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검증된(연구중심병원) 연구자들이 신의료기술(의약품 또는 처치법)을 가지고 임상연구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법안


2020년 어느 날. 서울에 있는 S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주니어 교수인 김 선생과 환자 이 씨의 대화.

김 교수 : 이 선생님, 지금까지 항암제 투여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환자 이씨 : 뭘요, 참을 만 했습니다. 검사 결과는 어떤가요?

김 교수 :  여섯 사이클의 항암제 투여를 다 마쳤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암이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환자 이씨 : 그럼 ……. 이제 포기하란 말인가요?! 그럴 순 없습니다. 다른 치료법은 없는 것인가요?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선생님……. 흑흑흑…….

김 교수 : 이 선생님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나온 항암제 중에 지금 투약하신 것 보다 더 효과 있다고 증명된 것은 없습니다……. 다만…….

환자 이씨 : 뭔가요?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인가요?

김 교수 : 다른 약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추가로 다시 항암 치료를 하는 것이 일부 환자에게 효과를 보인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저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하지만…….

환자 이씨 : 그럼 한 번 더 투약 해주세요. 그럼 되잖습니까?

김 교수 : 지금 치료하고 있는 약물이 건강보험에서는 이 항암투여를 여섯 사이클까지만 보험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더 투약하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가 검증되지 않아서인데…….

환자 이씨 : 그럼 포기하라는 말씀이신가요?

김 교수 : 아니요.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이라. 저는 그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임상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도하는 소위 말하는 연구자 주도 연구입니다. (IRB등 윤리기구 및 식약청 허가된 임상임을 설명하며) 여기에 참가 하셔서 지금의 항암제 투약을 더 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릅니다만 그렇게 모아진 결과가 좋을 경우에는 지금처럼 여섯 번만 보험 인정되는 것을 변경할 수 있는 근거도 되고, 지금의 항암제 투약 프로토콜을 바꾸는 귀중한 의학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상담 후 환자 이 씨는 임상연구를 승낙하고 진료실을 떠났다.

2020년 한 대학 병원 진료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상상해봤다. 물론 지금도 보험 인정되지 않는 일곱 번째 항암 사이클의 의미를 이야기하며 환자와 대화하는 의사들이 많을 줄 안다. 그러나 그렇게 투약된 경우 '임의비급여'로 불법 논란에 휩쓸리기 쉽다는 것이 문제다. 상상속의 대화는 2011년 현실에선 불법이란 말이다. 아무리 환자를 위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후에 심평원에 신고(?)가 들어가면 치료비 전액을 병원에서 물어줘야 한다. 심평원의 환수 조치만 무서운 것이 아니다. 환자들에게 보험 혜택을 주기 위해 논문으로 써서 학문적 근거를 만들고자 하더라도 엄격해진 윤리적 기준으로 인해 허가를 받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연구자가 주도해 임상연구를 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져 간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 의학 연구의 대부분이 제약사나 의료기기 업체의 후원으로 주도되고 있다. 그러다 보면 학문적 신뢰 논란뿐 아니라 '돈 되는 연구'만 진행되는 문제도 생긴다.

최근 보건의료기술진흥법 개정안을 두고 말이 많다. 특히 환자단체에서 '환자들이 몸도 대고 돈까지 대라는 법안'으로 보도 자료를 배포하면서 논란이 커져가고 있다. 논란이 된 개정안에는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된 의료기관에서 연구개발을 위하여 신의료기술 등을 대상자에게 사용할 경우 3년 이내의 기간을 정해 비급여대상으로 허용할 수 있도록 했고 연구자 주도 임상연구의 경우 대조군에 대해 급여를 인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고, 임상연구라는 단어에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반인들과 비급여라는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괴상한 법안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취지는 어느 정도 검증된(연구중심병원) 연구자들이 신의료기술(의약품 또는 처치법)을 가지고 임상연구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법안이다. 물론 그 혜택은 궁극적으로 환자에게 돌아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연구가 가능해야 보험의 급여 범위를 합리적으로 늘릴 수도 있고 신의료기술을 보험 적용하도록 근거를 만들 수 있으니까 말이다. 환자단체의 오해는 제약사의 신약 허가용 임상시험과 연구자 주도 연구의 차이를 몰라 생긴 일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거대 자본을 가지고 여러 연구를 주도하는 제약사나 기타 의료 관련 업체의 연구에 이런 특혜를 줄 이유는 없다. 보건복지부도 밝혔듯 이번 법안은 제약사의 허가용 임상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문제는 연구중심병원 선정은 어떻게 이뤄지고 사실상 연구중심병원만 연구자 주도 연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지, 연구자 주도 연구에 있어 제약사와 연구자와의 유착 여부를 가릴 방편은 마련했는가에 있다. 정부가 우려하는 환자 쏠림 현상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과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또 다른 이슈와 충돌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않은가?

원래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누군가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법안의 취지를 따지고 보면 불만을 가질 대상은 환자가 아닐 것 같다. 지금 데모라도 해야 하는 것은 연구중심병원이 되지 못할 병원들 아닐까? 연구중심병원이 되지 못한 대학병원들의 교수들은 앞으로 연구 주도 연구는 어떻게 할지 묻고 싶다. 누구나 연구를 빌미로 신의료를 환자 대상으로 임상연구하도록 할 수는 없다는 전제는 동의하나 그 기준을 연구중심병원으로 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 한번 따져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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