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ing back to my dreamspace

요즘 난 지금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이곳에서 늘 화두가 되는 인간적인 의료에 대한 내용도 그렇고,
1년 뒤에 면허번호에 피도 마르지 않은 상태로 의료계에 던져졌을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뭐, 굳이 무슨 과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도 하게 되고
아무튼 잡생각이 많아지는데
그 잡생각의 공통분모는 뭔가 새롭고 싶다는 욕구... 그렇게 밖에 표현이 안 된다.^^;

누구나 '꿈'은 있다.
나는 자발적으로(그렇게 유도되었을 수도 있지만 ^^;) 의대를 들어갔고 예과 1학년이란 이름표를 달았다.
뻔한 질문에 대한 대답인 '어떤 의사'가 될 것인지에 대한 꿈도 나름 있었고
또 난 글 쓰는 것과 그림 그리는 것을 아주 좋아했었다.
글을 잘 쓰고 싶었고, 그림도 잘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나의 '일'에 활용하고 싶었고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로 삼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반짝거리는 마음은
'남들 다 하는 것이 최선'이라 외치는 본과 생활과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시나브로 믿게 되는 사회화(?) 과정을 통해 어느덧 희미해져갔다.
그런 가치관이 극에 달하는 병원실습 1년까지 지나자
나는 내가 글 쓰는 거랑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는 사실조차 기억이 안 날 만큼 팍팍해져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글과 그림으로 공책 몇 권은 순식간에 채울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효율적이고 이해가 빠른 필기를 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게 돼버렸다.
개인적으로 쓰고 있는 글도 있었지만, 참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쓸게 없다는 생각만 들다보니 재미가 없어졌다.

선택실습에 대해서도 사실 별 포부는 없었기에 첫날 글을 올리기 전에는 딱히 블로그를 찾아보지도 않았었다.
그런 내게 제닥 실습에서 가장 큰 쇼크였던 건
글을 올리면서 쭉 훑어본, 블로그에 선생님들이 올리시는 글과 그림이었다.
아, 어렸을 때 나도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었는데........
글과 그림으로 시작된 꿈에 대한 회상은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 하는 의대 입학 면접에서 '사람이 아프면 심한 질환이든 사소한 감기든 간에 어리광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관심과 위로를 필요로 하게 된다. 나는 환자에게 마음을 다해 걱정해주고 대화해주고, 웃어줌으로서 그 요구에 응해주고 싶다'고 말했던 기억까지 이어졌다.
난 교수들 앞에서 내 입으로 저런 말까지 해놓고, 잊고 살고 있었다.
저 말이 의사에 대한 로망만 잔뜩인 그냥 열아홉 짜리 어린애니까 할 수 있는 현실성 없는 말이었을까?
제닥에는 그에 대한 나름 현실적인 답도 있었다. 공허한 꿈이 아니고 현실이었다.

글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특유의 표현법, 삼십분 진료...
내가(그리고 사실 이쪽 길을 걷는 사람이면 한번쯤 생각해봤을만한) 그저 생각만 하다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을 하나하나 현실에서 만들어나가시는 모습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김쌤은 생각을 많이 하다보면 현실화시킬 수밖에 없다고 간단하게 말씀하셨지만, 사실 절대 간단한 시도가 아니니깐...

더 영영 까먹기 전에 remind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도 뭔가 한가지쯤은 creative해질 수 있었으면 하는 새로운 욕심이 생긴다.
나만의 포인트가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고
그게 '의사'인 나만의 행복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building rapport


나는 동물을 무서워하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만큼 민감해서, 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지 않고서도 개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다.
(동물의 발톱과 아스팔트가 긁히는 아주 작고 미묘한 소리를 캐치하면 나도 모르게 걸음걸이가 빨라지고 교감신경이 항진되며 돌아갈 길을 찾게 된다)
고양이가 네 마리나 되는 제닥은 사실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진짜 내겐 큰 도전이었다.

첫날은 "아, 날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날 없는 걸로 생각해줘... 하고 눈이나 간신히 마주치는 정도였고

다음날부터 아주 큰 용기를 내어 손을 뻗어서 살살 쓰다듬을 수 있게 되었고

3주차인 지금은......


- 바둑이
서열 1위답게 도도하다. 새하얀 털 때문인지 누워있거나 걸어가는 옆모습이 참 예쁘지만 표정은 늘 찌뿌둥하다.
제닥의 공지를 전하는 차도냥이.
지나가다가 날 보면 내 다리를 한번 '슥' 부비고 본체만체 지나간다.
환자가 있건 없건 원장쌤이 있건 없건 늘 진료실에 상주하며
옆에 다가가서 손을 내밀면 의외로 까칠한 혓바닥으로 손을 쓱 핥고 만다.
막 핥다가 아주 살짝 깨물기도 한다.
난 ‘우리 나름 친해졌구나.’ 라고 자의적으로 막 해석하고 뿌듯해하는 중이다.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고양이의 정의에 가장 들어맞는 아이-

- 나비
아침에 제닥 문을 열고 들어오면 깜짝깜짝 놀랄 위치에 앉아있는 나비
내가 쓰다듬어주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지만
자기가 기분이 좋을 때는 상당히 앙탈을 부리는 듯하다.
소리까지 내며 마구 털을 묻히며 부비부비를... 넷 중에선 가히 앙탈 종결자!!

그리고 그 앙탈에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는 걸 요 며칠에야 알게 되었다 ㅋㅋㅋ



절대 성공하지 못하지만 오늘도 포기 못하고 간식서랍 근처를 배회하는 엄청난 집념.
나는 그 집념을 숭고하게 봐주진 못할망정 장난을 치고 말았다.
서랍을 슬슬 열다가 나비가 눈을 빛내며 달려들면 콱 닫아버리고.
그런 낚시질을 몇 번을 반복하자 나비가 화가 난 모양인지
순간 손바닥으로 달려들어 콱콱콱! 물어댔다.
어이쿠, 고양이는 육식동물이라는 사실이 상기되었다. 제법 아프다. 사실 지금도 쬐끔 아프다.
나비! 미안해ㅠㅠㅠㅠ 그런데 너의 리액션이 너무 재밌어. 어쩔 수 없어... 내일까지는 괴롭히지 않을게. 모레부터는...?

- 순이
한결같이 내 손길을 거부하고, 아는 척도 안하고,
바둑이처럼 모르는 척 스윽 부비고 지나가는 것도 없고....
우리 다음주까지는 친할 수 없을까? ㅠ

- 복실이
혼자 노는 걸 좋아하나보다. 확실히 어려서인지 장난감에 반응이 크다. 폭신한 자리는 형아 누나들에게 뺏기는 건지 늘 스크래처 위에서 자고 있고, 주로 구석진 곳에 숨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장난감만큼 나도 좋아해주면 좋겠는데, 순이가 그렇듯 딱히 아는 척도 안 하고 늘 자기 세계에 빠져있다.
지금 열독중에 있는 '동물의사 닥터 스쿠루'의 우루시하라 교수처럼 먹을 것으로 유인하는 게 답인 걸까?ㅠㅠㅠㅠ


오늘의 실습이 끝나고 홍대입구로 걸어가는 길
등 뒤에서 어떤 강아지가 달려와서 내 옆을 지나 앞을 향해 달려갔다.
예전 같았으면 뒤돌아보지도 않고 바로 걸음이 빨라졌을 상황인데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고, 옆으로 지나가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 친구들이랑 라뽀를 더 쌓으면 나의 동물공포증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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