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20억 초고가약, 건보 적용…명암 짙은 중증질환 치료환경

암·희귀질환 등 중증질환 치료환경 이대로 괜찮은가?①   치료 인프라, 비약적 발전…신약·신의료기술 허가·급여 빨라져  '산정특례제도' 있지만 무늬만 특례…중증질환자 부담은 여전

2022-11-28     김경원 기자

면역항암제·원샷 유전자치료제·중입자 방사선 치료기 같이 첨단 생명과학 기술의 발달로 암·희귀질환 등 중증질환 치료 가능 영역이 하루하루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각종 제도와 규제, 건강보험 재정이라는 벽에 막혀 여전히 암·희귀질환 등 중증질환 환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코리아헬스로그는 국내의 암·희귀질환 등 중증질환 치료환경 현실을 집중 조명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찾아봤다. - 편집자 주

① 20억원 초고가약, 건보 적용…명암 짙은 중증질환 치료환경
② 필수치료 사각지대에 선 환자들…임상시험 끝나는 게 두렵다 
③ 돈이 있어도, 없어도 ‘최적치료’ 못 받는 의료체계 개선 필요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올해 4월과 7월 한 번의 약 투여로 완치를 바라볼 수 있는 일명 ‘고가 원샷 치료제’인 킴리아(백혈병·림프종 치료제)와 졸겐스마(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가 건강보험 급여 약제로 이름을 올렸다.

1회 투약 비용이 5억원에 달하는 킴리아와 20억원에 달하는 졸겐스마는 혁신치료제로 주목받았지만 약값 때문에 환자들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두 약제는 건강보험 급여 약제로 이름을 올리면서 환자 부담이 최대 598만원으로 낮아졌다. 중증질환으로 고통을 겪는 환자들이 이제 이들 치료제로 완치를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암·희귀질환 등 중증질환에 대한 국내 치료환경은 확연히 좋아졌다. 이 분야 치료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정책에 투영돼 확고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까닭이다. 

지난 2003년 제정된 암관리법과 2015년 제정된 희귀질환관리법을 통해 정부는 5년마다 암관리 종합계획과 희귀질환관리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더 나은 암과 희귀질환 치료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현재 4차 암관리 종합계획과 2차 희귀질환관리 종합계획이 나와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이 같은 종합계획을 근간으로 암·희귀질환 환자가 거주 지역 내에서 치료·관리·상담·교육 등을 받을 수 있는 국가 주도의 암과 희귀질환 진료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암의 경우 국립암센터와 전국 12개 지역암센터가 운영되고 있고, 희귀질환 또한 중앙 1개, 거점 11개 등 총 12개의 희귀질환 권역별 거점센터가 운영 중이다. 

의료 인프라만이 아니라 이 분야 국내 의료진 실력도 글로벌에서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박인근 교수는 “진료 대기 1~2주만에 전문의를 만날 수 있는 의료시스템을 갖춘 나라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 밖에 없다”며 “지방 대학병원의 경우에는 암 환자가 그 다음날 수술까지 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암시민연대 최성철 대표는 “암 같은 고난도 분야에서 국내 의료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저비용으로 이만큼 높은 효율을 낸다는 측면에서 한국의료는 대단한 것 같다”고 평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새로운 의료기술을 도입하는 속도도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빨라졌다. 신약의 경우 허가만 10년 걸리던 게 요새는 2~3년이면 대부분 승인이 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0년 신속심사제도를 도입한 뒤, 심각한 중증질환 치료제나 희귀질환치료제 허가는 이제 1년도 걸리지 않는다. 2020년 10월 국내 신속심사 지정 1호 약제로 등극한 셀루메티닙은 다음해인 5월 국내 허가를 획득했다. 

많은 환자가 새로운 의료기술의 혜택을 입을 수 있게 하는 '급여' 결정도 빨라졌다. 졸겐스마의 경우는 지난해 5월 식약처 허가 뒤, 14개월만에 급여가 결정됐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김진아 사무국장은 “척수성근위축증 고가 신약 스핀라자가 급여 약제로 등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초고가 원샷치료제 졸겐스마가 그리 빨리 급여가 될 거라 생각지 못했다”며 “이 사례는 아주 의미있는 급여 전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빠르게 변화한 의료 환경, 정책에 온전히 반영 안돼

하지만 혜택이 모든 환자들에게 고르게 간 것은 아니다. 때문에 암·희귀질환 등 중증질환 치료환경의 명암은 더욱 짙어졌다.

