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같은 토요일 저녁, 오프가 홀드된 일 년차 덕분에 콜에서 해방되어 오랜만에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일어나보니 시계는 저녁 열시, 습관처럼 중환자실로 들어가 환자 상태를 확인하던 찰나 기도삽관에 애를 먹고 있던 일 년차를 대신하여 삽관을 시행하고 돌아서는 길에 꼬르륵 들려오는 뱃속 장들의 아우성을 모른 채 지나갈 수 없어 병원 앞 길거리로 나섰다. 새벽 2시, 아무런 계획도 함께 식사할 친구도 없었기에 홀로 한 전기구이 통닭집 문을 열고 들어가 주문하려던 찰나 치킨이 바닥났다는 사장님의 주옥같은 말씀에 남자가 한번 술집 문을 열었으면 적어도 맥주라도 한잔해야 되지 않겠냐는 옛 성현들의 가르침에 따라 정확히 맥주 한잔만 주문할 수 있냐고 물었다.

부처님같이 자애로웠던 여사장님은 '어휴, 선생님께는 맥주 한잔이라도 파는 것이 영광이지요.'라며 글래스 잔에 생맥주 한잔을 담아왔다. 가격은 500원 정도면 어떻겠냐는 사장님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하고, 그 자리에 덩그러니 앉아 그 흔한 과자 안주 없이 맥주 한잔을 훌쩍거리며 마셨다. 괜스레 사장님께는 죄송스런 마음이 들어 다른 안주라도 주문하고 싶었건만 오로지 한정판매 전기구이 통닭만 취급하는 업소 규정상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전무했다. 차마 과자 안주라도 내어달라 요구하지 못한 채 그렇게 맥주 한잔과 함께 이 새벽은 더욱 깊어만 갔고, 한 시간 뒤 나는 테이블 위엔 500원짜리 동전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쓸쓸히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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