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로도 병이 진행되었다구요?
다른 데는 병이 없는데 뇌로만 암이 전이되었다구요?
수술한지 1년밖에 안되었는데요?
조금 어지러운 거 말고는 증상도 별로 없는데요?
...
...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한다구요?
나이도 젊은데 방사선 치료하면 바보 되는 거 아니에요?
저 아직 애들 학교 가는 것도 봐줘야 하는데...


우리 뇌 속의 혈관에는 각종 외부의 것들이 뇌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게 막는 일종의 진입장벽과 같은 구조가 있다.
의학용어로 BBB (Blood Brain Barrier) 라고 한다.
BBB 때문에 우리가 치료를 위해 쓰는 약물도 뇌로 잘 전달되지 못한다.

어떤 항암치료를 해서 폐나 간 등 몸 여기저기에 있는 병은 잘 컨트롤이 되고 있는데 어느 날 문득 뇌로 병이 전이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가 쓰는 항암제가 BBB 때문에 뇌로 잘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뇌로 전이가 될 정도면 전신적으로도 병이 확 나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뇌 전이가 진단되면 이후 생존기간이 급격하게 짧아진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유방암은 그렇지 않다.
뇌로 전이가 되는 것은 임상적으로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것 같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하나는 예후가 좋은 호르몬 수용체 양성 환자들이 4기로 진단받은 지 이미 오래되어 수년간 치료를 해 오던 중 뇌로 전이가 되는 경우이다.
이미 많은 종류의 항암제를 쓴 상태이고, 4기인 상태로 오래 지냈기 때문에 몸 여기저기에 이미 병이 많다. 몸도 많이 지쳐있다. 질병의 마지막 코스라는 느낌을 준다.

또 다른 유형은 삼중음성유방암이나 HER2 수용체 양성인 환자들에서 수술한지 얼마 안 되어, 혹은 첫 치료를 한 후 치료반응이 좋아 머리가 아닌 곳은 병이 없거나 잘 컨트롤되고 있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머리로 병이 나타나는 것이다. 급작스럽게. 그래서 이들은 몸 상태에 이상이 별로 없다. 컨디션도 나쁘지 않다.
유방암의 분자생물학적인 특성에 따라 뇌 전이의 양상이 다르다는 것이 점차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이 되고 있다.

그래서 요즘 유방암 치료를 하는 의사들 사이에서는 머리와 몸은 각각 독립적으로 열심히 치료해야 하는 영역이 아닌가 하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그래서 뇌로 전이가 되었다고 해서 이제 치료는 끝이고 죽음을 대비해야 한다는-죽음이야 살면서 늘 준비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최대한 전신 상태를 유지하면서 항암치료도 하고, 머리도 적극적으로 치료하자는 것이다.
방사선치료, 감마나이프를 연속적으로 시행하여 강력하게 뇌 상태도 컨트롤해주면 생존율이 올라갈 수 있고 삶의 질도 나아질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런 주장은 유방암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암에 비해 4기 이면서도 예후가 좋고 생존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문헌에 따라 뇌전이는 3-4개월 정도의 기대여명을 예상하고 있지만 내가 진료하는 우리 유방암 환자들은 훨씬 오래 사시는 것 같다.
다행히 BBB를 통과하는 항암제도 개발되고 있고 방사선 치료기법도 많이 발전하여 후유증을 별로 남기지 않고, 뇌기능을 회복하는 환자들이 많다.
일부 의사들은 뇌에 방사선 치료를 하면 뇌기능이 급격히 떨어져서 '바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환자의 전신상태, 주관적으로 느끼는 컨디션이 중요하다.
컨디션이 좋으면 여러 가지 치료에 도전해볼 수 있고, 유방암 환자들은 비교적 치료 성적이 좋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어떤 신 의료기술이 도입된다 해도 환자에게 적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환자들은 자신의 컨디션을 잘 평가하고 컨디션을 좋게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어떤 검사보다도 환자 스스로가 자기를 평가하는 컨디션이 예후를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마음씀씀이도 긍정적으로, 잘 먹어야 한다.
그런 마음이 치료를 지탱하고 성적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치료의 근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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