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속상하지만 임의비급여 얘기다.

뇌 전이로 수술을 받고 간에 암에 다시 재발하여 치료중인 아주머니가 오셨다. 늘 오시는 아드님과 함께. 더 쓸 약이 없어서 예전에 썼던 약을 다시 쓰고 있던 중이었다. 예전에 썼던 약은 비록 뇌 전이가 발생해서 수술을 받느라 끊었었지만, 항암제라는 게 뇌로 들어가는 부분은 극히 적기 때문에 항암제 내성이 생겨서 뇌에 전이가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즉 그 약은 내성이 생길 때까지 충분히 써보지 않았던 약이기 때문에, 다시 사용했을 때 반응이 올 가능성이 있다. 이론적으로는. 그리고 실제 듣는 경우도 있고. 물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이런 방법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비용이 아주 많이 드는 표적치료제 외에는. 그나마도 이 약을 비보험으로 사용하는 것이 표적치료제 투여보다는 1/5 정도로 저렴했다.

문제는 이 약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히(?) 임의비급여, 즉 불법진료라는 것이다. 이전에 사용하였던 약제를 다시 투여하는 것은 약제 중단 후 6개월 이상 반응이 유지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허용되고 있지 않다.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전 다른 post에서 언급하였듯이 이전 썼던 약이라고 다 내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며 일부 효과를 보는 환자들이 있는데, 이런 개별적인 경우를 전혀 인정을 하고 있지 않고, 인정을 안 해준다는 게 보험적용만 안 해준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투여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하여 환자가 원해도 치료를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고 환자와 가족이 약간의 가능성만 있어도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는 경우 의사는 외면만 할 수도 없다. 결국 이 환자는 이전 썼던 약을 사용해서 치료를 시작, 첫 번째 cycle을 투여 받았다.

어제 두 번째 cycle을 위한 평가를 위해 외래에 오셨다. 그런데 아드님 왈,

"그런데 왜 항암제가 보험이 안 되는지 저희 가족들이 아직 잘 이해가 안 되어서요..."

"당연히 이해가 안 되시겠지만....(그다음 설명 구구절절)"

"그래서...심사평가원에 제가 문의를 해봤어요."

순간 철렁했다. '허걱... 민원 내겠다는 얘기인가...' 그렇다면 더 이상 치료는 할 수가 없다.

"거기서도 물어보니까 이 경우는 원칙적으로는 보험 안되는 게 맞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의사선생님과 상의하면 혹시 될 수도 있다고...그러니까 보험적용을 해주시고 청구를 해봐주시면 안될까요? 안된다고 하면 저희가 그냥 비보험으로 치료받을게요."

"청구를 한다는 건 약제비의 5%를 환자분께 받고 95%를 달라고 보험공단에 청구하는 거예요. 그걸 못 받게 되는 경우 환자분께 다시 청구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그건 거의 병원이 손해 보는 거죠. 그리고 보험청구해서 인정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아드님은 간절히 원하였고 우선 우리병원 보험과와 상의는 해보기로 하고 두 번째 cycle을 위해 입원하기로 하였다. 도대체 심평원 관계자라는 작자는 왜 '혹시 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여운을 남겨 의사와 병원을 난처하게 한다는 말인가? 아예 "의사가 불법진료를 하고 있으니 당장 민원을 내시라"고 얘기를 하던지. 방금 보험과와 통화결과 자세한 의사소견서를 첨부하여도 보험적용이 될 가능성은 0%로 결론을 내렸다. 손해 볼 것이 뻔 한 심사청구는 안하기로 했다. 그냥 이전처럼 임의 비급여로 치료받으시라고 할 수밖에 없겠다.

치료받는 동안이야 나와의 관계 및 치료 지속을 위해 잠자코 계시겠지만, 전이암이 진행 중인 상태라 언제가 되었건 환자상태가 결국 나빠질 것은 뻔 한 상황... 추후 환자 사망 후에 민원을 내서 비급여치료비용을 모두 돌려받으실 가능성도 크다. (대부분 민원이 그런 식이다) 이제까지 나와의 관계도 비교적 좋았던 환자와 가족인데 이런 식으로 그들을 의심하고 계산을 하게 될 줄이야. 웬만하면 이 치료, 이왕 시작했으니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접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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