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유방암 진단 시 유방 내 병의 크기가 크다거나 겨드랑이 림프절까지 부분전이가 되어 있는 경우 바로 수술을 할 수도 있지만 수술 전 항암치료를 8차에 걸쳐 받을 수도 있다. (혹은 약제에 따라 6번을 받을 수도 있다.) 우리병원은 수술 전 항암치료를 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수술 전 항암치료를 하면 이 환자에서 항암제가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잘 알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처음에 크기가 얼마만큼 컸는데  나중에 수술을 하고 보니 종양의 크기가 얼마만하게 줄었다 하는 것들은 항암제 효과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직접적인 지표가 된다.

치료를 받으면서 환자들이 스스로 만져보면서도 알 수 있다.

'앞에 4 주기를 할 때는 많이 줄었는데, 뒤쪽 4주기에는 별로 안 줄어드는 거 같아요.'
'혹은 앞에는 잘 모르겠는데 뒤쪽 4주기에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환자들이 직접 한다.

암 조직 자체를 수술 전후로 비교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많은 연구가 병행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여하간 수술 전 항암치료를 받은 경우, 수술을 하고 보니 암세포가 하나도 남지 않은 경우 의사들은 그것을 병리학적 완전관해(pCR, pathologic complete response)라고 부른다. 그리고 pCR이 획득되면 재발의 위험이 매우 낮아진다.

한마디로 올레~~인 것이다.

수술을 하고 나서 최종 병리리포트가 나올 때 그걸 열어보는 순간은 매우 조마조마하고 떨리는 순간이다. 환자만큼이나.

어제 외래에는 수술을 마친 pCR 환자가 2명이나 오셨다.

한분은 40세 내 또래 환자분. 1차부터 8차까지 계속 눈물바람에 치료 안하겠다며 나를 못살게 굴었다. 환자도 인정한다. 자기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탁소텔을 쓰면서는 우울증도 가볍게 겹쳐서 외래 한번 볼 때마다 서로가 아주 힘들었다. 그런 그녀가 pCR이 된 것이다. 주스 한 박스를 사들고 외래에 왔다.

그녀는 고마움도 이렇게 표현한다. '아이고, 내가 이제 지겨워서 선생님 안 볼라고 했는데 자꾸 외래를 잡아주니까 할 수 없이 왔어. 이제 안 봐도 되죠?' 그러면서 주스를 쓱 밀어놓고 가신다. '아이고, 나보고 호르몬제를 5년이나 먹으래. 그거 꼭 먹어야 돼? 먹기 싫은데..." 나에게 반말도 한다.

난 그래도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안다. 이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2명을 돌봐야 한다.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언니가 대신 아이들을 맡아주지만, 퇴근하고 가면 그 애들 뒤치다꺼리, 회사 야근도 다 하면서 항암치료를 하였다. 난 그녀가 아무리 불평하고 틱틱거려도 pCR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모든 것을 받아줄 수 있을 것 같다.

또 한분은 60세 환자분. 처음 유방종양의 크기가 8cm이 넘었다. 겨드랑이 림프절은 딱딱하고 커서 팔놀림을 방해할 정도였다. 환자는 치료의 의지도 별로 없어 보였고 알아서 하라는 스타일로 보였다. 삼중음성유방암이라 임상연구를 할 수 있었다. 뭔 설명을 해도 시큰둥. 2차 항암치료를 하기로 한 날 외래에 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보니 역시 시큰둥하게 뭔 일이 생겼으니 다음 주에 오신다고 한다. 수술 전이니 가능하면 날짜를 맞춰서 제때 제 용량으로 항암치료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절주절 설명하지만, 대충 알았다고 하신다.

그 다음 주에 왜 못 오셨냐고 여쭤보니, 집이 다 탔다고 한다. 남대문 시장에서 쪽방처럼 작은 공간에서 양품점 같은 것을 운영하면서 거기서 먹고 자고 하시는데, 불이 나서 홀라당 다 타버렸다는 것이다. 집도 없어서 여관에서 기숙하고 계신다 한다. 자식 둘이 서울에 살지만, 자기가 가서 얹혀살만한 형편이 아니란다. 돈도 하나도 없다고 한다. 임상연구라 다행히 약제가 다 제공되니 일단 약값걱정은 안하셔도 될 것 같다. 그분이 pCR이 되어 나타나셨다.

본인이 팔다가 남은 덧버선 5켤레와 작은 화분을 하나 사가지고 오셨다. 집도 잃고 삶의 터전도 망가졌지만, 병이 나았으니, 선생님한테 젤 고맙다고 없는 살림이라 성의만 표한다고 선물을 가져오셨다. 화분은 볼품없고 덧버선은 평생 신을 것 같지 않은 큰 왕리본이 달린 여름용 양말이었지만, 정말 고마운 선물이다.



긴 치료 과정 중에 환자들은 병원에서, 약 때문에, 치료하면서 힘든 일도 많지만 자신 삶의 맥락에서 꼬이고 지치는 많은 이벤트를 동시에 걸머지고 치료를 받고 계신다. 주치의가 그걸 다 떠안고 갈 수는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지만
환자의 비 의료적인 상황/측면을 잘 이해한다면 환자의 태도나 언행을 잘 이해하고 잘 소통할 수 있을 것 같다.

힘들게 치료하고 좋은 결과를 얻으신 두 분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