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과대학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유한욱 교수

희귀질환은 말 그대로 드물다는 의미일 것이다. 영어로는 ‘Orphan disease’라고 한다.

‘Orphan’은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단순히 부모를 잃은 고아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원래 그리스어 ‘Orphanos’에서 유래했고 부모가 없는 아이 또는 아이가 없는 부모를 의미했다. 그러나 세월을 거치며 이 단어는 여러 은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예를 들면 가난, 자유를 박탈당하 작업장의 노예, 양념이 되지 않은 음식, 더 이상 차모델이 생산되지 않는 차종 등등. 즉, ‘Orphan disease’는 드물다는 의미도 있지만 무시되고, 소외된 ‘neglected disease’를 뜻한다. 

그러나 학문적으로나 법적으로는 특정한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의 수(유병인구), 또는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유병률)로 정의한다. 얼마나 드물게 발생하는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병인구수가 2만명 미만인 질환, 일본은 5만명, 미국은 20만명, 호주는 2,000명, EU는 유병률이 인구 1만명당 5 미만인 경우로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유병률로 보면 WHO에서 제시하듯 인구 만명당 6.5~10명 미만인 질환이 희귀질환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극히 드문 질환, 극(초)희귀질환(ultrarare disease)을 따로 정의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환자의 수가 200명 미만인 질환(발병률로 환산하면 25만명 당 1명)을 말한다. EU의 경우는 발병률이 200만명당 1명의 발병률보다 낮은 질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의를 만족시키는 희귀질환의 종류는 현재 7,000~8,000종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최종 진단을 받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5년 이상이라고 한다. 진단을 위해 여러 병원을 방문하고 의료진을 만나기 위해 거치는 지난 한 여정인 셈이다. 이것을 ‘Diagnostic Odyssey’라고 낭만적(?)인 단어로 의료진은 이야기 하지만 환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환자와 환자의 가족은 이 과정에서 많은 사회, 경제적 부담으로 고통을 받게 되고 때로는 이런 질환들이 가계내에서 재발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희귀질환들의 배경에는 보고에 따라 적게는 30%, 많게는 80%에서 유전적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는 매우 드문 질환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의료진이 평생 한번 경험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이 너무 초 전문화되어서 환자도 초 절편화(?)되어 진료가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자기 분야가 아닌 질환에 대해서는 무관심 할 수 있다. 그러나 십여년 전부터는 여러 차세대 유전학적 진단 기법들이 개발되어 빠르게 진단되는 추세다.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유전학적 검사 방법들이 매우 예민하고, 단순하지 않다 보니 검사결과를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때로는 잘못된 진단에 이를 수도 있다. 유전학적 배경을 지니지 않는 질환들은 여전히 여러 임상적 기준이나 전통적인 생물학적 지표에 근거하여 진단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그 질환의 전문가가 아니면 진단이 어렵고 지연될 수 있다.   

천신만고 끝에 진단된다 하더라도 치료가 문제이다. 치료제가 있는 질환은 전체 희귀질환의 3% 미만으로 보고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97%의 환자는 치료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얼마나 실망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연구자나 제약업계의 입장에서는 소위 ‘unmet need’가 많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치료제가 있어도 환자 스스로 부담하기에는 매우 고가이다. 현재 환자 치료에 사용되는 약제비용 중 희귀질환 치료에 사용되는 희귀약품의 매출이 차지하는 부분이 10%를 상회한다. 

필자가 의사생활을 시작하던 1970년대 후반에는 이러한 희귀질환의 진단이 불가능했다. 설사 임상적으로 진단했더라도 학회에 증례정도로 보고하고 환자 보호자에게는 조용히 집에 데려가셔서 사는 날까지 잘 지내시라고 하는 일이 태반이었다. 야만의 시대를 산 것 같지만 한정된 의료자원을 가지고는 그 당시 더 시급했던 결핵, 간염 같은 더 흔한 감염성질환, 영양결핍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보면 희귀질환에 대한 관심은 한 나라의 경제적 부에 의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십 여년간 희귀질환에 대한 관심이 점증하고 있다. 2017년에는 희귀질환관리법이 시행됐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소외된 소수에도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닐까.

분당차여성병원 유한욱 교수
분당차여성병원 유한욱 교수

유한욱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 마운트 시나이병원 유태인 유전학센터에서 연수한 뒤 미국의학유전학전문의를 취득했다.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클리닉 소장을 거쳐 소아청소년병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장, 대한의학유전학회 이사장, 복지부 선천성기형 및 유전질환 유전체연구센터장, 진흥원 희귀난치병정복사업 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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