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적에 응급실 당직을 설 때의 일이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어느 병원이나 어느 진료과나 전공의/인턴은 정말 힘들다. 요즘 서울의 대형병원은 사람도 많고, 의사의 일이 다른 직역으로 많이 내려가서 조금 덜하지만, 마이너 수술과(이비인후과, 성형외과, 안과 등)의 전공의들은 어느 메이져 수술과(외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못지않게, 아니 적은 인원으로 각종 호출을 받으려면 더 힘들다. 그래서 이 친구들의 웬만한 짜증은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7시경 응급실에 4살 정도 되는 아이가 집에서 놀다 넘어져 눈썹 아래에 1cm 가량이 찢어져서 왔다. 다행히(?) 깔끔하게 찢어져서 몇 바늘만 꿰매면 될 상처였다. 물론 나는 내과라서 관련은 없지만 응급실 인턴들과 친해서 관전을 하게 되었다. 이 관전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 성형외과에서 안면의 상처를 진료하던 것이 병원의 여러 사정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응급실을 요일에 따라 단순한 안면 창상은 이비인후과와 번갈아 가며 진료하게 되었고, 안구에 가까운 상처는 안과에서 진료하기 하였다. 참고로 성형외과가 일차적인 창상의 치료나 봉합을 모두 하는 과가 아니다. 일반인들은 얼굴 상처는 '무조건' 성형외과로 오해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비인후과는 안면 성형이나 상처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과이기도 하며, 안면 부분의 치료는 성형외과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어찌되었든...
 
가뜩이나 바쁜 이비인후과와 안과의 전공의들은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문제는 하늘을 찌르다 못해 아래에 있는 인턴선생님들과 환자들을 찌르는 것이었다. 찌르려면 자신의 소속과 교수님들께 불만을 찔러보던지, 아랫것들만 죽어났다.
 
위의 꼬마 아이의 경우, 그날 응급실 당직인 이비인후과와 안과 레지던트가 가운데 끼인 인턴을 볶아대기 시작했다. 이비인후과에서는 눈썹, 아래쪽의 눈꺼풀 위의 상처이니 '새로 정한 협정'에 따라 안과에서 꿰매야한다는 것이고, 안과 레지던트는 교수님들 간에 어떻게 이야기되었는지 모르지만 정식으로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울고, 부모는 답이 안 나오는 인턴선생님에게 항의하는데, 별들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2시간 뒤), 이비인후과 레지던트가 '그래, 좋다. 오늘은 그냥 내가 꿰매주마.'하고 아이에게 수면제를 먹였고, 소독까지 마치고 응급실 처치대에서 꿰매려는데, 열이 받은 이비인후과 치프(수석 전공의)가 응급실에 나타났다. '너(당직 이비인후과 전공의), 꿰매지 마. 안과 레지던트 불러.' 아이는 수면제를 먹고 잠드는 상황, 5분이면 처치가 모두 끝날 것을 가지고, 두 진료과 간의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렸다.
 
급기야 안과 레지던트와 이비인후과 레지던트 모두가 응급실에서 삿대질을 하면서 싸우게 되었고, 윗년차들끼리 병원 지하 복도에서 멱살까지 잡고 싸웠다. 이러는 사이 다시 2시간(총 4시간)이 흘렀고, 아이는 다시 깨어났고, 분노에 찬 젊은 아빠와 엄마는 애꿎은 인턴에게 강력하게 항의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보호자들에게 이런 뒷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 인턴은 미치고 싶어 했다. 급기야 아이의 엄마는 울면서 하소연을 하게 되었고, 허우대는 큰 순진한 남자 인턴선생님 또한 당직실에 들어와 엉엉 울었다.
 
이비인후과와 안과의 투쟁의 결론은 더 기가 막혔다. '환자 다른 병원을 보내~.' 밤 11시가 넘어서 겨우 이거 꿰매자고 다른 지역이나 서울로 보내란다. 사실 이거 응급으로 꿰맬 필요도 없는 거다. 소독 잘 해놓고, 내일 낮에 꿰매도 문제없는데.
 
그리고 응급실에서 이 무리들이 몰려나가고... 오지랖이 넓은 내가 참다못해 꿰매겠다고 하였다. 내과 전공의를 들어오기 전에 인생을 좀 돌고 돌아 왔었고, 그 중 3년은 응급실 당직의사로 지낸 덕에 꿰매는 것은 웬만큼 자신이 남아 있을 때었다. 그런데, 어슬렁어슬렁 눈치를 보며 남아있던 이비인후과 후배가 꿰매겠다고 나섰다. '너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 '뭐, 그럼 형이 꿰매고 저는 구경만 했다고 하죠...'. 이 녀석이 까불까불하고 공부를 안 해서 유급도 되어 학교를 늦게 졸업했지만, 머리도 올빽으로 넘기고 기지바지를 입고 다녀서 윗사람들이 보기에는 불량학생으로 보였지만(실제로도...)... 지금 이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분노한 보호자들에게 사과하고 잘 달래며 치료도 제대로 하고 집에 돌려보냈다. 혹시 들킬까봐 실밥은 잘 아는 동네의원 가서 뽑도록 하는 치밀함까지 보이며~.

