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하고 보조 항암치료가 계획되어 있던 Y 환자.

지금 진행 중인 임상연구가 있어서 임상연구에 대해 설명 드렸더니 선뜻 동의하셨다.
관련 검사를 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하기도 하고 입원을 하면 아무래도 환자에게 설명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니 내 마음도 편하고 해서 입원하기로 하였다.

앞으로 6개월간 8차에 걸쳐 항암치료를 할 예정인데, 첫 항암치료를 받을 때 설명을 충분히 드리고 환자가 부작용 교육도 잘 받는 게 중요한데 입원을 하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고 가족면담도 할 수 있어서 안정적인 면이 있어 난 첫 치료 때 입원하는 게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임상연구는 임상연구를 시작하기 전 기본 값으로 흉부 및 복부 CT를 찍도록 정해져 있다.
일반적으로 유방암 환자가 수술하고 나서 이렇게 CT를 찍지 않으며, 찍지 않는 것이 표준적인 가이드라인이다.
이 임상연구에서 요구하는 항목이기 때문에 환자가 돈을 지불하지 않고 하는 검사 항목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유-내가 원했거나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찍은 것이 아닌 이유-로 찍은 흉부 CT에서 콩알만 한 병변들이 폐에 산적해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정도의 병변은 환자에게 전혀 증상을 초래하지 않는다. 너무 작은 것들이라...
일반적으로
유방암 수술을 하기 전 특별히 임상적으로 의심되는 증상이 있거나 진행성 유방암이라는 판단을 하지 않는 한 흉부 CT나 PET 등의 검사를 추가로 하는 것이 추천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검사를 안했기 때문에 100%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이 환자에게서 흉부 CT에서 발견된 폐 병변은 아마도 수술하기 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가 아주 아주 드물게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드문 경우를 방지하기위해 모든 환자에게 수술 전후로 CT나 PET 검사를 루틴으로 할 수는 없다. 의학적 기준에 맞게 검사를 해야 하고, 정해진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하는 것이 진료의 원칙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을 운운하는 것에 대해 환자가 수용할 수 있을까?

만약 CT 등의 검사를 미리 했다면, 유방암 수술을 하지 않았겠지...
환자는 애초에 4기로 진단을 받고 보존적 치료와 공격적이지 않은 항암 혹은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겠지...
유방암 수술 이후 환자에게 후유증이 남고 수술과 관련된 비용/효과가 있을 텐데...

가끔 머리가 아프다며 머리 MRI를 찍고 싶다는 환자가 있다.
두통이 한두 번 왔다 갔다 증상이 있다고 해서 바로 MRI를 찍는 것은 원칙적으로 맞지 않으니 일단 1주일 정도 약을 먹어보자고 한다.
환자는 1주일 약을 먹고 와서 조금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면 또 1-2주일 정도 경과를 보자고 한다.
그렇게 시간이 약간 더 지난 다음, 다시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이제 환자는 더 강력하게 MRI 찍기를 요구한다.
결국 환자의 주장에 못 이기듯 MRI를 찍게 되는 형국이다.
그리고 나서 여기 저기 뇌전이가 된 사진을 볼 때...

환자는
거 보라며, 왜 진작 사진을 찍지 않았냐며, 즉시 찍어서 발견했으면 이렇게까지 나빠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자신의 요구를 왜 들어주지 않았냐며 원망한다.

환자의 사소한 증상 하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꿰뚫어 정확히 진찰하고 적절한 검사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단을 내리는 것이 의사의 소명이자 능력이다.

뇌전이로 상심하는 환자에게
그때 찍었으나 지금 찍었으나 뇌 전이라는 사실은 이미 정해져 있던 거라고 치료방법도 같은 거라고 시간을 다시 되돌려 검사를 일찍 했다 하더라도 이미 상황은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면 환자는 너무나 속상할 것이다.

어떤 검사를 '하는 건'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검사를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하지 않아도 되는 검사를 하지 않으면서도 좋은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려면 나는 아직 내공을 많이 쌓아야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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