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병기가 1기입니다.
이렇게 병기가 낮은데도 항암치료를 꼭 해야 하나요?
머리도 빠지고 항암치료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데 말이죠...
선생님이 하라면 해야겠지만...

지금 병동에는 이렇게 1기인데도 항암치료를 하는 게 낫겠다는 나의 설명에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꼭 참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다가
열이 나서, 구토감이 심해서 입원해 계신 분이 두 분이나 계신다.

1기인데 이렇게 힘든 치료를 하는 게 정말 맞는 걸까?
너무 오버하는 건 아닐까?

표준 가이드라인-가이드라인은 가이드라인일 뿐, 반드시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다-이라 해도 미국판, 유럽판 기준이 약간 다르다.

예를 들면 유럽은 겨드랑이 림프절 전이가 1-3개 정도 있어도 - 즉 위험요인이 좀 있어도 -  호르몬 수용체가 양성이면 항암치료보다는 호르몬 치료를 권유하는 편이고,
 
미국은 겨드랑이 림프절에 병이 전이되었거나 종양의 크기가 클 경우 호르몬 수용체 양성 여부와 상관없이 항암치료를 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 종양내과 의사들은 종양크기가 2cm이 넘으면 항암치료를 결정하는 편이다.

종양이 크면 이후 재발의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단호하게 항암치료를 하자고 권유할 만하다. 우리나라는 특히 젊은 유방암 환자가 많기 때문에, 젊다는 것 자체가 나쁜 예후인자에 속하며 재발 위험이 높기 때문에, 재발을 막을 수만 있다면 한번 치료할 때 강력하게 치료하는 것에 대해 의사도 환자도 수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1cm에서 2cm 사이의 종양이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대개' 합의하기론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다.

이때 종양크기나 겨드랑이 림프절이 강력한 예후인자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다른 요인도 고려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위험요인이 있으면 항암치료를 하는 쪽으로 결정한다. 그러나 이것이 '합의'를 넘어서 최종적인 '정답'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차원의 임상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임상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돈도, 시간도, 인력도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 개인의 의지로, 한두 병원의 의지로 좋은 임상연구가 진행되기 어렵다. 그래서 종양내과 의사들은 힘을 합쳐 임상연구를 같이 하거나, 그게 어려우면 합의(consensus)를 이루게 된다.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많은 학회와 집담회의 기회를 갖고 같이 공부한다.

가이드라인만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많다. 그래서 어떤 환자들은 진짜 재발의 위험이 높지 않은데도 초강력 치료를 하면서 녹초가 되기도 하고 부작용으로 고생하기도 한다.

어떤 환자들은 재발의 위험이 매우 높은데도 표준 치료만 하다가  재발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한다. 그 간극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연구라는 것이 실재 환자 진료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확실한 증거',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확실한 결과'가 '반복'되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고 연구자 직감으로 치료해서는 안 된다. 환자들은 의사의 말을 믿고 그저 당연히 해야 하는 줄 알고 치료를 시작했다가 부작용으로 고생하면서도 그러려니 하면서 날 믿고 잘 참고 있다.

난 가이드라인대로 치료한다.
증거에 입각해서 치료방침을 결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항상 100 % 최적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므로 얼마나 많은 연구가, 얼마나 많은 공부가 필요한가. 내 힘만으로 이룩되지 않을...
그러므로 난 일단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우리 환자들을 빨리 회복시키고 잘 진료하는 의사가 되어야겠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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