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편의 이야기 DNR에 등장한 80세 신장암 폐전이 할아버지의 할머니를 오늘 아침 회진 때 만나 이야기를 나누웠다. 할머니랑 얘기를 하다 보니 작년 항암치료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시점에는 의무기록에 적혀 있지 않는 많은 사연과 논란들이 있었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의료진을 아주 많이 원망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간 지금 환자 상태가 나빠지고 있는 것에 대해 눈물을 보이며 아쉬움을 토로하신다.

2005년 처음 진단받고 신장 절제술을 한 후 2008년에 재발했고
재발한 기관지 병변 쪽으로 방사선치료도 하고 기관지 내시경으로 고주파술 등도 하셨다고 한다.
돈도 많이 쓰셨다고 하고...

수술 이후로 보험 되는 약이 없고,
항암제 치료 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전혀 없고
병이 좀 나빠지고 있다고 해도, 본인은 잘 모르겠고, 비싼 약 써 봤자 효과가 100% 도 아닌데 늙은 나이에 얼마나 더 살겠다고 치료하나 싶었다고 하신다.
나쁘지 않은 결정 같다.

정작 가족들이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암의 재발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불평, 불안, 정서 불안정 등의 문제였다고 한다.
할머니는 지난 5년간 할아버지 병치레를 하면서
자기 몸, 자기 가족이 다 만신창이 되셨다고 눈물을 흘리신다.
자기도 당뇨에 갑상선암 환자인데 30년 동안 병원 다니고 약 먹고 치료하고 있다고
엊그제도 딴 병원 가서 검사하고 약 받아 왔다고
그러면서 서러움이 받치는지 꺼이꺼이 통곡을 하신다.

난 할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할머니 그래도 30년 동안 갑상선암 치료를 했다면, 사실 암은 잘 치료되었다는 뜻이에요.
호르몬제는 기능을 보조하기 위해 먹는거구요. 암 치료가 아니라니까요!'
할머니는 이미 너무 서러우신지 내 얘기를 들을 기세가 아니다.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연세가 많으신 대도 병의 경과도 잘 이해하고 계시고
의학적 결정이 필요하던 시점에 의사가 뭐라고 했는지 소상히 기억하시고 있으며
비교적 사실에 가까운 정보를 알고 계셨다.
오해의 여지가 약간은 있었던 것 같지만 지금 연세에 이 정도면 대단하시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병을 가지고 사시는 동안
치료 이후 본인들의 연장된 삶, 시간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었다고 하신다.
'할머니 갑상선암은 수술만 하면 잘 낫는 병이에요.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된다니까요!'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할머니는 자신의 젊음이, 육체가, 가족이 암 때문에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계신다.
얼굴도 시름이 가득이다.

할아버지 마음에 대한 보살핌도 별로 없어
할아버지는 지난 1년간 증상도 없고 불편함이 없었던 시간이 있었는데도
그 시간동안 마음이 힘들고 죽지 못해 사는 시간으로 연명되고 있었다 하신다.

할아버지가 숨이 차서
이런 자기 얘기를 하시니
듣는 내가 숨이 더 찬다.
병이 좋아지지 않으면 누구나 슬프고 그 결과에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감정들이 잘 조절되지 않고 과도한 감정으로 남아있으면
인생이 너무 힘들고 비참해진다.

특히 보호자가 더 그런 것 같다.
암 환자의 삶의 질에 대한 많은 연구에서 이제 가족과 보호자들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고
이들 1차 지지집단에 대한  support 까지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 암환자 삶의 질도 이제 연구가 시작된 판국에 너무 앞서나갈 수도, 나갈 필요도 없다.
그러나 family dynamics는 정말 환자 치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라는 점은 확실하다.
우리나라처럼 공적 보험으로 커버하는 영역이 제한되고 가족이 중요한 부양 주체가 되는 곳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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