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다섯 살 할머니와의 힘든 커뮤니케이션. 만성적인 요통에 대해 고주파 열 치료를 받기 위해 외래를 방문했던 그 할머니는 시술 후 극심한 요통 때문에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 입원치료를 결정했다. 유난히 수술이 많았던 어느 토요일 도저히 병동을 돌볼 여유가 없었기에 당연히 할머니의 경과에 대한 설명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고, 보호자들은 무시무시한 핫라인이라도 띄울 기세로 덤벼들었다. 하지만 신경외과 전공의 생활도 어언 1년, 이제 2년차로서 핫라인 나부랭이 때문에 벌벌 떨던 예전의 풋내기가 아니었기에 눈썹하나 꿈쩍하지 않고 응급 수술에 전념했다.

수술을 마치고 나와서 조금은 불안한 마음에 그 환자의 병실을 찾았다. 1인실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와 수많은 보호자들의 시선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에게로 일제히 향했다. 의사와 환자 혹은 보호자 간에 강렬한 눈빛으로 기선을 제압하는 일은 추후 진단이나 치료 방향에 있어 환자의 순응도 및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시선과 기개로 무장한 채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젠틀한 분위기의 보호자들과 방금 막 밭에서 감자 캐고 온 시골 할마이 냄새를 물씬 풍기는 환자가 컴플레인 했다는 병동 간호사들의 증언과는 달리 너무나 차분히 침대 주변에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일단 조심스레 다가가 늦어서 죄송하다는 인사와 함께 방문이 늦어지게 된 사정을 설명을 했고, 다리를 주무르는 가벼운 스킨십과 함께 아픈 곳은 없는지 할머니에게 조심스레 첫 인사를 건넸다.

이내 돌아오는 대답은 '이런 씨부랄- 에미나이를 봤나(?)' 였다. 늦은 방문 탓에 혹 욕을 하는 건 아닌가 싶어 연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머리 숙여 용서를 구했건만 할머니의 에메나이 공격은 그칠 줄을 몰랐다. 결국 할머니에게 욕만 하지 마시고 불편하거나 아픈 곳이 있다면 말씀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하지만 여전히 에미나이만 외쳐대는 할머니에게 혹시 북한에서 오신 분이냐 아니면 저희 어머니 나이가 왜 궁금하시냐 등 수차례 고민하고 반문했지만, 끝내 할머니와 나 사이의 에미나이에 대한 개념 합의를 이루지는 못했다. 5분가량 사투 끝에 결국 옆에 있던 보호자가 MRI를 에미나이라고 이야기 하시는 게 아니냐 물었더니 이제서야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언제 촬영 하냐 되묻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한숨과 함께 막연한 허무함만 느껴졌다. 에미나이와 엠알아이가 같은 표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참으로 소중한 하루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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