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환선수의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소리가 기억납니다. 대한의 장한 아들이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는 경기가 생중계되는 날이면 온 국민이 라디오 혹은 텔레비전에 매달려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빈민촌에서 근근이 먹고살던 4회전 복서 로크 발보아의 챔피언 도전 실패와 성공담을 담은 권투영화 <로키>에 환호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선수가 열세에 몰리다가 경기를 뒤집어 승리를 거머쥐는 장면을 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동이 솟구쳐 오름을 느끼게 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렵게 살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권투는 배고픈 자의 운동이라고 합니다. 그런 때문인지 요즈음에는 우리 권투선수가 챔피언 전을 치루어도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생중계를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합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던 우리 경제가 수렁에 빠졌던 IMF사태 이후 힘겹게 회생의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미래가 불투명한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옛날 개천에서 용난다는 이야기를 흔히 들었지만, 세상이 바뀐 탓인지 그조차도 듣기가 쉽지 않은 세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경을 뚫고 성공을 거머쥐는 인생반전의 스토리는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 <로키> 시리즈가 고독한 권투선수의 성공담을 담은 영화였다면,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데이비드 러셀 감독의 <파이터>는 권투를 소재로 하여 인생을 반전시킨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미키 워드(마크 월버그 扮)와 디키 에클런드(크리스찬 베일 扮)은 복싱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매니저를 맡고 있는 어머니 엘리스 워드(멜리사 레오 扮)가 독단적인 매니지먼트 때문에 희생되어 바닥인생으로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엘리스 입장에서는 아들 둘과 딸 일곱을 합쳐 열둘이나 되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파이트머니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무리한 대전도 불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디키는 엘리사의 투자와 기대에 대한 지나친 부담감을 떨치지 못해 전설의 복서 슈가 레이 레너드를 다운시키고도 챔피언에 도전도 못해보고 스러져가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세 번의 기회가 온다는 말처럼, 미키는 사랑에 빠진 단골술집 바텐더 샬린(에이미 아담스 扮)의 출현과 아버지의 결단으로 “우린 가족이잖아.”라는 말로 포장해서 그동안 자신의 발목을 잡아온 어머니와 디키로부터 독립해서 챔피언에 도전하는 기회를 잡게 됩니다. 흔히 가족들 간의 갈등이 생기면 그 울타리를 뛰쳐나가는 방식을 선택하기 마련입니다만, 이 영화에서 디키는 스스로 먼저 변화하고 미키를 위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진정성을 보임으로써 팀을 이루는 장치로 가족의 힘을 견고하게 만들어내는 모습이 참 보기에 좋습니다.

경기에 나섰다가 패하거나 디키의 전략을 받아들여 아무도 예상 못한 승리를 얻게 되는 과정에서 복싱경기장의 열기는 다른 복싱영화보다는 다소 처지는 듯 한 느낌을 받습니다만, 일방적으로 몰리면서 챔피언의 힘을 빼다가 막판 반격에 나선다는 전략은 관객에게 감동의 쓰나미를 몰아다 주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형 디키의 수상스러운 행적은 영화 후반부에 드러나게 됩니다. 사실 영화는 방송국에서 디키의 컴백과정을 취재하겠다며 접근해서 실상은 마약중독에 빠진 옛날 복싱유망주의 실상을 그려낸 탐사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과정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동생 미키의 트레이너를 맡고 있는 형 디키는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연습에 지각하는 것은 기본이고 시합장소로 가는 비행기 시간이 임박해서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가 사라지면 가족들은 그가 숨어있는 장소로 찾아가는데 그는 2층 창문을 통해서 탈출하지만 꼭 가족들에게 들통 나는 것으로 보아 가족들은 이미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키는 일상적으로 마약 굴에서 마약을 하고 당장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약은 종류에 따라 중추신경을 흥분시키거나 억제시키는 등 작용기전이 다르기 때문에 마약으로 얻을 수 있는 느낌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약효가 떨어지게 되면 도취감, 환각 등이 사라지기 때문에 다시 마약을 하려는 정신적 혹은 신체적 의존성이 생기게 될 뿐 아니라 반복해서 사용하게 되면 같은 정도의 느낌을 얻기 위해서 마약사용량을 늘려야만 합니다.

마약은 한 사람으로부터 인간의 존엄성까지도 빼앗아 갈 뿐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심각한 폐해를 가져오기 때문에 모든 사회에서 이를 금하고 있지만, 독버섯처럼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파이터>에서 디키는 동생 미키의 복싱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체포되어 독방에 수감되면서 심하게 고통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마약의 금단증상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홈페이지 자료를 인용합니다.(
 
영화 <파이터>를 보고 관객에 따라서는 웰터급 세계챔피언에 오른 미키에게 주목할 수도 있습니다만, 제 경우 진정한 챔피언은 디키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어머니의 지나친 관심을 피하려 약물에 빠져들기는 했지만 챔피언에 도전하는 미키를 돕기 위해서 약물을 끊었을 뿐 아니라, 미키의 본격적인 재기를 도와주던 샬린이나 트레이너들이 떠나려 할 때 이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서 진정한 가족애를 볼 수 있었습니다. 디키는 챔피언 미키의 영원한 영웅이었던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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