이렇게 환자/보호자가 집에 돌아가면서 상황이 정리되고 나니, 이번에는 담당했던 인턴선생님이 사표를 내고 병원을 나가겠다고 했다. 일단 다른 인턴선생님들이 업무를 분담해서 응급실을 유지시키고, 밤 12시가 넘도록 저녁도 못 먹은 이 친구에게 야식을 배달시켜 먹이며 달래보았다. 여러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정처 없이 떠도느라 정말 서럽고 힘든 것이 인턴생활인데, 이런 일까지 겪으니 도저히 못해 먹겠다는 것이었다.

믿었던 선배들, 특히나 안과 응급실 담당 선배는 '좋은 사람'의 표상으로 후배들에게 그렇게 친절하고 인기가 있던 사람이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저렇게 변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급기야 눈물을 뚝뚝 흘리다 못해, 서럽게 엉엉 울기까지 하였다. 일단 집에 가서 푹 자고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고 보내었다. 당장 응급실을 볼 인턴을 어디서 데려올 수는 없어서, 내(내과 레지던트)가 대신 응급실을 봐주기로 하였다. 환자들 교통정리해서 내과환자는 인턴선생님 거치지 않고, 내가 직접 진료하고 집에 돌려보낼 사람은 보내고, 입원할 사람을 입원장 내고, 외과나 산부인과 등에서 봐야할 환자들은 내가 직접 해당과에 전화해서 '너네 과 환자야~. 데려가~~. 빨리 이 환자 정리 안 해주면.... 알지?'
 
나도 나름 충격을 받았다. 안과 전공의 1~4년차들을 보면... 4년차는 내 대학동기였고, 상당히 조용하고 성실한 친구였다. 다른 사람에게도 아주 친절한 친구였다. 그리고 이 사건의 주인공이자 간단한 문제를 확대시킨 응급실 담당 안과레지던트는 학생 때 학년 대표를 도 맡아하고, 착하고 성실하다고 하여 상까지 받았던 후배였다. 아주 열심히 교회를 다니며, 누가 봐도 성실하고 착한 모범 크리스천이었다. 물론 이비인후과의 윗년차들도 잘한 것은 없었지만, 몇 달간의 행실이나 이 사건에서도 압도적으로 오만과 독선을 고집한 곳은 안과 전공의들이었다. 평소 일부 전공의들의 황당한 행태는 차마 글로 표현하지 못하겠다. 같은 의사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어떻게 저럴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이해도 안 되고 용서도 안 된다.
 
어찌되었든, 하루를 쉬고 떠꺼머리 인턴후배는 병원에 복귀하였고,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마치고 군대를 다녀와, 지금은 서울의 어느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어린 아이를 중간에 두고 박치기를 한 안과와 이비인후과 후배들은 개원을 하였는데, 하필이면 마주보는 건물에 하고 있다. 속은 모르지만, 겉으로는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이비인후과후배를 만났다.
'형, 웬만하면 그 때 일은 잊어버리지? 걔가 원래 나쁜 애는 아니야. 그 때 우리 병원 안과 분위기가 좀 그랬잖아? 워낙 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으면 사람이 잠깐 미쳐서 제 정신이 아니게 되잖아. 형도 뭐 다 잘하고 산 건 아니잖아?'

'그래 네 말이 맞다. 뭐, 나도 애들 때려서 사고치고. 싸가지 없게 환자 대하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지... 근데, 어쩌다 실수하거나 어쩌다 그럴 수는 있지만, 전공의기간 몇 년 동안 일관되게 그랬다는 것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그 사람의 본심이 어느 쪽일까? 난 그때나 지금이나 무서워. 그 애들의 웃는 얼굴이 진짜 속마음인지, 가면인지 모르겠어. 그래서 무서워. 나이가 들면서 그 친구들이 미운 것이 아니라, 그냥 무서워서 내가 피하고 싶을 뿐이야...'
 
 
추신 :
1. 윗글은 안과와 이비인후과, 또는 내과라는 특정 진료 과를 비판하거나 옹호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실제 진료 과가 안과나 이비인후과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2. 학생 때 모범생과 노는 학생들 간에 인간성의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예는 아주 특이한 경우일 뿐입니다.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