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홍반성루푸스, 왜 '천의 얼굴'을 지녔다고 할까? 

몸속 면역시스템 고장…피부·관절·혈관·신경·장기 등 곳곳 침범 2020년 한 해 4,455명 진단…유전·바이러스 감염·약물 등 원인 남성보다 여성에게 최대 15배 호발…가임기에 발병 위험 높아 약물로 질병활성도 관리를…"증상 심할 때는 임신 계획 미뤄야"

2022-12-07     김경원 기자

면역시스템 고장으로 몸속 면역에 간여하는 세포와 물질들이 제 몸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성 희귀난치질환'인 전신홍반성루푸스는 흔히 천의 얼굴을 지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달 1일 충북대병원 희귀유전질환센터에서 개최한 '2022 충북대병원 희귀유전질환센터 협력의료기관 온라인 워크숍'에서 이 병원 류마티스내과 김지현 교수는 '천의 얼굴을 가진 전신홍반성루프스' 주제 강연을 통해 특정 유전자, 규진 혹은 바이러스 감염, 약물 등으로 이 병이 유발되면 염증세포, 염증성물질 등이 타깃이 되는 피부·관절·혈관·신경·장기 등 곳곳에 가서 염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가지 질환으로 다양한 신체 부위에 선별적으로 타격을 입히는 질환이기 때문에 천의 얼굴을 지녔다고 하는 셈이다. 염증이 피부에 발생하면 얼굴에 나비 모양 발진, 탈모, 구강 궤양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관절로 가면 관절염이 발생해 이른 나이에 관절 통증으로 고통을 받을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염증이 신경으로 가면 간질발작을 일으킬 수 있고 신장을 침범하면 신장질환을 초래하며 혈관으로 가면 용혈성빈혈, 백혈구감소증, 림프구감소증 등 다양한 혈액학적 문제를 유발한다. 장막에 염증을 초래하면 흉막삼출, 심낭삼출 등의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김지현 교수는 "외부에서 들어온 항원(항체를 만들어내는 원인 물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세포와 조직에 존재하는 항원에 대한 면역 반응이 발생하는 경우"라며 "전신홍반성루프스는 전신 증상뿐만 아니라 근골격, 피부, 혈액학적 그리고 신경, 심폐 등 다양하게 전신을 침범할 수 있는 질환"이라고 설명했다. 

전신홍반성루프스는 희귀질환 가운데 다빈도 질환에 속한다. 최근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0년 한 해 희귀질환자 통계 연보'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전신홍반성루프스로 산정특례 등록을 한 환자는 4,455명이었다. 이는 2020년 전체 신규 희귀질환 발생자(5만2,310명)의 8.5%에 달한다.   

가임기 여성 호발…여성호르몬도 영향 미쳐

전신홍반성루프스는 남성보다 여성에 특히 호발하는 질환이다. 김 교수는 "문헌에 따르면 여성에게 7배 많게는 15배까지 남성에 비해 높은 발생률을 보인다"며 "여성호르몬의 영향도 있고 경구피임약 혹은 폐경 후 호르몬대체요법 등도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호발 연령대는 15~55세로, 전체 환자의 65%를 차지한다. 특히 여성에서 가임기에 호발한다. 이 병은 백인에 비해 아시아인, 흑인에게 더 많이 발생한다. 김지현 교수는 "전신홍반성루프스는 여러 유전자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세포 사멸과 선천 면역, 후천 면역과 관련한 다양한 유전자들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여성호르몬, 유전적 요인 이외에 환경적 요인도 이 병의 발병에 큰 영향을 미친다. 파보바이러스(Parvovirus) B19·거대세포바이러스·Estein-Barr 바이러스 감염과 부정맥치료제·결핵약·항생제 등의 투약도 발병에 영향을 준다. 또 자외선·규진 노출과 흡연, 마이크로바이움(인체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유전정보) 등도 이 병과 연관이 있다.  

피부·관절 증상 많아…신장·폐·심장·뇌에도 문제 초래 

전신홍반성루프스는 가장 흔하게 피부와 관절에 영향을 미친다. 코와 뺨에 나비 모양 발진이 나타나는 급성·만성의 피부 루푸스 증상은 각각 71%·11%의 환자에게 나타난다. 뺨에 생기는 발진은 44%, 탈모는 31%, 구강 궤양은 26%, 피부에 그물코 모양의 홍반이 생기는 망상피반은 10%의 환자에게 발생한다. 

관절염은 85%의 전신홍반성루프스 환자에게 나타나지만, 류마티스관절염보다 경증의 경과로 진행되는 특징을 보인다. 손, 발 등의 말초혈관이 수축해 창백하게 보이거나 냉감이나 통증을 호소하는 레이노병도 37%의 환자에게 나타난다. 

면역세포인 백혈구를 감소시키는 백혈구감소증은 35%, 혈액응고와 관련된 혈소판을 감소시키는 혈소판감소증은 16%, 반복 혈전증과 유산을 유발하는 항인지질항체증후군은 10%, 혈액과 체액의 이동 통로가 붓는 임파선염은 9%의 환자에게 나타난다. 

전신홍반성루프스는 신장과 폐, 심장, 뇌 등의 장기에도 영향을 준다. 신장질환은 21%, 흉막삼출·심낭삼출 등을 초래할 수 있는 장막염은 19%, 뇌졸중·간질발작 등과 같은 뇌신경질환도 18%의 환자에게 나타난다.  

약물치료로 증상 조절과 합병증 예방을

천의 얼굴을 지닌 전신홍반성루프스는 환자에 맞춰 증상을 조절하고 합병증을 예방하는 치료 전략을 쓴다. 약물치료와 더불어 담배 등의 환경적 유발 요인을 차단하는 생활관리도 필요하다. 

김지현 교수는 "전신홍반성루프스의 치료 목표는 임상적 관해 혹은 낮은 질병활성도를 유지하는 것"이라며 "이 치료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환자마다 단계 별 다양한 약제들을 변경해 사용하면서 용량을 조절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비교적 경증으로 관절이나 피부 침범 등에 국한돼 있을 경우에는 진통소염제나 저용량 스테로이드치료를 시도할 수 있다. 증상 조절이 되면 보존적인 치료로 항류마티스약제를 쓰기도 한다. 

신장·폐·심장·뇌 등의 장기 침범이 있거나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의 상태일 때는 고용량의 스테로이드치료와 강력한 면역억제치료가 이뤄진다. 중증도 환자에게는 시클로포스파미드 같은 항악성종양제, 미코페놀레이트 같은 면역억제제 등을 쓴다. 최근에는 벨리무맙이라는 생물학적제제가 나와 중증도 환자의 치료에 시도되고 있다.  

전신홍반성루프스 환자에게 항인지질항체증후군이 나타나면 여러가지 혈관병증이나 유산 등 임신 관련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때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와파린이라든가 헤파린 같은 항응고제를 사용한다던가 아스피린이나 혈관벽 안정을 위해 말라리아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 같은 약제를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질병활성도가 높을 때는 임신을 미루고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전신홍반성루프스 환자는 태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약제를 쓸 수 있기 때문에 임신을 계획하고 태아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약으로 처방을 바꾼 상태에서 임신을 시도해야 한다.

김지현 교수는 "루푸스 환자의 경우 가족 계획을 고려할 경우에는 환자 상태에 대해 충분한 평가가 필요하고 임신 시에 적절한 약제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