실 좋아하지 않는 오만함(?)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살면서 7번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4번은 의과대학을 다닐 때였고, 3번은 의사를 하면서 겪었습니다. 이중 상당한 수의 수술은 죽을 고비에서 한 수술이였으니 저나 저의 가족이 겪은 고통은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 중 최근의 수술은 암수술이었고, 항암치료까지 3회 받았습니다. 이제 수술받은지 만 3년이 되었으니 앞으로 2년만 더 검사하고 기다리면 완치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모든 항암치료가 쉬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최고 용량의 VEP(vincristine, bleomycin, cisplatin)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항암제 중에 꽤 견디기 힘든 것입니다. VEP 중 cisplatin 이 녀석 덕분에 모든 항암치료의 부작용을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림프암이나 폐암환자 항암치료와 동일 용량, 동일 기간 투약을 받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본 의사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경험 덕분에 많은 환자분들이 하는 행동들, 의사들이 때로는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을 하는 것을 이해하고 저도 사실 일부 그렇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자세히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꼭 죽을 고비를 넘긴 환자가 되본 경험 때문은 아닙니다만, 기왕이면 중환자 진료하는 것을 좋아 합니다. 그리고 호스피스에 관심에 관심이 많습니다. 정말 관심과 대화가 필요한 환자분 들입니다. 이 환자분들을 위해 진료하는 것이 보람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병원과의 마찰도 생기기도 하네요. 오전 외래에서 진료하는 환자의 수가 40명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한번에 40명 이상은 진료를 해야지 밥값을 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년 먹던 혈압약 반복 처방 받으러 오는 환자들을 포함하여 80-100 명을 진료하는 의사를 본받으라고 이야깁니다. 비단 제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비교당하는 것 뿐 아니라, 다른 병원의 어떤 의사는 그것보다도 더 빨리 환자를 진료한다고 비교를 당하기도 합니다. 아마 의사들도 이런 스트레스를 위에서 받는 구나 아셨던 분은 그리 많지 않으실 겁니다.


제 환자 중에는 얼굴도
안보고 약만 반복처방해달라는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증상이 없는 혈압이나 당뇨 등의 질환의 환자분들이 아니라, 통증과 증상이 있어서 찾아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오전 외래에 찾아온 환자 중 10여명은 생전 처음 보는 환자들이며 배가 아프다고 오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30명가량은 배가 계속 아파서 진료 받으러 오셨거나, 또는 암환자들입니다. 모두 진찰이 필요한 분들입니다.


청진기 대 보고 손으로 배를 만져보기만 하려고 해도 최소 몇 분의 시간이 흐릅니다. 거기에 증상 이야기만 물어보고 듣는데도 몇
분이 흐르죠. 진료실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만 해도 30초는 될 것이며, 대부분 노인환자, 또는 암환자라 걸음이 느리거나 휠체어를 타면
1~2분이 걸리기도 합니다.


병원 측의 요구대로 하려면 대충 계산해 보아도, 한 명당 실제 진료시간은 평균 3분미만으로 진료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아니, 보통의 환자 진료는 1분 내로 마쳐야만, 할 이야기가 많거나 증상이 복잡한 환자를 5분이라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미 저도 현실에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하루에 청진기를 드는 횟수가 줄어드는 것 같고 갈수록 말은 빨라지고, 집에서
아이들과 대화도 빠르게 하는 습관이 배어 버렸네요. 오늘도 무언가 물어보려는 표정이지만, 내가 차트를 접고 다음에 오세요라고 말하자, 떨떠름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말기 암 할머니의 표정이 자꾸 생각이나서 오후 내내 기분이 씁쓸합니다.


병원평가다 뭐다 해서 의사의 친절 만족도를 설문조사한다고 친절하라고 합니다. 물론 친절한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양심적인 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야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려면 진료시간을 늘리면 해결될까? 퇴근을 늦게 하면 해결될까? 그럼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하고 얼마나 근무시간을 연장해야 해결이 될까? 그럼 입원환자는 언제 회진 돌고 면담해야할까? 이런 고민들이 머리속에서 떠 다닙니다. 술도 끊고 사회생활도 하지 말고, 금욕생활하며 스님처럼 살면 조금 해결될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일 전 '뉴하트'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자를 위해 잠을 줄이고, 가정생활을 희생하면서까지 병원에서 먹고살며 진료하고, 추가로 연구하고 논문도 쓰는 생활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그리고, 누적된 피곤 속에 실수를 안 할 철인이 있을까? 정신없이 많은 환자와 대화를 나누고 판단을 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얼마나 더 발생할까? 일부 대형병원이나 국립대병원의 교수들은 레지던트와 전임의들의 희생으로 어느 정도 가능은 해왔습니다만, 그러한 것도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를 일입니다.


"선생님은 너무 많은 외래환자를 진료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입원환자와 위험한 시술 또는 수술환자가 많습니다. 환자와 선생님 모두를 위하여
진료환자의 수를 줄이세요. 당장은 선생님이 돈을 많이 벌어주셔서 병원경영의 입장에서는 감사하지만, 멀리 보면 선생님이 오래
버티기 힘들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모든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가 어려워집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대한민국의 병원은 존재할 수 없을까요? 아직 우리의 현실로는 불가능합니다. 제가 경영자 입장이 되보면 저역시 그들과 똑같은 것들을 요구할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잘못된 진료 환경의 근본적인 문제는 결국 터무니없는 싸구려 진료비 탓에 이런 현실이 생겼다로 회귀됩니다. 이제는 지겹게도 또 밥그릇, 돈 문제로 매도당할 것이며, 혹자는 '인술'을 운운하며 추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할 겁니다.


저를 수술하고 항암치료하고 재발여부를 추적 검사해주는 선배의사들도 같은 고민을 해왔을 것입니다. 저보다 10년은 먼저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왔겠지만, 결국 선배 의사들도 3분 진료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아직도 대한민국 대학병원의 교수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병원에 수익이 되지 않는 교수들에 대한 압박도 상당하니까요. 저역시 3분 진료를 선택해야하겠지요.


내가 아플 때 궁금했던 것이라도 이야기해 줄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 환자로 느꼈던 절실했던 생각을 실현하는 것은 결국 공상으로 끝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져갑니다. 이런 고민에서 탈출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예전 제 블로그의 익명의 댓글 처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했듯 한국을 떠나야 하는 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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