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의 한 아주머니는 만성적인 두통 때문에 신경과로 입원하여 검사 및 치료 받기를 원했다. 입원 당일 남편 그리고 자식들과 식사 자리 때문에 병실에 부재중이었던 관계로 MRI 예약시간을 놓쳤고, 이후 간호사의 실수로 한차례 더 지연되어 입원 3일이 되어서야 MRI를 촬영할 수 있었다. 늦은 시간에 촬영한 관계로 MRI 결과 확인이 곧바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녀의 좌측 두정엽에 자리 잡고 있었던 뇌종양은 휴일이었던 다음날 오전까지 의료진에 의해서 발견되지 못했다. 그리고 오전 11시 그녀의 의식이 갑작스레 혼미상태까지 저하되었다. 좌측 동공이 벌어졌고 곧바로 응급 CT 촬영이 진행되었다.

CT 촬영결과 좌측 전두엽에 100cc 가량의 뇌출혈 소견이 관찰되었고, 우리는 전날 촬영했던 MRI에서 해당부위에 큼지막한 뇌종양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응급으로 갑압 및 종양 제거술이 진행되었고, 이후에도 의식이 깨지 않아 결국 수술 20일째인 오늘 항암방사선 치료를 위해서 기관절개술을 시행하였다. 종양에 대한 검사와 발견, 그리고 수술 결정이 조금만 더 빨리 이루어졌더라면 비록 악성이라 할지라도 지금보다는 나은 상태와 예후를 보일 수 있었건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검사 및 치료가 지연되었던 것이 결국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던 것이다.

면담을 원하는 보호자들 앞에 서서 그간에 시행했던 검사결과와 환자 상태 및 향후 치료 계획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눈물을 펑펑 쏟는 그들 앞에서 발견이 늦었고 그 때문에 치료가 지연되어 이런 결과까지 초래된 것에 대해서 무척이나 안타깝다는 이야기와 함께 40%에 육박하는 ki-67 (뇌종양, 특히 신경아교종의 조직학적 등급과 관련하여 종양의 악성도와 증식능을 추정할 수 있고, 환자의 예후를 예측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인자임) 수치와 함께 재발률이 높고 추후 재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설명하는 스스로가 어찌나 밉고 원망스러워 그 자리를 도저히 오래 지킬 수가 없었다. 차마 거짓말은 할 수 없어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던 내 스스로에게 무한한 실망감만 느낄 뿐이었다.

이틀 전 어버이날 어머니 침대 곁에 놔달라며 큰 딸이 내게 전했던 카네이션이 문득 떠올랐다. 당시 응급 환자 때문에 수술 챙기느라 당직실에 두고 깜빡했던 그 카네이션을 나는 어버이날이 지나고 새벽 1시가 되서야 아주머니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오늘 어머니 MRI를 목전에 두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카네이션을 전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큰 딸 앞에서 나는 아무런 위로도 전할 수 없었다. 또한 카네이션을 전해달라는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차마 그녀에게 고백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 때문에 무거워진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맥없이 당직실로 들어와 늘 그랬던 것처럼 자판을 두드리며 일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그녀와 가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부디 곧 시작할 항암치료라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그녀가 조금이라도 가족 곁에 더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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