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한약으로 만든 항암제가 치료효과를 유수 의학저널에 실렸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옻나무 추출물로 만들었다는 넥시아라는 이름의 약이다. 이 넥시아가 다시 뉴스에 오르기 시작했다. 작년과 달리 이번엔 좋지 않은 소식이다. 허가받지 않은 무허가의약품을 환자에게 판매해 식약청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이 뉴스를 접한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럽게 느낄 것이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항암제를 한약이라고 탄압(?)하는 것 아냐?'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약품 개발을 중단시키고 수사를 받게 하면 환자가 피해보는 것'이라고 격분하는 분들도 있을 줄로 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한의사나 한약, 한의학과도 무관한 일로 보인다. 넥시아가 한약 제제가 아니라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임상시험 중인 신약이고 한의사가 아닌 의사가 만들었고 그 효과에 대해 해외 유수 의학 저널에 보고했다고 하더라도 의약품으로 허가 받지 않고 환자에게 돈을 받고 판매를 했다면 똑같이 법령에 따라 제지를 받게 된다.

아마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고 쉽게 납득할 것으로 믿는다. 아직도 '왜 효과 있다고 해외 유수 논문에 실리기도 한 약물을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판매한 것을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고 하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러한 규제는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수많은 약품들이 동물실험을 거쳐 대규모 임상연구를 시행한 다음에 각국의 식품의약청에 의약품으로 허가를 받게 된다. 논문 보고되면 그 효과를 인정받은 것 아니냐고? 학계에 발표하고 전문가들의 리뷰를 받는 것도 중요한 안전장치이지만, 여러 안전장치에 하나 일뿐 그것만으로 사람에게 판매허가를 하게 되면 안전하지 않은 약물들이 시중에 유통되게 되고 그 피해는 환자가 입게 된다. 실제로 논문으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고 그에 대한 학계 검토도 긍정적이라고 하더라도 의약품으로 허가심의 중에 문제가 발견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게다가 이번 넥시아 사건은 몇 가지 더 짚고 넘어 가야할 부분이 있다. 작년 언론에 '한약으로 만든 항암제가 해외 유수 의학 논문에 실렸다'고 보고되고 지금도 이를 가지고 동정표를 던지는 기자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부분이다.

작년 Annals of Oncology에 실렸다고 알려진 '논문'의 실체는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letters to the editor)다. 논문에 실리는 글의 종류는 저널마다 다르지만 Original article, Review article, Case report, Reply to authors, Letter to the editor 등이 있으며 Letter to the editor나 Reply to author는 학술지의 편집위원회의 Peer review 절차를 거치지는 것이 아니라 편집장이 독자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거나 유익한 정보를 골라 개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두고 해외 유수 학술지에 보고되었다고 언론 보도를 하는 것은 사실 확인을 게을리 한 것이 아닐까? 이를 가지고 마치 그 효과를 인정받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민망한 일이다. Letter to the editor라도 그 내용이 중요하지 않느냐고? 맞다. 그럼 내용을 보자.

Annals of Oncology에 실린 넥시아 관련 Letter to the editor 내용은 두 명의 획기적인 치료 사례를 보고한 것이다.  폐 전이가 있는 두 명의 전이성 신세포암 환자에게 옻나무(Rhus verniciflua)에서 알러젠을 제거한 추출물로 치료효과를 보았다는 내용으로 A4  두 페이지 분량의 편지다. 첫 번째 사례는  12cm 크기의 우측 신세포암을 가진 환자(RCCa, Fuhrman GIII)를 신절제한 후 4개월 뒤 추적 관찰한 CT에서 다수의 폐전이가 확인되었으며 immunotherapy를 권유받았으나 환자가 거부하고 한방암센터에서 allergen-removed Rhus verniciflua Stokes (이하 aRVS) extract(넥시아)를 활용해 치료를 받았다고 소개되었다.  2006년 12월부터 4개월간 aRVS extract 450-mg capsule을 매일 3회 복용한 결과 CT에서 폐 전이가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31개월 추적관찰 수에도 재발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두 번째 증례 역시 비슷한 사례로 신세포암으로 신절제술 받은 후 폐와 반대 측 adrenal gland까지 전이된 환자로 Sunitinib(Sutent, Pfizer) 치료를 받다가 중단하였으며 2007년 6월에는 복강 내에도 전이되었다. 환자 동의 후 aRVS extract 450-mg capsule(넥시아) 9개월 복용한 결과 Chest CT에서 전이 흔적이 사라졌으며 13개월 후에는 adrenal gland의 전이도 크기가 줄어드는 것을 확인하였다. 29개월 투약 후에는 CT에서 질병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획기적이라고? 획기적인 것을 넘어 기적적인 케이스다. (그래서 실린 것일 것이고. 그런 투약한 모든 환자가 이런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고 일반화 할 수는 없는 증례다.)

