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만을 위한 천국은 없다. by 장산곶매님

어젯밤 늦게 우연히 본 신문기사에 약간 열(?)을 받아 쓴 포스트가 오랜만에 주목을 받았군요. 한동안 없던 트랙백을 두 개나 받았으니 말입니다..^^ 관심을 보여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먼저 드립니다.

장산곶매님께서 보내주신 트랙백을 찬찬히 여러 번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글에 붙은 덧글과 답글도. 장산곶매님의 걱정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만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나하나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체로 의사들의 시각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현행 건보 체계와 심평원의 진료 개입에 대한 의사들의 불만은 일견 타당한 면이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국민건강보험 체계는 사실 의사들의 상당한 희생을 전제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심평원의 수가 삭감은 의사들의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직업적 자존심을 훼손하는 점이 분명히 있다.

-> 감사합니다. 답답한 마음을 이해해 주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건강 보험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시장주의로의
전환을 요구하지 않는 의사들의 경우 현행 체계의 돌파구로
임의 비급여의 합법화를 요구하곤 한다.

-> 제가 주장하는 바의 "임의비급여를 불법으로 만들지 마라"라는 얘기는 "현행체계의 돌파구"로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임의비급여로 지정되어 있는 부분을 합법화한다고 수익이 창출되리라고 생각하고 쓴 것이 아닙니다. 물론..의사들 중 누군가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임의비급여가 합법화되면 돈을 벌 수 있는 분야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그렇지만 최소한 지금까지 문제가 되었던 임의비급여 문제는 그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환자에게 이익이 되는 치료법이나 기구들을 아예 사용하지 못 하게 하는 것이었지요. 이번 재판에 회부된 "백혈병 환자에게 사용된 최신 치료약"이 그렇고, 제가 절실하게 느꼈던 내시경적 용종절제술이나 내시경적 장천공치료에 쓰이는 헤모클립(http://cheilpkh.egloos.com/1728726) 이 그렇습니다. 돈을 벌자고 합법화하라는 얘기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임의 비급여의 합법화가 환자들을 위한 대안이기도 한 것인가?
임의 비급여의 전면적 합법화를 통해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 날 당신의 부모가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고 해보자.
의사가 말하기를 새로운 표적 항암제가 있는데 그 효과를 확실하지가 않고
다만 10~20%정도의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과연 이러한 치료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 부모가 말기 암 판정을 받았는데 새로운 표적항암제가 있다고 의사가 선택을 하라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 지금은 의사더러 이런 치료법을 아예 하지 말라는 얘기인 것이지요. 표적항암제 값을 받는 것이 불법이거든요. 거꾸로...요즘은 환자나 보호자가 오히려 이런 저런 치료제가 있다던데...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의사에게 물어보기도 합니다. 아...어떻게 해야 할까요? 있기는 있는데..."그 것 쓰면 불법이니, 그리고 나는 불법을 저지를 수 없으니 환자나 보호자에게 그 약을 구해서 맞든 말든 알아서 하세요.."라고 해야 할 판입니다.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쨌든...현대의학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치료법을 (물론 그 치료법의 장단점과 부작용, 비용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겠지요) 소개하고 의견을 말해야 하는 것이 의사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이 점점 확대되기 시작할 것이다.
맹장 수술을 하는데 사용할 실이 하나는 중국제 저가 제품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유력 병원이 사용하는 검증된 제품이라며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 이것 또한..환자의 선택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분명히 좋은 품질의 수술실이 있는데 내가 모르게 저가의 품질이 열악한 수술실을 쓴다면 좋아할 환자가 누가 있을까요? 물론..건강보험공단이 해야 할 일은 적정한 수가의 적정한 품질의 수술실을 선택해서 급여화 하는 것이고..좋은 제품이라고 바가지를 씌우는 파렴치한 의사는 없어야 한다는 전제는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차츰 현행 건강보험체계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이놈의 건강 보험이 돈은 돈대로 걷어가면서 뭐 보장되는 것이 없으니까.

이것이 바로 건강 보험체제 균열의 시작인 것이다.

-> 건강보험체계는 완벽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니즈를 다 들어줄 수 없지요. 그만한 재원이 생길 리도 만무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건강보험은 사회보험으로서 최소한의 의료를 전 국민에게 보장을 하는 것이 그 임무라도 생각합니다. 갑자기 아팠을 때, 수술을 받아야 할 때 공적인 지원을 해 줘서 그 사람이 회복을 할 수 있도록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재정적으로 도와주는 의무를 다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원 포스팅에도 말씀드렸듯이 그 범위를 벗어난 것에 대해서는 의사와 환자 그리고 다른 사회적인 규범에 맡기라는 얘기인 것입니다.   

물론 의사들은 이러한 가능성을 부인하며 본인들의 양심적 판단을 믿어 달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의 양심을 존중한다. 그러나 당신의 친구는, 혹은 당신의 경쟁 병원은?"

어느 분야에도 천사들만 사는 곳은 없다.
당신들만을 위한 천국은 더더욱 없다.

의사들은 이런 의구심에 대해 먼저 합리적인 대답을 내놔야 할 것이다.

-> 맞습니다. 천사들만 있는 곳은 없지요. 지금도 곳곳에 쓸데없는 검사를 하고, 사기를 치고, 무식해서 환자에게 피해를 주는 의사들이 널렸습니다. 당연히 규제를 하고 단속을 하며 고발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그러기 위해서는 양심적인, 그리고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의사들 늬들은 다 도둑놈이고 죽일 놈들이야"라는 매도는 (장산곶매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말은 아닙니다..^^) 의사들로 하여금 자기네끼리 울타리를 쳐 버리고 그 가운데에 숨어버리게 만드는 일이 되기도 한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의사들만의 천국을 원해서 임의비급여를 철폐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트랙백을 보내 주신 장산곶매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걱정하시는 바도 잘 알겠고...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생각을 깊이 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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