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 트인 과학자
말문 트인 과학자
<랜디 올슨> 저 /<윤용아> 역 / 정은문고(신라애드) / 2011년04월  
13,000원 → 11,700원


자신의 최대의 약점을 남에게 들켰을 때 느끼는 감정은 어떨까요? 우선 드는 생각은 스스로에게 엄청나게 화를 낼 것 같고, 이어서 참담한 심정에 빠질 것 같습니다. 영화감독, 제작자 그리고 과학 해설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랜디 올슨이 쓴 <말문 트인 과학자>를 읽고서 바로 이런 심정이었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지난 3월 제가 참여하고 있는 <꼬끼오 아카데미>에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가 결정되면서 시작된 제2차 광우병파동의 경과에 관한 내용을 아카데미에 참석한 분들께 설명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과학계 사람들을 위하여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 준비했던 자료를 일부 보완해서 30분 정도 설명을 하였습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겠습니다만, 이런 자리에서는 설명을 해가면서 듣는 분들의 눈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반응을 살펴가면서 설명의 수위를 조절하곤 합니다. 설명이 끝나고서는 나름대로는 반응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2주일이 지난 다음에 돌아온 청중반응은 한마디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였습니다.

2008년 제2차 광우병파동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모두 광우병 전문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제 블로그에서 다룬 광우병에 대한 설명에 대하여 상당히 깊은 수준으로 반응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수준을 고려하여 설명의 수준을 정하였지만, 막상 이날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부딪힌 것입니다. 바로 올슨이 지적하는 과학자가 일반인에게 과학을 설명하면서 범하기 쉬운 정보의 정확도에 대한 실수와 청중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두 가지 치명적 실수(24쪽) 가운데 두 번째 실수를 한 것입니다.

랜디 올슨의 <말문 트인 과학자>를 일찍 읽었더라면 “대중과의 의사소통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자극과 충족이다. 처음엔 대중을 자극하여 흥미를 유발시켜야 하며, 그 다음엔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103쪽)”는 그의 조언을 새겼다가 써먹었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과학자께서 발표를 준비하는 것을 보면 사전에 꼼꼼히 발표 자료를 준비한 다음에 자료에 맞추어 발표할 내용을 담은 시나리오를 준비하는데 심지어는 적절한 유머까지도 섞어 넣습니다. 다음 단계에서는 이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외워서 발표당일에는 외운 내용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풀어낸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도 외국에 나가서 발표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발표할 자료를 준비한 다음에 자료를 프린트한 다음에 여기에 발표할 내용을 모두 써놓은 다음에 외우게 되는데 막상 발표장에 서면 적어놓은 것을 잊어버릴까 두려워 원고를 들고 발표를 시작하고 결국은 원고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발표를 마치게 됩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발표할 경우에는 발표 자료를 준비한 다음 몇 차례 넘겨보면서 발표할 내용을 머릿속에서 정리한 다음에 발표를 듣는 분들의 반응에 따라서 유연하게 발표를 진행하게 됩니다. 물론 올슨이 마귀할멈 연기교수로부터 배운 “훌륭한 배우는 대사를 외우고 그 다음 잊어버린다.(68쪽)”는 기본원칙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하겠습니다만, 상황에 따라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과학자는 어떤 글을 읽을 때 글쓴이가 잘 못 행각할 수 있다는 걸 가정하고 읽는다. 그리고 글쓴이는 데이터나 인용문들을 제시하며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논문에 포함된 모든 가설마다 과학자는 ‘이걸 그대로 믿어도 될까? 라는 생각을 하며 읽는다.(185쪽)”라고 올슨이 지적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제가 리뷰를 쓰면서 가끔은 책을 읽고 발견한 오류를 리뷰에 포함시키는 것을 이해하여 주십사하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논문을 읽으면서 새로운 착안점을 구하기 위하여 비판적 시각으로 읽는 것은 기본이고 제자들의 논문을 검토하면서 오류를 놓치게 되면 그 논문을 읽는 독자들의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신경을 집중하여 꼼꼼하게 읽는 습관이 미치는 영향 때문입니다.

