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일이다. 수업시간 종이 울렸고 나는 자리에 앉아 교과서를 펼쳤다. 오늘 배울 내용이 뭔가 슬쩍 읽어보는데 재미난 단어가 보였다. 센물, 단물.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단어가 이래? 힘이 센 물인가? 이건 달콤한 물이야?

내용을 읽어보니 센물은 칼슘이나 마그네슘 이온이 많이 함유되어 비누에 잘 씻기지 않는 물이고, 단물은 반대로 비누에 잘 씻기는 물이었다. 그래서 외할머니댁 우물에서 길어온 물은 비누칠을 씻어내도 뽀득거리지 않고 계속 맨질맨질한 느낌이었구나. 혼자 피식거리는 동안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교과서를 편 선생님은 느닷없이 학생 하나를 지목해 질문을 던졌다.

“설탕물이 단물이에요, 꿀물이 단물이에요?”

나는 큭큭거리며 웃었다. 선생님께서도 싱글싱글 웃으며 내 친구를 바라보았는데, 녀석은 교과서를 예습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당황한 녀석은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도움 받을 곳은 없었다. 얼른 대답해보라는 선생님의 재촉에 눈알을 디굴디굴 굴리던 녀석이 떠듬떠듬 답했다.

“설…… 설탕물이요.”

푸핫. 교실 여기저기에서 나지막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는 사람은 예습을 한 사람이고 어리둥절해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경우다. 엉뚱한 대답에 선생님도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맞아요? 그럼 꿀물은 단물이 아니에요? 설탕물만 단물이에요?”


“네…… 네에…….”

선생님의 눈치를 보던 녀석은 선생님의 얼굴에 피어난 미소를 보자 마음이 놓였나보다. 정답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했지만 그래도 그냥 ‘설탕물이 단물’로 밀고 나가기로 맘먹은 모양이다. 교실 안에는 잔잔한 웃음이 흘렀고 선생님께서는 그 뒤에 앉아있던 친구를 지목했다. 좀 똑똑한 녀석을 고르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교과서와는 전혀 거리가 먼, 친구들끼리 장난으로 ‘꼴통’이라 부르던 녀석이었다. 녀석은 선생님의 부름에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의 질문이 이어졌다.

“설탕물이 단물이에요, 꿀물이 단물이에요?”


“설탕물입니다!”

커다랗고 단호한 대답에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졌다. 녀석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교과서는 쳐다보지도 않는 녀석이라 센물 단물이 뭔지 알리 만무하고, 앞에서 대답했던 녀석이 설탕물이 단물이라 했는데 어떻게 감히 자신이 다르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무식이 용감이라고 어차피 대답하는 거 확실하게 밀고 가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너무나 자신 있는 대답에 선생님마저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정말로 설탕물이 단물이에요?”


“네! 맞습니다!”

대답은 한층 우렁차졌다. 선생님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반 전체에게 물었다.

“여러분. 어때요. 저 대답이 맞나요? 설탕물이 단물이에요?”

정답을 아는 녀석은 아는 녀석대로 웃고, 모르는 녀석은 그저 이 상황이 웃겨서 웃었다. 아이들이 대답을 안 하자 선생님께서 재차 물었다.

“어서 대답을 해 봐요. 설탕물이 단물이에요?”


“네!”

꼴통이 또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 때 난감한 일이 발생했다. 몇몇 아이들이 꼴통에게 동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잘 모르는 내용,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안 할 수는 없고 정답도 모르니 그냥 ‘예’라고 대답한 것이다. 선생님도 살짝 당황했고, 정답을 아는 친구들도 당황했다.

“여러분, 정말 설탕물이 단물 맞나요?”
“예…….”
“설탕물이 단물 맞죠?”
“예.”
“정확하게 대답 해봐요! 설탕물이 단물이죠?”
“네!”

어느새 우리 반 아이들은 입을 맞춰 크게 ‘네!’라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꼴통의 단호하고 자신 있는 대답,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군중심리가 ‘뭔가 좀 이상하지만 설탕물이 단물인가보다’라는 공감을 형성한 것이다. 몇몇 아이들이 틀린 답이라는 것을 수군거리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자신 있게 ‘단물은 그런 게 아닙니다.’ 라고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정답을 알고 있지만 자신 있게 일어나 대답할 용기는 없었다. 아이들의 대답이 커져갈 수록 선생님의 얼굴은 웃음기가 사라지고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선생님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놈들아! 설탕물이 단물이냐? 교과서 미리 예습한 놈이 하나도 없는 거야? 니들 공부 안할래?”

그제서야 아이들은 자신들이 믿었던 답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그날 우리는 격노하신 선생님으로부터 엄청난 꾸지람과 설교를 들어야 했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말이 있다. 지식이 부족하고 소신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의 의도대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그가 옳다면 다행이지만 잘못된 주장에 이끌리는 수도 많다. 나중에 후회해봐야 무엇하겠는가. 어차피 목소리 큰 놈을 따라간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을.

네트워크의 발전은 개인의 발언권에 힘을 더해주었다. 갖가지 정보와 주장이 난무하는 네트워크상에서 그들의 주장이 옳은지 여부에 대한 검증절차 없이 즉흥적인 감정에 휘말려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 근거가 부족한 괴담들이 떠돌아다니고 그 괴담들은 소신 없고 지식이 부족한 이들에 의해 덩치가 커지게 된다. 개인의 발언권도 중요하지만 이건 뭔가 무책임한 행위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그저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남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고 ‘설탕물이 단물!’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도 모자라 네트워크상의 ‘꼴통친구’가 되어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자신이 내뱉는 말은 곧 자신이다. 요즘은 다들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다. 하물며 기자라는 사람들도 진위확인 없이 기사를 쓰기도 한다. 나중에 그 내용이 거짓으로 밝혀지면 ‘아니면 말고’식으로 대처한다. 기자들이 이런데 일반인은 어떻겠는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충분한 자신감이 밑받침되어야 한다. 그저 남들이 말하는 대로 책임의식 없이 지껄이다보면 언젠가는 세상이라는 선생님으로부터 불호령을 받을 날이 오지 않을는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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