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저께 입원한 40대 알코올중독에 의한 간경변 아줌마.

1. 지난달에 입원한 70대 중반의 담도암 말기 할아버지.


6개월 전 황달이 있어 내원했고, 당시 담도내시경으로 진단하였고, 이미 진행이 많이 되어있어서 막힌 곳에 스텐트를 넣어 담즙이 배설되도록 시술하였다. 약 2년 전 뇌출혈로 사지마비 상태, 호흡도 기관삽관 상태, 식사도 관급식. 요즘 유명해진 노태우 전 대통령과 비슷한 시술을 받은 상태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듯.
 
6달 전 넣어 놓은 담도스텐트가 막혀서 지난달에 입원했다. 기존의 스텐트 위에 새 스텐트를 하나 더 넣어 담즙이 빠져나가도록 해 놓았고, 퇴원을 해야 하는데 폐렴도 생기고 이래저래 합병증들이 생겨서 보름 정도 입원해 있다가 퇴원하였다.
 
내가 놀란 것은 할머니 때문이다.
 
할머니도 고부랑 할머니인데 정말 할아버지 간호를 지극정성으로 하셨다.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의식도 없는 할아버지를 정말 정말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회진을 돌때면 항상 병실 밖까지 따라 나오셔서 내 손을 잡거나, 내 가운 자락을 잡고서라도 '우리 할아버지 살아서 집에 갈 수 있죠?'를 되물으시면 눈물짓기도 하셨다. 당장 돌아가실 상황은 아니어서, 큰 걱정은 안하셔도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려도 못내 불안하셨나보다. 그리고 알다시피 난 아주 쌀쌀 맞으며 불친절한 의사다.
 
보통 하루에 한번, 아침에 회진을 돌고, 저녁에는 시술이 늦게 끝나서 전공의나 소화기내과 전임의 선생님들과 차트와 사진을 보며 보고받고, 치료계획을 상의하기만 해도 한밤중이 되기 쉽다. 그래서 오후에는 새로 입원한 환자나, 새로운 증상이나 검사를 하는 환자가 아니면 회진을 돌지 못한다. 그런데, 이 할머니가 계속 내가 오기를 기다린다고 주치의가 보고를 하는 통에 저녁 9시에도, 어떨 때는 11시에도, 주말에 연구실에 나와 있다가도 이 할아버지를 보러 가야만했다.
 
전에 블로그에 잠깐 쓴 적이 있지만, 나는 주말이나 늦은 시간에 가운을 입고 회진을 돌지 않는 것을 나름의 원칙으로 하고 있다. 성실한 대다수의 다른 의사들이 근무시간이 아닌데 회진을 돌지 않는다고 욕을 먹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환자는 조용히 가서 만나거나, 면담실/처치실에 보면 된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할머니 덕에 당분간은 원칙을 깨고, 6인실에 가운을 입고 들어가서 생색을 내야했다.
 
간혹 과도한 집착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보호자도 만나지만, 어떻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이 할머니에게 느껴지는 것은 집착이 아니라 사랑이었고, 열정이었다.
 
 
2. 그저께 입원한 40대 알코올중독에 의한 간경변 아줌마.
 
한 달 전에 피를 토해서 입원했었는데, 아주 심한 간경변 상태였고, 위정맥류 출혈로 죽다가 살았다.
위정맥류에 대한 글은 --> http://blog.hani.co.kr/medicine/6300
 
간신히 퇴원 시켰는데, 그저께 외래에서 보니 혈색소가 6 까지 떨어졌고, 다시 출혈을 하는 것 같아 입원시켰다. 복수가 심해서 이뇨제도 많이 쓰고 있는데, 덩달아 콩팥도 나빠졌다. 간경변이 너무 심한 상태라서 며칠이나 몇 달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아주머니의 보호자인 50대 아저씨가 또 나에게 만감이 교차하도록 하고 있다.

보통의 경우 알코올중독 남자의 부인들은 아주 순종적이다. 그래서 남편이 저렇게 되도록 방치되었지 싶을 정도다. 하지만, 여자가 알코올중독이면 남편들은 버리고 도망가거나, 폭력적인 경우가 많다(내 개인적 경험으로 보면). 그런데 이 아저씨는 어쩜 이렇게 지극 정성인지 모르겠다.
 
부인이 간성혼수로 의식이 없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면 6인실 병실에서도 싫은 내색 없이 다 치운다. 위의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대소변을 치우는 것처럼, 옷과 침대, 환자의 사타구니에 뭍은 대변을 모두 닦아내고, 씻긴다. 그리고 응급내시경시술로 출혈이 지혈되면, 묵묵히 기뻐하며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한다. 그리고 환자 상태가 다시 나빠지면 안절부절못하시지만, 그렇다고 공격적이지는 않다.
 
짜증이 날 만도 한데, 아주머니 등을 토닥이고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조금만 참어. 괜찮을 거여.'라고 토닥인다.
...
의식이 없는 지가 몇 년이 지난 할아버지, 도대체 얼마의 기간 동안 술을 얼마나 마셨기에 만신창이가 되었을지 모를 아내. 이제 앞으로 한두 달을 살기 힘들 두 사람이다. 그리고 간병인을 고용할 돈이 없어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아니다.

나에게 저런 상황이 닥친다면 나는 어떠할까?

똥냄새가 온 병실을 어지럽히는 상황에서 옆 침상의 환자/보호자들에게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며 저렇게 정성껏 간병을 할 수 있을까? 의료진이나 병실의 다른 사람들에게 조급한 마음에 화를 내고 짜증을 내지 않을 수 있을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다른 가족들을 웃으며 반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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