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낭에 3cm 크기의 돌이 있고, 그 부위의 통증으로 응급실까지 오셨으므로 수술로 담낭을 제거하는 것이 권고됩니다. 외과선생님을 보고 수술을 상의해보시기 바랍니다.'

동어반복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남의 말을 들으려하지 않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들으려는 태도가 안 되어 있으니, 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신이 동어반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조사만 바꿔서 같은 질문이나 주장을 하고 있다. 여기에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장황하게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끌어와서 껍데기만 잔뜩 붙여 놓고는 '나는 핵심을 잘 파악해.'라고 착각하며, 동어반복의 질문을 계속 한다.

오늘 낮에 본 어느 30대 초반의 여자 분의 예를 보자.

'담낭에 3cm 크기의 돌이 있고, 그 부위의 통증으로 응급실까지 오셨으므로 수술로 담낭을 제거하는 것이 권고됩니다. 외과선생님을 보고 수술을 상의해보시기 바랍니다.'

질문 : 담낭의 돌만 제거하면 안 되나요?
대답 : 그럴 수는 없습니다. 여러 합병증 및 돌이 다시 만들어질 수 있어서, 담낭을 제거해야합니다.
질문 : 사는데 지장은 없나요?
대답 : 100% 없다고는 못하지만, 큰 문제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수십 년간....
질문 : 다른 방법은 없나요?
대답 : 지금 당장, 꼭 수술을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의학적으로 2cm 이상의 돌이라서 담낭암의 위험인지이기도 하며, 담낭염을 일으킨 상태이므로 이번 고비를 넘겨도 계속 문제를 유발할 확률이 높아서 수술을 권고 드리는 것입니다. 수술에 대한 이야기는 외과선생님과 다시 상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질문 : 그런데 왜 담낭을 제거해야하는 거죠?
다시 대답 : 동어반복
다시 질문 : 꼭 제거해야하나요?
다시 대답 : 동어반복
다시 질문 : 제거하고 사는데 지장 없나요?
다시 대답 : 동어반복


30분간 진료실에서 나가지를 않고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였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는.... 간호사에게 '왜 외과진료를 받으라는 거예요? 설명도 하나도 안 해주고, 외과진료를 보라는 이유가 뭐예요?' 그래서 다시 간호사가 10분에 걸쳐 동어반복을 하였다. 그러고 나서 친구와 전화통화, '외과를 보라는데 이유를 모르겠어.'

방금 전 ERCP(담도내시경)이 끝나고 저녁도 못 먹은 상태라서 더 이상 글을 쓰지는 못하겠다. 쌓인 일거리는 산더미 같은데... 기운도 없고... 병동에 회진돌러 갈 엄두도 안 나고... 환자들은 주치의가 잘 보고 있겠지... 어디 가서 라면이라도 한 그릇 먹고 뭘 해야 할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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