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의 남자환자는 간암 말기상태로 주기적으로 외래로 찾아와 복수천자를 받고 있습니다.  평소 B형간염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초음파 검사에서 간경화와 간암이 동시에 발견되어 서울의 큰 병원으로 찾아가보았지만, 몇 차례의 항암치료만 받고는 수술불가 판정을 받고 그 즈음부터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한 복수를 조절하기 위해 집 가까운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약으로 조절이 가능하다면 내과를 찾았겠지만, 이미 그런 상황도 지나버려 이제는 외과의사인 제게 복수천자를 받으려 3-4주에 한 번씩 들르고 있습니다.  

진료실에 들어서는 그의 얼굴은 황달기도 있어 약간은 검푸른 얼굴빛에 생기가 약합니다.  보호자도 없이 진료실에 들어서면 잠시의 문진을 거친 후, 응급실 한 침대에 누워 제게 부풀어 오른 배를 내보입니다. 그러면 저는 천자에 적당한 부위를 인지하고 굵은 바늘을 배에 찌릅니다.

환자는 무척 따가운지 힘들어 합니다. 천자부위 주변의 피부에는 이미 이전에 찔렀던 바늘자국들이 많습니다. 노란 복수가 침대아래 수액 병으로 똑똑똑.. 떨어지기 시작하면 플라스틱 바늘을 고정하고 편히 누워계시다가 충분히 빠지면 귀가하시라고 인사를 한 뒤 진료실로 돌아옵니다. 누운 채로 가벼운 목 인사를 하고는 미리 준비해 둔 신문을 펼쳐드는 환자의 모습을 보며 문득 저 환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자신의 생명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명료한 의식 속에 깨닫는다는 것은 어떤 감정을 만들고 어떤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공의시절, 수석전공의로 의국의 정리회진을 이끌던 때입니다. 그 할머님은 진행된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고 일 년 이상을 항암제치료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항암제를 맞고 나서 생기는 구역과 두통, 무기력함도 괴로웠지만, 병원에 올 때마다 꽂아야 하는 플라스틱 주사바늘이 너무도 힘들었던 것입니다. 가뜩이나 혈관도 없는데 보이던 혈관마저 항암제로 타들어가 새로운 혈관을 확보하는 데 오랜 공을 들여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고생하며 때마다 입원 및 항암치료를 받았건만, 유방을 도려내어도 남아있던 암세포는 간을 침범하고 뼈를 침범하더니 급기야는 뇌까지 침범했습니다.

갑작스런 경련으로 응급실을 경유하여 입원 및 검사로 그 사실을 알게 된 날, 할머니는 항암치료로 모두 빠져버린 머리에 방사선 치료를 위한 표식까지 그려 넣은 채 침대에 앉아있었습니다. 보호자들은 할머니가 당뇨에 암 전이까지 있으니 이런저런 것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달라며 회진 전 제게 부탁을 하더군요.  그렇게 이야기해드리마 하고 다가간 할머니는 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제게 먼저 말을 건네셨습니다.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어떤 표정보다도 더 환한 표정과 웃음을 띠면서 말이죠..  

"저 이제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먹어도 되죠?"

전 그 질문에 갑자기 가슴 정중앙에서 무언가 툭 하고 떨어지는 느낌과 목 위로 차오르는 어떤 느낌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요.  이제 드시고 싶은 것 있으면 마음껏 드세요."

옆의 보호자들은 내심 불안하고 못마땅하다는 듯 표정이 어두웠지만, 제가 그 할머님께 베풀어드릴 수 있는 최선의 마음은 그 한마디뿐이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음을 깨달은 할머니는 여전한 환한 표정으로 제게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하십니다.

의사로써,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움과 어떻게 해야 마지막을 편안하게 해 드릴까 하는 의학적 처방을 고민하게 되지만, 저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내가 시한부 생명이라는 선고를 받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아직은 젊은 축에 드는 사람이긴 하지만,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언제 올지 모르는 일이기에 그 고민은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사람이 오래 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은 역사적으로도 오래되었고, 지금은 시한부의 삶이라도 평온하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질'개념이 의학적으로도 생겨나긴 했지만, 사람은 자연계의 시간 속에서 일정시간을 경유한 뒤 사라지는 일개의 생명체라는 진리를 생각해보면 예견된 죽음이라는 현상에 대해 온전히 순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인간의 죽음에 대한 심리는 크게 5단계로 나누어진다는 단계설도 있듯이, 저는 스스로의 예견된 죽음에 대해 온전한 순응의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요?  스스로도 단정할 수 없는 섣부른 판단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는 존엄을 갖춘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죽음마저도 이미 산업화된 의료와 상업화된 장례문화 속에서 철저하게 자본의 순환에 이용되는 세상에서 존엄을 지키기란, 죽음을 맞이한 자신 스스로 단호해지거나 끝까지 의식이 명료한 상태를 유지하지 않는 한 참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자신에 대한 죽음은 스스로 미리 준비하고 주변에 이야기해두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죠.

종교적으로 소신공양이나 가부좌를 튼 채 임종을 맞이하는 스님들의 모습이나 100번째의 생일을 맞이한 날부터 곡기를 끊어 3주 만에 스스로 숨을 멈추었던 스콧 니어링의 죽음, 그리고 비이성적으로 변해만 가는 인간사회에 대한 자발적 반성과 비판의 목적으로 자신의 뺨에 난 악성종양을 진통제만으로 버티면서 스스로 임종을 맞이한 멕시코의 수도사 이반 일리히의 경우에서 보여주는 존엄성을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스스로의 존엄을 갖춘 마무리를 위한 고민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죽음에 있어 존엄은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생각하는 바탕에는 일단 죽음마저도 자본의 한 요소가 되어야만 하는 현실에의 거부감이 존재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제게는 자유로움이 저의 존엄을 유지케 할 겁니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지금처럼 자유로움을 아무렇지 않게 구사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가능하다면 자유롭게 그리고 자유로이 존재가 사라져가는 모습의 죽음을 생각해봅니다. 제 자신의 존재유무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그것은 그들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삶의 모습이 되겠죠.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겠고 너무 이상적인 상상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 자연계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며 자연계의 일정 시간만큼만 존재할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생각해보면 인간 개개인의 삶은 상당한 의미와 함께 당연한 소멸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고 스스로도 여느 생명이나 다름없기에 목숨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죽음은 스스로의 존엄을 갖춘 모습으로 원하는 모습으로 맞이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거기에 인간의 환경과 사회의 유의미를 남아낼 수 있는 죽음이라면 존엄은 좀 더 폭넓고 깊이가 생길 수 있겠죠.

많은 죽음을 예견해야 하고 이야기해주어야 하고 바라만 보아야 하는 직업이지만, 정작 스스로는 당장에 마주쳐야 할지도 모르는 죽음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오히려 두려움 가득한 자신의 모습만 돌아보게 됩니다.

타인의 죽음 앞에서 당장의 나의 불안을 떠올린다는 것은 하염없는 무례함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일상이 되어버린 죽음에 대한 시선은 한 발짝 물러서서 나의 죽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 상황에서 스스로가 조금이라도 늦게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오만이자 스스로에 대한 무책임함이겠지요. 스스로 생명의 유한함에 대한 순응을 인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맞이하고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죽음에 대한 존엄을 세우는 일이며, 점점 인간미가 없어져만 가는 현대의학에 대한 반성을 스스로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사람을 치료한다는 의사역시 사람이고, 사람이기에 목숨의 한계를 인정해야만 하는 입장에서 죽음에 대한 고민은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을 갖출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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