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환자들과 가족들이 그토록 원하는 ‘엔허투’는 어떤 약?
전이성 유방암 환자 생존율 대폭 개선 입증…국내 도입 여전히 오리무중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 '엔허투' 허가 촉구 청원…“비싸더라도 쓰고 싶다” 딸이 유방암 앓고 있다는 아버지, 식약처장 앞으로 신속허가 호소문 보내
유방암 신약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트주맙 데룩스테칸)'의 국내 허가를 촉구하는 암 환자들과 환자 가족들의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 6월 70대 여성 유방암 환자가 국회 국민동의 청원 사이트에 직접 글을 올린 데 이어 7월에는 유방암에 걸린 딸을 두고 있다는 아버지가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앞으로 신속허가를 요청하는 호소문을 보냈다.
유방암을 앓고 있는 딸을 두고 있다는 A씨는 식약처장에게 보낸 호소문에서 "최근 너무나 무겁고 고통스러운 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20대의 사랑하는 딸이 유방암 4기 진단을 받고 1년여 동안 감당하기 어려운 항암치료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최근 딸아이에게 마지막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항암효과가 뛰어난 신약(엔허투)이 개발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 신약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섰지만 사용승인(허가)에 묶여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지난 16일에는 어머니가 2020년 3월 유방암 진단을 받고 약 2년 반 동안 투병 중에 있다며 더 이상 쓸 수 있는 약이 '엔허투'인 만큼 엔허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현재 가족들은 집을 팔아서라도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기로 결정했다"며 "비급여로라도 상관없으니 약을 온전한 상태로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괄목할 만한 치료성적으로 전세계 주목 받고 있는 엔허투
'엔허투'는 다이이찌산쿄와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한 차세대 항체약물접합체(ADC)다. 유방암 및 위암 등에서 괄목할 만한 치료성적 개선을 입증하며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방암 환자의 약 15%를 차지하는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에서 기존 1세대 ADC인 '캐싸일라(성분명 트라스트주맙 엠탄신)' 대비 질병 진행 및 사망 위험을 72%까지 낮추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효능을 근거로 엔허투는 미국에서 2019년 12월 '절제불가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의 3차 이상 치료'에 조건부 허가를 받았다,
최근에는 50~55%를 차지하는 HER2 저발현 환자에서 기존 표준치료인 항암화학요법 대비 질병 진행 및 사망 위험을 50%까지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에는 3상 임상인 DESTINY-Breast03 연구 결과를 근거로 '절제불가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의 2차 이상 치료'에도 허가됐다.
기립박수 받은 '엔허투'…치료 패러다임 전환 예고
지난 6월 7일 세계 최대 규모의 암학회인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ASCO 2022)에서 엔허투 3상 임상시험인 DESTINY-Breast04 연구결과가 발표돼 참석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은 바 있다.
DESTINY-Breast 04 연구는 이전에 치료 받은 적이 있는 HER2 저발현 HR 양성 혹은 음성인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게서 표준요법인 항암화학요법 대비 엔허투의 효능 및 안전성을 평가한 오픈라벨 다기관 3상 임상연구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1차 평가변수로 설정된 전체 환자에서 엔허투 치료군의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mPFS)은 9.9개월로 화학요법군의 4.8개월과 비교해 질병 진행 및 사망 위험을 50%까지 감소시켰다.
특히 전체 환자의 약 90%를 차치하는 호르몬수용체(HR) 양성 환자에서는 엔허투 치료군의 mPFS는 10.1개월, 화학요법군은 5.4개월로 나타나 질병 진행 및 사망 위험을 49% 감소시켰다.
또한 주요 2차 평가변수인 전체 환자에서 전체생존기간 중앙값(mOS)은 엔허투 치료군이 23.4개월로 화학요법군의 16.8개월과 비교해 6.6개월 연장시키며, 사망 위험을 36% 낮췄다.
HR 양성 환자에서 엔허투 치료군의 mOS는 23.9개월, 화학요법군은 17.5개월로 나타나 사망 위험을 36% 낮췄다.
