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잘 아는 개원의 한 분이 얘기를 전해 주시기를....며칠 전 자신의 병원 계단에서 80대 환자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답니다. 식구들에게 병원을 다녀오겠노라고 말씀하시고 병원으로 오시던 중,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갑자기 쓰러지신 거지요. 연세도 많으셨고...자세히는 모르지만 심장이나 뇌혈관에 갑작스런 경색이 온 것 아닌가...싶습니다. 내시경검사를 하느라 아무 것도 몰랐던 원장님은 수간호사가 119를 불러 환자를 이송시킨 후 얘기를 들으셨다고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자신의 병원 대기실에서 진료순서를 기다리던 어떤 환자분이 갑자기 쓰러지셔서 돌아가신 경험이 있다고...

이런 얘기를 들으면 그 가족들의 슬픔과 황망함이 얼마나 컸을까란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병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선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돌아가신 분이야 억울하고 갑작스런 죽음이지만...만약에 우연히도 병원에서 그 분이 주사라도 맞고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아니면 내시경검사를 하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정말 설명할 수 없는 죽음이 되는 것이지요. 보호자들은 당연히(?) 의료과실이라 주장을 할 테고. 과실이 아니라는 증명을 하기 전까지는 엄청난 고통이 따를 수밖에는 없는 것이지요.

생각해 보니...저도 예전에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네요. 내과전공의 2년차였습니다. 응급실에서 당직근무를 서고 있는데 마침 친하게 지내던 신경과 전공의가 부탁을 해 왔습니다. 뇌경색으로 오랫동안 집에서 있던 환자가 119로 실려 왔는데 상태가 너무 안 좋으니 센트럴 라인 (정맥주사를 놔야하는데 정맥이 너무 드러나지 않거나 약한 경우 심부에 있는 정맥에 주사라인을 잡는 것)을 잡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센트럴 라인을 잡는 것은 내과나 외과 전공의 정도는 할 수 있는,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는 술기이지요.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느꼈으므로 흔쾌히 승낙을 하고 술기를 시작했습니다. 쇄골하정맥을 찾아 니들을 조심조심 찌르고 있는데...응? 환자가 좀 이상합니다? 어! arrest!!! 환자의 심장이 정지한 것입니다. 센트럴라인은 무슨....급히 심폐소생술을 시작했지만 워낙 연로하신데다가 전신상태가 안 좋았던 그 환자는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습니다. 사실...그 환자의 상태는 처음부터 좋지 않았습니다. 퀴퀴한 냄새와 덕지덕지 앉아있는 각질, 길게 자라있는 수염 등..집에서 제대로 간호를 받은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가족들이 그냥 내 버려두었다가 돌아가실 때가 되어서야 병원 응급실로 모셔온 듯 한 느낌...그렇지만 문제는 그 환자가 어떤 술기, 그것도 "몸 어딘가를 굵은 바늘로 찌르는" 처치를 받다가 숨이 멈춘 것입니다. 그 장면을 모두 본 아들의 파상공세...늑대별이 자신의 아버지를 "굵은 주사바늘로 찔러서" 죽였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설명을 해도 들을 태세가 아니고...결국 치프레지던트가 내려와서 아들과 얘기를 한 후 죽은 사람의 흉부 x-ray를 찍기로 했습니다. x-ray에서 기흉이나 혈흉이 발견되면 꼼짝없이 늑대별은 "살인마"로 찍히는 상황.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래도 x-ray가 현상되어 나올 때는 긴장되더군요. 뭐...결론은 예상하시다시피 x-ray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그 할아버지는 조용히 영안실로 모셔졌습니다.

정말...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우연히도 인과관계가 없는 두 사건이 겹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피한 앞의 두 의사 분은 정말 천운이라고 할 수 있지요. 평소 덕을 많이 쌓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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