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학생 일기를 쓴 지 벌써 두 주나 지났다니, 시간 참 빠르다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이토록 오랫동안 일기장을 비워놓다니!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오리엔테이션 때를 복기해보면 선생님께선 분명 학생들끼리 돌아가며 하루에 하나 정도는 쓰라고 반강제적이며 동시에 부조리하며 또한 별로 안-진지한 압박(...)을 주셨는데 말입니다. 이래저래 컴퓨터 쓸 시간이 다름 풍족하지만 풍요 속에 빈곤이라고 일기를 끄적거리는 건 습관이 안 되어 있는 모양인지 말처럼 잘 되지 않네요.

어쨌거나 시간이 시나브로 두 주나 흐르는 동안, 전 일단 난생 처음으로 여초 집단에서 생활하는 기묘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걸 먼저 지적하고 싶습니다. 두 명의 예쁜 여학우와 시간을 보내며 실습 과정에 참여하고, 김제닥 선생님을 제외한 모든 선생님이 여성이라는 상황 -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 들어와서까지 한 순간도 퀴퀴한 남초집단에 속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대체 이게 웬일이랍니까. 샤방샤방한 병원의 분위기처럼 집단 구성원도 여성분들로 샤방샤방하게 구성된 게 아주 아주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그러니까 김 선생님만 어떻게 좀....).

물론 그 동안 주변 사람의 성별만 분류하며 지낸 건 아닙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훨씬 더 많은 일과 계획과 과정이 준비된 것이 제너럴 닥터였습니다. 선배들의 말이나 바로 앞에서 지나갔던 사람들의 말만 들어서는 정말 '조용하고' '목가적인' '휴식의'라는 표현밖에 들리지 않았는데, 정작 와보니 뭐...여기가 이렇게 회의하고 회의하고 또 회의하는 곳인 진 몰랐답니다. 물론 저희가 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가장 큰 탁자엔 손님이 와서 쓴 기억이 3주 동안 겨우 한 번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정도로 열띠게 이것저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가깝게는 오늘 저녁에 창립회를 여는 생협 구성을 위한 회의라든지, 제닥의 철학에 대한 티칭이라든지, 학생들끼리 가정의학에 대한 인트로를 공부한다든지 하는 일은 눈코 뜰 새 없이 계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논의할 게 많나 싶었을 정도로 말입니다.

게다가 계속해서 특이한 만남이, 조우가 이어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일단 지금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드라마 '의과대학' 팀에서 제닥을 찾아온 것! 작가 두 분과 실습 과정이 끝난 시간에도 학생 셋과 (김 선생님과 정 선생님이 아닌) 선생님 두 분이 머리를 싸매고 드라마의 의학적 자연스러움, 의대 문화 및 병원 문화 묘사의 자연스러움을 확보하기 위해 분주하게 브레인스토밍을 한 기억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밤 12시가 넘어서 고기 집에 가서 뒤풀이한 기억도 그렇구요. 혹은 제가 바로 전에 돌았던 '청년의사'에서 학생기자로 있었던 동안 취재했으면 좋았을, 그리고 실제로 현재 실습을 돌고 있는 친구들이 취재한 나노-IT융합의학 국제세미나에 참석한 것도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이제 제닥에서의 실습도 후반부에, 마무리에 접어들었습니다. 저도 슬슬 이 곳 시기를 갈무리해가며 보고서를 쓸 준비를 해야 하고, 길었던 특성화 시간을 접을 준비를 할 때가 되었네요. 개인적으로는 이사도 하고 기숙사에 들어가며... 이래저래 전환기입니다. 이걸로 제닥 일기를 마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마지막 일기를 쓸 때쯤에는 이곳에서의 소회를 표현할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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