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돈이 있어도, 없어도 ‘최적치료’ 못 받는 의료체계 개선 필요

암·희귀질환 등 중증질환 치료환경 이대로 괜찮은가?③  새 의료기술 나와있는데…치료환경, 과거에 머물러 있어 특별기금 요구도↑…허가·급여 속도↑등 제도 개선 속속

2022-11-28     김경원 기자

면역항암제·원샷 유전자치료제·중입자 방사선 치료기 같이 첨단 생명과학 기술의 발달로 암·희귀질환 등 중증질환 치료 가능 영역이 하루하루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각종 제도와 규제, 건강보험 재정이라는 벽에 막혀 여전히 암·희귀질환 등 중증질환 환자들에게 그림의 떡에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코리아헬스로그는 창간에 맞춰 국내의 암·희귀질환 등 중증질환 치료환경 현실을 집중 조명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찾아봤다. - 편집자 주

① 20억원 초고가약, 건보 적용…명암 짙은 중증질환 치료환경
② 필수치료 사각지대에 선 환자들…임상시험 끝나는 게 두렵다 
③ 돈이 있어도, 없어도 ‘최적치료’ 못 받는 의료체계 개선 필요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의료기술이 발달하면 1차 치료제가 바뀌어야 하는데, 너무 옛날에 나온 항암제를 원칙적으로 쓰게 하는 것은 문제다.”

“더 나은 치료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의료기술이 많이 개발돼 있지만 상용화되지 않거나 급여가 되지 않아 쓸 수 없어 안타깝다.”

한 환자 단체 대표와 중견 의료진의 말은 맥을 같이 한다. 환자는 최적의 치료를 받고 싶고, 의사 역시 최적의 치료를 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적정’ 치료다. 

제한된 건강보험 재정…‘적정’ 치료의 현실

우리나라 의료서비스는 사회보험 성격의 건강보험 틀에 갇혀 보건당국의 통제를 받고 있다. 제한된 재정에서 전 국민이 혜택을 볼 수 있게 짜인 체제이기 때문에 보건당국의 통제는 당연하다. 

건강보험 전체 재정이 하나의 파이라면, 파이 크기는 정해져 있다. 때문에 하루가 멀다하고 업데이트되는 새로운 의료기술, 신약에 건강보험 혜택을 모두 주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건강보험 재정이 순식간에 파탄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한 해 전체 급여 의약품 재정지출 규모만 21조3,994억에 달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암·희귀질환 등 중증질환자들은 조금 더 나은 치료 기회를 얻기 위해 각자 다양한 방법을 모색한다. 일부는 고비용의 과학적 근거가 낮은 민간요법에서 답을 찾는다. 대부분은 지역을 떠나 의료인프라가 잘 갖춰진 서울로 향한다.

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 같은 소위 빅5 서울 대형병원에 아직 국내 허가되지 않은 신약 등 최신 치료에 대한 임상시험이 가장 활발히 이뤄진다. 명의로 알려진 의료진과 선진 의료체계도 환자들의 발걸음을 서울로 가게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부는 고가 의료비를 내고서라도 최신의 다양한 치료를 받기 위해 미국·일본 등으로 향한다. 국내에서 기술적으로 할 수 있는 검사·치료도 제도에 막혀 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해외 서비스를 이용하면 환자의 치료 선택권이 보장되는 까닭이다.  

A대학병원 교수는 “현재의 치료 체계는 의사 입장에서도, 환자 입장에서도 동의하기 어렵다”며 “글로벌 표준 치료는 1차 치료제가 최신 치료제여도 건강보험에서 정한 대로 첫 번째, 두 번째 약을 쓴 뒤 효과가 없을 때 3차 치료제로 그 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한병원협회 서인석 보험이사는 “중증질환 필수의료에 남아 있는 비급여는 건강보험 지불 능력에 따라 급여가 진행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한정된 재원 하에 다양한 형태의 의료 선택권을 주는 것이 국내 의료기술을 발전시키고 질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방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별도 기금 마련 모색…허가·급여 패스트트랙 개선

암·희귀질환 등 중증질환에 대한 고가 치료제가 속속 개발되고 새로운 혁신 기술이 나오면서 정부도 제한된 재정 안에서 국민의 눈높이를 반영하기 위해 다각적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생명과 직결된 혁신 신약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현재의 재정으로는 한계가 있어 별도 기금 마련을 모색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복지부 약제급여과 오창현 과장은 "별도 기금 조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제안들을 하고 있다"며 "다만 현재로서는 방식에 따라 재원 조성, 지원 대상, 근거법 마련 등 고려할 사항이 너무 많아 쉽지 않은 과제로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암·희귀질환 치료제 중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에 사용되는 약제(신속급여 대상 약제)의 급여 등재 속도도 내년에는 지금보다 더 빨라진다. 의약품 등재 법정 처리기간은 210일로 규정돼 있고, 현재 210일 전후로 신약 급여등재가 이뤄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신약등재부 한 관계자는 “신속한 급여 평가로 심평원의 평가기간을 30일 단축하는 동시에 제약사와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사전협상을 통해 협상기간을 30일 추가 단축해 최종 급여등재까지 소요 기간을 60일 단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약이 빠르게 환자의 손에 닿을 수 있게 신약 허가와 급여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새로운 패스트트랙 방안도 내년부터 시범사업에 돌입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협업 체계를 구축해 신약의 허가 신청-심평원의 신약 급여 평가-건보공단과 제약사의 신약 약가 협상을 지금처럼 순서대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 진행하는 시범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 패스트트랙의 대상 약제와 관련 복지부 오창현 과장은 "예를 들어 적절한 치료법이 없고, 기대 여명이 6개월 미만인 환자에서 2년 이상 생존 및 치료 효과 우월성을 입증한 경우 등을 들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치료제가 너무 싸기 때문에 삶의 질을 위협하는 질환을 치료하는 '고가 신약'이 급여에 진입하기 어려웠던 문제도 일부 개선된다. 

정부는 소아에 한해 생명을 위협하지 않아도 삶의 질을 개선하는 약제라면 급여 허들의 하나인 '경제성평가 자료 제출'을 생략할 계획이다. 현재 ‘약제의 요양급여대상여부 등의 평가기준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 개정 규정은 내년 시행 예정이다.

이에 따라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삶의 질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X염색체우성저인산혈증' 같이 신약보다 훨씬 저렴한 치료제가 있는 질환의 신약 급여도 내년부터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2년 넘게 급여 관문을 넘지 못했던 X염색체우성저인산혈증 신약의 급여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