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를 둔 부모들은 소아청소년과 진료 받으러 갔다가 온 김에 영유아 검진도 받겠다고 하면 다른 날로 예약하라는 이야기 들어보신 적 있을 것이다. 병원의 표면적인 이유는 ‘검진에 걸리는 시간이 많다보니 다른 환자를 위해서 좀 한가한 시간에 방문 예약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편의를 봐주고 싶은 단골 환자에게도 그렇게 못하는 다른 이유도 있다.

숨은 이유는 돈 문제다. 진료 받으러 온 당일 날 검진을 할 경우에는 진찰료를 보험 공단에 청구할 수가 없다. 환자를 진료해도 그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없으니 대기실에 기다리는 환자가 없더라도 ‘온 김에 영유아 검진도...’라는 부탁을 들어 줄 수가 없는 것이다.

혹 그렇게 편의를 봐주고 진찰료와 영유아 검진 비용 모두를 청구할 경우에는 이중청구로 간주해 공단에서 돈을 환수하게 된다. 혹 ‘이 소아과는 한 번에 해결해 주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불편하게 해?’라고 불평하셨던 분들이 많으셨을 줄 안다. 죄송하다. 하지만 그 원인은 병원이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게 만들어 놓은 제도의 문제다.

이 문제로 동네 병원들과 정부는 법정에 설 예정이다. 뭐 의사들이 갑자기 착해져서 ‘환자가 불편하니 그렇게 하지 마쇼!’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몇 몇 병원에서는 환자 편의를 봐준다고 당일 진료도 하고 검진도 하고 나서 두 건을 모두 청구하기도 했는데 공단이 과거 2년 사례를 뒤져서 보험에서 지급한 돈을 환수하겠다고 나서면서 갈등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공단은 왜 갑자기 2년 전 자료까지 뒤져서 환수하겠다고 할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국정 감사에서 건강검진이 건보 재정을 악화시키는 부분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라는데... 이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2007년 영유아 건강검진을 제도화 하겠다며 일선 병원의 도움(?)을 간절히 원했던 모양과는 사뭇 태도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당시엔 꽤 많이 병원 사정을 봐줄 듯 했는데 말이다.

대표적인 것이 설명회에서 의사가 두 명일 경우엔 한 명이 영유아 검진을 하고 다른 의사가 진료를 봤을 때엔 청구가 가능하다고 설명한 부분이다. 이 이야기만 믿고 더 검토하지 않고 의사 두 명이 있는 소아과에서는 열심히 당일 원스톱 서비스(진료와 영유아 검진 모두 해결)를 해줬다가 2년 치 진료비를 환수 당할 위기(?)에 처했다. 누가 옳으냐를 따지기 전에 잘 생각해보면 애시 당초 환자의 불편에 대해 의사들이나 정부나 신경 안 쓴 것부터 잘못된 것이다.

현재 건강검진 법령에 따라 검진 당일 진료비 청구가 불가하도록 돼 있는 것은 성인들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성인 검진이 기계가 하는 검사다 보니 마지막에 의사가 상담하면서 하는 것은 정상 비정상 부분이 무엇이 있는지 진료가 필요한지 판단하는 것이 전부다. 이런 성인 검진 상담을 생각하면 감기와 같은 간단한 진료를 하고 또 공단에 추가 비용을 청구하는 것이 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검진과 진료비 청구가 동시에 안 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영유아 검진은 성인 검진과 다르다. 의사가 영유아의 체중부터 머리 둘레 등을 측정하며 성장 발육에 이상이 없는지 신체검사를 통해 판단하는 일이다. 성인과는 다른 검진이고 의사의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이런 영유아 검진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일반 성인 검진과는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고 애초에 주장했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환자의 불편을 걱정하기 보다는 병원 경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예약하고 다음에 다시 오세요’라는 설명을 하게 될 것은 너무나 뻔했다. 환자를 다시 오게끔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정부는 영유아 검진 제도 정착 당시 매뉴얼은 일반적인 설명을 담은 자료일 뿐 법령에 따른 환수 조치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라 의사들과의 갈등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우리의 경우 민간의료가 사실상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을 맡아서 하고 있기 때문에 보건당국과 의료기관의 신뢰와 긴밀한 협조가 중요할 수밖에 없으나 이번 사건을 보듯 현실은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결국 의-정 불신 때문에 소비자가 한 번 병원가면 될 일을 두 번 가도록 하는 불편이 생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이건을 통해 미봉책이 아닌 의-정 갈등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은 과한 바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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