과거 의사나 치료자(성직자 기타 주술적 치료자)들은 자신의 권위와 경험에 의존해서 치료했다. '내가 치료해보니 효과가 확실해!' 이런 말을 믿고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불과 200여 년 전에 서양의 의사들은 나쁜 피가 있다고 믿고 피를 뽑는 것이 중요한 치료라고 믿었고, 의사가 피, 고름을 꺼려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수술 전에 손을 씻지 않았다. 이런 전문가의 고집이 꺾기란 쉽지 않고 그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의 치료법을 선택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근거 중심 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이다. 근거 중심 의학의 시대에 의사는 권위에 의해 독단적인 치료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최근 감기 치료에 항생제가 필요 없다고 널리 알려지게 된 것도 이런 근거 중심 의학 덕분이다. 여전히 일부 의사는 경험적으로 항생제를 쓰는 것이 더 낫다고 믿고 있고, 그런 믿음을 가진 환자도 있지만 철저한 검증을 통해 불필요한 투약을 막게 된 것이다.

여러 의학 연구에 대한 근거 강도를 분류하고 이를 취합해 보편적인 치료법으로 적용하는 기준도 만들어진지 오래다. 이는 과학적인 방법론에 근거하고 있으며 전 세계 보편적인 기준이다. 그렇다면 한의학적 치료와 약제는 예외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환원주의적인 현대의학 접근이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대의학의 과학적 연구법은 사람마다 다른 여러 변수가 가지는 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해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대규모 환자를 대상 연구를 하게 된다. 연구자와 피험자가 받을 수 있는 심리적인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이중맹검으로 (가짜약과 실험약 중 어떤 약을 먹는지 모르게) 통계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충분한 사람 수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한다는 말이다. 이런 연구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새로운 항암제를 만든다고 한다면 이런 임상시험을 거쳐 신약의 가치를 증명해야한다.

그러나 이번 넥시아는 기존에 발표된 연구들도 증례 보고 사례 수준이다. 지금까지 기적적인 증례를 경험했다면 이것이 약물로 인한 기적인지 아니면 우연히 발생한 일인지 가려내야하는 연구를 해야 한다. 넥시아가 신약으로 인정받고 판매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멀다. 게다가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신약을 개발 중이고 특히 임상연구 중이라고 하면 피험자(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준을 지켜야한다. 이미 인류는 무자비한 인체실험으로 인한 큰 상처를 입은 역사가 있다. 불과 30년 전 미국에서 의학적 지식이 없는 피험자들(특히 흑인들)을 대상으로 매독 임상연구를 시행한 적도 있고(터스키기로 검색해보기 바란다) 2차 세계대전에는 독일과 일본의 인체 실험들도 있었다. 지금은 그 누구도 이렇게 비윤리적인 임상시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임상연구 중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피험자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며 피험자의 권리를 지키려고 노력해야한다.

이번 넥시아 사건에 있어 병원 측은 판매한 약이 임상시험 중인 약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여러 정황을 봐서는 논문에 기재된 같은 성분의 약으로 보인다. 약효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학계에 보고하는 모습은 의학 발전을 위해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임상시험 중인 약물을 환자에게 고가로 판매했다면 이는 임상연구에 대한 규정을 어긴 것이 된다.  약사법 제34조(임상시험 계획의 승인 등) 제4항을 보면 임상시험을 하려는 자는 임상시험의 내용 및 임상시험 도중 시험 대상자의 건강에 생길 수 있는 피해에 대한 보상 내용과 절차 등을 시험 대상자에게 설명하고 시험 대상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 기준에 따라 통상 임상시험에 참여하게 되면 약값은 받지 않고 실험에 참가하는 환자에게 검사비 및 교통비 등 일체를 지원하는 게 되는데 넥시아는 그렇지 않고 돈을 받고 판매하기도 했기에 더 큰 문제다.

의료 소비자들(대다수의 국민)은 이번 사건을 통해 어떤 기준을 통해 검증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과학적 방법에 대한 불신이나 막연한 전통의학에 대한 기대 때문에 중세 시대 의학으로 회귀하자는 주장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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