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하나의 여행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의 여행 일정 속에 살아가지만, 어느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는 날은 없다고 할 정도로, 요란하고 시끌벅적하죠.
아, 물론 때로는 너무 아무 일 없어 무료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도 어김없이, 시간은 똑딱똑딱 잘도 흘러가고 있고, 우리의 여행은 다른 사건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많은 삶의 문제들에는 건강 문제, 돈 문제, 애정 문제 같은 것들이 있죠.
그리고 이런 것들 중에서 어느 게 더 중요하다-덜 중요하다를 따지기 힘들게 문제들끼리 얽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속이 아파 병원을 찾은 한 사람의 사정을 잠깐 들여다볼까요?
이 사람의 드러난 문제는 속이 아프다는 것 하나일 뿐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쓰릴 수도 있고, 미식거리고 더부룩하고, 자꾸 헛배가 부르다고 할 수도 있죠. 진단명으로는 아마 만성 위염이나 기능성 위장 장애를 의심해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 우리가 약만 주고, 식사 조심하세요―라고 하며 위장 증상에 좋지 못한 음식을 자세-히 알려준다고 한들, 이 사람의 문제는 큰 틀에서 전혀 해결되지 않거나 오히려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우리 주변의 흔한 88만원 세대가 그렇듯) 돈이 없어요. 목구멍이 포도청,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가죠.

돈이 없으면 밥을 못 먹고, 마음에 그리 들지도 않는 직장을 쉬지도 못하면서 계속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다니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몸이 아파지기 쉽죠, 돈도 없는데 아프기까지 하다니! 아픔은 몇 배가 되고 병원에 제 때 가지 못해 문제도 더 커지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소진되어갈 때쯤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가 떨어지고, 가뜩이나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 나이는 더 들었지만 경력은 더 짧은 팀원이 폭탄이라도 터트린다면, 못 먹는 술 한 번 많이 먹을 수 있잖아요? 그럼 다음날부터 속이 아프게 되는 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죠. 게다가 병원 갈 시간 없어서 약국에서 정체 모를 약들이나 짜먹는 제산제나 사 먹으면서 버티고, 그러면서도 정신 차리고 일하려고 빈속에 안 먹던 커피를 열심히 들이키게 된다면.....

이 사람의 속이 멀쩡한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진료실에서 만나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조금만 쉬고, 조금만 식사를 잘 해도 충분히 나을 수 있는 경우인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처방전에 아무리 “얼마동안은 꼭 쉬세요. 식사 잘 하시고, 담배 피우지 마세요. 술 좀 작작 먹고요.” 라고 말한다 한들 먹고 살기 위해 줄줄이 이어지고 얽혀 있는 삶의 문제들은 의사가 짧은 말 몇 마디로는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거죠.

건강 문제로 연결될 수 있는 (혹은 건강 문제에서 시작되는) 우리가 가진 삶의 문제들은 이 밖에도 정말 많습니다.

기르고 있는 고양이가 늘 방문을 긁어 대는 통에 잠을 자지 못할 수도 있고, 어제 친구들과 오랜만에 먹은 고추장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때문에 오늘 해야 할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해서 과장님에게 깨지고 우울해 질 수도 있죠.

술을 아무리 먹어도, 밤을 이삼일쯤 자지 않아도 멀쩡히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주변의 친구들이나 동료들을 보고 무한한 부러움을 느낄 때가 있나요? 혹은 나도 예전에는 그랬는데-하고 이제는 점차 예전 같지는 않은 몸에 한탄을 하나요? 그것도 아니라면,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무한 체력, 무쇠 위장의 소유자이신가요?

네, 저는 바로 당신에게 묻고 싶어요. 당신은 어떤 문제가 있나요?



삶의 문제는 살아 있는 자체만으로도 어떤 식으로든 생길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러나 문제없는 삶이 꼭 좋은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문제와 함께 이어지는 삶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저희는 늘 사람의 삶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 왔고,
삶의 문제라는 틀 속에서 건강이라는 주제를 이해하고 어떻게든 같이 가져가고 싶어요.

지난 몇 년간 제닥은 카페와 병원이라는 모습을 통해 일상과 의료가 만날 수 있는 특수한 형태를 만들어서 진료실에서의 주사나 검사, 처치보다는 의사와 이용자의 관계를 중심으로 건강 문제를 삶의 문제로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죠.  

앞으로 제닥이 생협으로 가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더 이상 특별한 카페의 주인, 진료실 안에서 착한 (척 하는) 의사, 애쓰는 의사의 활동 범위에서만 사람들을 만나는 정도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기에, 또다시 새로운 구조와 관계를 통해 보다 일상적인 삶을 더 많이 공유하고자 하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취지로 제닥이 생협으로서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가며 앞으로 가려는 길에 공감하는 분들이 있는 것이 저희에겐 큰 힘이자 위안이 된답니다.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