저자 하버드대학에서 해양생물학을 전공하고 뉴햄프셔대학에서 교수를 지내고 있다가 영화를 공부하기 위하여 대학을 다시 다닌 저자의 특이한 경력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이 책을 번역한 윤용하교수 역시 영화감독이며 연기예술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있어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 즉 과학을 영화적으로 포장하여 대중을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잘 살린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책의 5번째 장의 제목이기도 한 [‘그런’ 과학자가 되지 마세요.]라고 할 원래 제목 ‘Don't Be Such a Scientist'를 <말문 트인 과학자>라고 정한 뜻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책제목을 정하는 것이 책을 쓰는 일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서 과학자들의 말문이 트일 것이라는 기대를 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과학자들이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야단치는 것을 콕 짚어도 좋을 것 같고, 오히려 제목을 <제발 쫌... 박사님!>으로 하고 부제를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과학을 전하는 방법-으로 하면 어땠을까 혼자 생각해보았습니다. 홍보자료를 준비할 때 윗분들이 입이 닳도록 하는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써오라‘는 주문이 새삼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정말 사족입니다만, 이 책을 추천해주신 분들은 랜디 올슨감독이 만든 영화를 정말 보셨는지 궁금해집니다. 그의 작품 <얼간이들의 무리: 진화론과 지적 설계론의 향연>이나 <시즐: 지구온난화 코미디>가 국내 개봉된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아서입니다.

어떻든 과학자들의 필독서가 되어야 할 책입니다.


말문 트인 과학자


랜디 올슨 지음 / 윤용아 옮김 / 259쪽 / 2011년 4월 21일 / 정은문고 펴냄

목차

저자의 말: 한국어판에 붙이는 글

프롤로그 실수투성이: 재미없는 과학자들
감정도 없는 ‘먹물’ 과학자 / 과학자의 두 가지 실수 / 전향한 과학자의 충고

하나. 낙타의 다리는 어디로 갔을까?
머리냐 성기냐 그것이 문제로다 / 생각 대신 꽃을 걷어차라! / 즉흥 만세! 리얼리티 쇼 성공시대 / 멘델 혹은 플레밍, 수줍은 과학자들 / 낙타의 다리는 어디로 갔을까? / 내가 아니라 ‘당신’을 돋보이게 하기 / 과학자의 비호감 비법

둘. 있잖아, 문제는 자극이야!
과학자의 몽상 1-메시지 보냈잖아! / 과학자의 몽상 2-급소만 찌르면 돼! / 과학자의 몽상 3-대중이 알아서 움직일 거야! / 미디어 사회에서 살아남기 / 자극시켜라 그리고 충족시켜라 / 스티븐 제이 굴드 혹은 동영상 / 그런데 문어 군은 언제 나오는 거야?

셋. '타이타닉'씨, 별자리가 틀려요
그만하면 충분합니다, 미스터 장황! / 이야기가 필요해, 이야기가 필요해, 이야기가 필요해 / 과학논문은 ‘과연’ 사기인가? / 곤란한 선택: 정확할까? 지루할까? / 재미있는 파워포인트 '불편한 진실' / ‘공짜 칠면조’를 버리는 과학자들 / '타이타닉'씨, 별자리가 틀려요
 
넷. 호감은 힘이 세다
똑똑한 ‘척’ 말고 똑똑 ‘하게’ 처신하라 / ‘아니다’라는 말만 하는 직업 / 호감은 순간의 판단이다 / 천만 번과 단 한 번도……

다섯 ‘그런’ 과학자는 되지 마세요!
과학에 목소리가 있다면…… 칼 세이건 / 과학자의 1/3은 대중을 거부한다 / 과학계의 마르셀 뒤샹과 마이클 무어? / ‘그런’ 과학자는 되지 마세요! / 두 개의 언어: 과학과 대중
 
부록
1. 녹다운된 '시즐'
2. 과학자를 위한 영화 만들기
3. 랜디 올슨의 필모그라피
참고문헌 및 영상
감사의 말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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