이같은 엔허투의 효과는 HR 음성인 환자군뿐만 아니라 모든 HER2 발현 수준(IHC 1+ 및 IHC 2+/ISH-)에서도 일관됐다.
뿐만 아니라 엔허투는 기존 화학요법 대비 객관적반응률(ORR)과 완전반응률(CR)을 크게 개선시켰다. 전체 환자에서 엔허투 치료군의 ORR은 52.3%로 화학요법군의 15.3%와 비교해 3배 가량 높았으며, CR 역시 3.5% 대 1.1%로 3배 이상 높았다. HR 양성 환자에서 엔허투 치료군의 ORR은 52.6%, 화학요법군은 16.3%였으며, CR은 각각 3.6%, 0.6%였다.
최근에는 다이이찌산쿄와 아스트라제네카가 이같은 연구결과를 토대로 HER2 저발현 유방암 치료에 적응증을 확대해달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신청서를 제출했는데 제출한 지 2주도 안 된 지난 6일 이례적으로 초고속 승인이 떨어졌다.
한국 유방암 환자에겐 그저 꿈에 불과한 엔허투
하지만 국내에서는 유방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엔허투는 3년 전 미국에서 이뤄진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의 3차 이상 치료'에 대해서조차 허가가 나지 않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손주혁 교수는 "엔허투는 유방암 환자의 약 15%를 차지하는 HER2 양성 환자군에 이어 HER2 저발현 환자에서도 괄목할 만한 치료 효과를 입증하며 70%에 가까운 유방암 환자들의 치료 성적을 끌어올렸다"며 "해외에선 이미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에서 엔허투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고, 이젠 HER2 저발현 환자에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한국에서는 HER2 저발현 환자는커녕 HER2 양성인 환자에서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엔허투는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자가치료용으로 국내에 들여올 수 있다. 그러나 자가치료용 수입 의약품은 의약품 보관 및 수송 관리를 식약처가 아닌 희귀필수의약품센터가 맡는다. 비용도 문제지만 운송이나 보관 등의 문제로 제대로 된 약효를 나타내지 못할 수 있다. 엔허투는 실제 운송이나 보관 등에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 생물학적제제다. 전용용기에 담아 2~8도에서 냉장 보관해야 하며, 빛에 노출돼서도 안되고 냉각해서도 안된다. 식약처의 정식 허가를 받은 생물학적제제라면 약사법에 따른 규정에 맞춰 콜드 체인에 대한 엄격한 관리가 이뤄지겠지만, 현재 엔허투는 환자의 요청에 따라 희귀필수의약품센터가 수입해 제공하는 만큼 운송 및 보관 과정에 대한 관리가 미흡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식약처는 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수입되는 자가치료용 의약품의 경우에도 수입부터 환자에게 전달되는 순간까지 콜드 체인에 대한 과정이 빈틈없이 이뤄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엔허투 등은 해외 공급사로부터 온도기록장치가 장착된 박스에 담아 수입하고, 환자에게 전달하기 전까지 희귀필수의약품센터 내 생물학적제제 냉장고에 보관하며, 환자 요청 시 냉장 유지가 검증된 박스에 담아 병의원으로 당일 배송해 냉장을 유지토록 하고 있다는 것.
"해외신약 빠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발 허가해달라"
그러나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 유방암 환자와 그 가족들은 엔허투 허가심사가 늦어지고 있는데 대해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식약처장에게 보낸 호소문을 통해 A씨는 "(딸이) 임상시험 참여 등 3차례나 항암제를 바꿔가며 치료를 했으나 내성에 의한 부작용으로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고, 현재는 간, 폐, 뼈 등에 전이가 된 상태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엔허투는 현재 미국, 일본 등을 포함한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말기에 가까운 유방암 환자들에게 투여 되어 좋은 효과를 보고 있으나,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사용허가도 되지 않았고 또 언제 승인이 날 줄도 모르는 상황이다. 또 승인이 난다 하더라도 곧바로 환자들이 사용을 할 수가 없다. 유방암 환자와 보호자들이 속을 태우며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하루속히 우리나라에서도 선진국들처럼 개발된 해외신약들을 암 환우들이 속히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허가에 대한 신속한 선처를 부탁한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