빠르게 변화하는 의료 환경과 국민의 올라간 눈높이는 정부의 정책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 저비용, 저보장 기조의 건강보험 제도 아래 세워진 정책은 여기저기 삐걱거리고 있다. 암관리·희귀질환관리 종합계획에 따라 설립된 센터들만 해도 현재 정부 설계대로 굴러가고 있지 않다. 

전문적인 암 치료와 연구를 위해 세워진 국립암센터만해도 비수도권 암환자에게 외면받고 있다. 올해 10월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국립암센터를 이용한 수도권과 비수도권 암환자 비율이 83대 17로, 비수도권 거주 암환자를 포용하지 못한 국립암센터가 국가중앙암센터로 제 역할을 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지역암센터도 암환자의 서울 쏠림 현상으로 지역에서 외면 받기 다반사였다. 

희귀질환거점센터 상황도 다르지 않다.

김진아 사무국장은 “지역 거점센터 홈페이지를 보면 진료보다 상담과 교육, 홍보 등이 주를 이룬다"며 "실제 거점센터에서 희귀질환 진료가 원활히 이뤄지는 곳은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재난과 다름없는 암·희귀질환 등에 대한 정부 지원책 중 대표적인 것이 ‘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 제도다. 이 제도는 암, 희귀질환 등 중증질환자에 대해 환자가 부담하는 진료비를 경감해 주는 제도로, 현재 암 환자는 ‘전체 급여 의료비’의 5%만 본인이 내고 희귀질환 환자는 10%를 부담하고 있다. 

그러나 제한된 건강보험 재정 탓에 ‘급여 의료비’에서 제외된 치료 비용이 중중질환자를 짓누르고 있다. 국내 신속심사 지정 1호 약제 '셀루메티닙'처럼 국내 식약처 허가는 받았지만 아직 급여되지 않은 고가 중증질환 신약들이 적지 않다. 현재 이들 치료제를 쓰려면 환자가 오롯이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이 비급여 씽크홀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신약 급여 검토 기간을 줄이고 급여 대상 약제를 확대하는 위험분담제도, 허가-평가 연계제도, 약가협상 생략제도, 경제성평가 자료제출 생략 제도 등 다양한 정책을 꾸준히 내놨다.

실제 이들 정책을 통해 급여 등재 신약이 지속적으로 늘고 급여 신청에서 등재까지 기간도 분명 단축됐다. 하지만, 새로운 표적을 타깃한 표적항암제 같이 촌각을 다투는 중증질환자의 치료에 쓰는 일부 신약들은 2년 넘게 급여되지 않고 있다.  

문제는 또 있다. 급여가 된다고 해도 국가에서 정한 ‘급여 범위’를 넘어선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사회보험 성격을 띤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위해 보건당국은 ‘최적 진료’가 아닌 ‘적정 진료’만을 인정하고 있다. 

대한암학회 김태유 이사장은 “세계 10위 경제 강국 대한민국에서 충분히 가능한 의료서비스를 제한된 급여 범위 때문에 해외에서 더 비싼 비용을 내서 받는 국내 암환자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줄기세포·중입자치료 같은 신의료기술이나 국내 허가 되지 않은 신약 등에 대한 치료를 위해 부자 환자들은 해외 원정치료를 떠난다. 그러나 가난한 환자들은 그 기술이 국내 정식 도입돼 하루 빨리 급여에 편입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나마 치료제나 치료기술이 개발돼 있는 중증질환은 행복한 상황이다. 적지 않은 중증질환은 현재 치료할 길이 없다. 특히 희귀질환의 경우 95%가 치료제가 없어 병이 악화되지 않는 재활치료 등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재활치료마저도 모든 희귀질환자들에게 쉽지 않다. ‘급여 재활치료’ 공급이 충분하지 않아 많은 희귀질환자들은 사설 재활기관을 이용한다. 사설 기관 비용은 급여 재활치료에 비해 비싸고 산정특례도 적용되지 않아 환자 부담을 가중시킨다.

김 사무국장은 “의료사각 지대에 있는 희귀질환자들은 재활기관이 충분하지 않아 집을 떠나 재활 난민 생활을 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여러 정부 지원책이 나왔지만 아무 혜택도 받지 못하는 희귀질환자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일부 희귀질환의 경우, 그 병이 국가에서 지정한 희귀질환이 아니면 산정특례 혜택조차 볼 수 없다. 전 세계 희귀질환은 7000여개 이상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부가 지정한 국내 희귀질환은 1,123개에 불과하다.

때문에 지금 현재 중증질환 필수치료의 사각지대에 서 있는 환자에게는 어둠이 더욱 짙어 보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