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카르테]


오사카 출신 의사 나쓰카와 소스케가 발표하여 2009년 제10회 소학관 소설상을 수상했다 해서 화제가 된 <신의 카르테>는 제목이 주는 무게와 “열악한 지역 의료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의사의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우리 사회에서 의료가 지향해야 할 길과 생명 윤리를 담고 있으며, 그 속에 삶의 보편적인 가치들을 녹여내 감동적으로 전해준다.”는 출판사의 책 소개에 끌려 읽게 되었지만 여러 면에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 소설입니다.

요약을 하면 지방의 작은 소도시 신슈에는 대학병원이 하나 있고, 작은 병원들이 몇 개 있는데, 주인공 구리하라 이치토가 근무하는 혼조병원은 24시간 진료를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는 500병상의 대형병원입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직접 비교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수련의도 아니고 간부의료진이 이틀 혹은 삼일을 밤낮없이 연속 근무하는 혼조병원과 같은 근무상황의 병원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의료진을 구하기 어려워 문을 닫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만, 대학을 갓 졸업하고 수련을 시작하던 첫 달에 정말 2박 3일 동안 밤에는 응급실과 분만실, 병실로, 낮에는 병실과 수술실에서 종일 일하다가 과장님의 배려로 점심을 먹고서 숙소로 들어가서는 15시간을 죽은 듯이 잠에 빠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이 과로에 시달리게 되면 중요한 의료적 판단을 제대로 내릴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건이 어렵다 해서 몸으로 때우라고 방치하는 것은 제대로 된 병원시스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요약한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평소에도 고풍스러운 말투를 쓰고, 응급 당직 간호사들 사이에서 ‘환자를 끌어당기는 의사’로 불리며 기피 대상인 괴짜 의사 구리하라 이치토. 그는 사악한 천사 같은 간호사, 도깨비 같은 거구의 동료 외과의, 수상하고 능글맞은 상사 등 열정적이고 개성 있는 동료들과 함께 ‘365일 24시간 대응’이라는 모토를 내건 혼조병원에서 열악한 지방 의료의 현실과 부딪쳐 매일같이 밤샘하며 분투한다. 한편으로는 옛 여관을 개조한 다세대 주택 ‘온타케소’에서 개성적인 친구들과 술자리를 나누고, 산악 사진가이자 사랑하는 아내인 하루와의 일상을 즐긴다. 그러던 가운데 실력과 노력을 인정받아 조건이 좋은 대학병원으로 오라는 제의를 받게 되고, 고민하는 와중에 담당 환자 아즈미 씨가 위급한 상태에 빠지는데…….”

열정적으로 환자진료에 매진하는 이치토의 근무 자세는 타의 모범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응급상황에 맞는 적절한 판단과 시술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실력 있는 의사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5년차나 되는 내과의사가 환자의 죽음을 맞아 지나치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 과연 옳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의사와 환자가 교감을 통하여 질병치료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하는 것은 옳지만 질료결과에 일희일비하게 되면 자신이 맡고 있는 다른 환자의 진료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췌장암환자인 다가와씨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항암치료와 같은 적극적인 치료가 아니라 평화롭게 임종에 이르게 하는 호스피스라고 봐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호흡저하라는 부작용을 우려하여 충분한 량의 모르핀을 사용하지 못하고 환자가 통증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죽음을 다소 일찍 맞더라도 충분한 양의 진통제를 투여해서 환자가 고통스럽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소설의 구성에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클라이막스라 할 상황이 없이 밋밋해서 마음을 흔드는 무엇을 느끼지 못한 것은 일본과 우리나라 의료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의 차이와 이를 번역과정에서 제대로 녹여내지 못한 점도 기여한 것 같습니다. <신의 카르테>라는 제목 자체도 익숙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카르테(Karte)'란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신분과 증세를 기록하는 진료 카드를 뜻하는 독일어이다.”라고 주를 달았습니다만, 일본은 일찍 유럽 특히 독일의학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독일의학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광복이후 들어온 미국의학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은 바 있습니다. 일본식 의학교육을 받으신 의료계 선배님들은 카르테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시기도 했지만, 곧 차트라는 단어로 바뀌었고, 의학용어 한글화가 추진되면서 진료기록부라는 단어가 더 친숙한 요즈음입니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야간진료시간을 늘리는 의료기관도 있습니다만, 야간진료는 별도로 가산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소설에서 보는 것처럼 감기와 같은 경증질환으로 야간에 병원을 찾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15쪽의 ‘레벨 다소 혼탁’이라는 표현은 환자의 의식수준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독자가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이라고 보입니다. 그리고 응급장면에서 자주 등장하는 ‘점적’이라는 표현은 링거와 같은 수액을 정맥으로 투여하는 경우처럼 방울방울 떨어지도록 하는 상황이므로 수액주입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쉬울 것 같습니다.69쪽의 ERCP는 ‘내시경적 역생성 담췌관 조영술’이라 주를 달았습니다만, 최근 나온 의학용어집에서는 ‘내시경역행쓸개이자조영술’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102쪽의 CBC는 간단하게 혈액학적 검사 정도로 옮겨도 될 것 같습니다.

이치토는 혼조병원에서의 실력을 인정받아 대학병원에서 보다 높은 수준의 의료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지만, 기계적인 시스템의 대학병원보다는 인간냄새가 나는 혼조병원을 지키기로 하는데,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자신이 맡는 환자들에게 보다 나은 의술을 베풀 수 있도록 본인을 업그레이드해야할 의사로서의 의무를 저버렸다고 지적받아 마땅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이치토와 같이 온타케소에서 머물고 있던 학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다치바나 센스케가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한 사건일 수도 있겠습니다. 즉, 병원을 주 무대라고 하기기보다는 온타케소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교감하는 장면이 일본이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더 감동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신의 카르테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채숙향 옮김
259쪽
2011년 2월 10일
지식여행 펴냄


목차
제 1화. 온 하늘 가득한 별
제 2화. 출발의 벚꽃
제 3화. 달빛 아래의 눈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