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세포종 환자의 ‘테이블 데스’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내분비 희귀질환 연구 박차 가하는 내분비학회 ‘희귀질환연구회’ 김신곤 회장, 2018·2022년 ‘내분비 희귀질환 팩트시트’ 발간 주도 “흔치 않은 증세라면 한번쯤 희귀질환 의심해보는 것 중요”
20세 이상 성인의 경우 당뇨병은 4.2배, 고혈압은 무려 2.5배, 고지혈증은 1.8배, 골다공증은 4.3배 등 일반 환자들에 비해 걸릴 위험이 높은 질환이 있다. 바로 저인산혈증이다. 저인산혈증은 연간 발생률이 1000만명당 3명일 정도로 희귀한 질환이지만 20세 이상 성인의 경우 합병증 위험도가 일반인에 비해 심부전은 3.8배, 만성신부전은 17.5배, 부갑상선기능항진증은 무려 63배나 되는 위험한 질병이다. 연령, 성별, 경제적 수준, 동반질환 등을 보정해 일반인과 비교할 경우 사망위험도가 무려 3.4배나 된다.
사망 위험도는 1.7배로 저인산혈증보다 낮지만 100만명당 3.44명이 걸리는 말단비대증의 경우에도 당뇨병이 무려 6.91배, 고혈압은 4.21배, 악성종양 3.48배, 부정맥 3.02배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조사결과는 대한내분비학회가 올해 발간한 ‘내분비 희귀질환 팩트 시트’에 나와 있다.
내분비학회는 지난 2018년 ‘내분비 희귀질환 팩트 시트 2018’에 이어 올해 ▲말단비대증 ▲선천부신과증식 ▲저인산혈증 등에 대해 환자 현황, 유병률, 합병증 등을 분석한 ‘내분비 희귀질환 팩트 시트 2022’를 발간했다.
내분비 희귀질환에 대한 기초적인 역학 데이터지만 의학적 미충족 수요를 고려한 효과적인 진단법과 치료제 개발로 이어지는 단초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발간하게 됐다는 게 고려의대 김신곤(내분비내과) 교수의 설명이다.
김신곤 교수는 지난 2018년 내분비학회 내 희귀질환연구회를 설립, 4년간 연구회를 이끌어왔다. 이에 김신곤 회장을 만나 희귀질환연구회를 설립한 이유와 지난 4년간 이뤄놓은 결과에 대한 의미를 들었다.
- 내분비학회 내 희귀질환연구회를 만든 이유는?
희귀질환은 의사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환자들도 진단이 늦어질 수밖에 없고, 진단이 된다고 하더라도 치료제가 없는 질환이 대부분이다보니 해법을 찾기가 어렵다.
뇌하수체나 골대사, 당뇨, 부신, 부갑상선 등 내분비분야에는 희귀질환이 많다. 연구회를 만들 당시 임상시험센터장을 하고 있었다. 현재는 종료되긴 했지만 그 때 국책연구과제로 국가기반 희귀질환 빅데이터 플랫폼인 '케어레어(CARE RARE)'를 구축한 적이 있다. 케어레어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질병관리청의 희귀질환 헬프라인 등 국가 기관의 데이터를 활용해 희귀질환 지도를 구축하고, 세계 각국의 임상시험 정보들을 모아 희귀질환 임상시험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나아가 정보공유 채널을 통해 연구자는 물론 환우들의 네트워킹을 지원하는 플랫폼이다.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질환에 대한 초보적인 자료부터 유병률과 같은 전국적인 자료까지 있어야 한다. 그래야 Unmet Need를 따져 우리가 못하는 임상시험에 우리를 포함시켜 달라 요구도 하고, 그 데이터를 가지고 외국에 세일즈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내분비내과, 신경과, 혈액내과, 혈액종양 등 4개 과의 12개 희귀질환에 대한 전체 유병률, 합병증 종류 및 발생률 등을 조사해보고 Unmet Need를 파악해보고자 했다. 미국의 페이션트 라이크 미(PatientsLikeMe)를 벤치마킹해 환우 본인이 직접 자신의 건강정보를 업로드해 연구진과 제약회사 등이 협업하는 '공생의 장'을 구축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임상시험 대상 모집을 제외하고는 생각만큼 되지 않더라. 환자들이 자신의 건강정보를 올리는 동인이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서는 안되겠다, 함께 해야겠다 생각을 하게 됐다. 학회 차원에서 함께 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아 희귀질환연구회를 만들었고, 세브란스병원 이유미 교수, 구철룡 교수를 비롯 뇌하수체나 부신, 부갑상선 등 내분비 분야별로 한두명씩 참여해 머리를 맞댔다.
소박하게 시작했지만 2018년도에는 ▲갈색세포종 ▲갑상선수질암 ▲비수술적 부갑상선기능저하증 ▲소아청소년기 갑상선암 등 4개 질환, 2022년에는 ▲말단비대증 ▲선천부신과증식 ▲저인산혈증 등 3개 질환에 대해 유병률과 합병증 등을 조사한 팩트시트를 발간했다.
- 지난 4년간 연구회는 어떤 활동을 했나?
2018년과 2022년 희귀질환자 현황, 유병률, 합병증 등을 분석한 ‘내분비 희귀질환 팩트 시트’를 발간한 데 이어 국책과제로 고대안암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등 10개 병원이 공동으로 비정형 데이터를 한데 모으는 RED-CDM에 나서기도 했다. 또한 뇌하수체 선종을 앓고 있는 환우회에 관련 질환에 대한 영상을 제작해 제공해주고 ‘뇌하수체 선종을 이기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상생 심포지엄’을 열며 소통하기도 했다. 병을 이기기 위해서는 환자의 투병의지도 중요하지만 보건의료인력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분비 희귀질환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의사들로서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자들을 건강하게 만드는데 제약이 되는, 제도나 정책 등을 함께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련한 심포지엄이었다.
- 의사들도 희귀질환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그 환자를 처음 마주하게 되는 것은 동네의원이다.
저인산혈증의 경우 20세 이상 성인의 경우 당뇨병은 4.2배, 고혈압은 무려 2.5배, 고지혈증은 1.8배, 골다공증은 4.3배 등 일반 환자들에 비해 걸릴 위험이 높다. 하지만 유병률은 100만명당 1.2명일 정도로 드문 질환이 저인산혈증이다. 우리나라에(2002~2018) 환자수가 154명 밖에 없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질 것이며, 우리나라 통틀어 전문가가 몇 명이나 있겠나.
이유 없이 자꾸 골절이 되고 정밀검사를 해보니 인이 부족한 것으로 나오고, 그러다 저인산혈증임을 알게 되는 건데 통상적인 검사에서는 잘 알 수가 없다. 의과대학에서 배웠다고 하더라도 굉장히 드물다보니 대개는 잊어버리게 된다.
갈색세포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갈색세포종은 악성 고혈압을 일으킬 수 있는 병이다. 그런데 혈압의 변동성이 심하다보니 혈압이 오르내리기도, 고혈압이 아예 없기도 한다. 그러나 갈색세포종이 있는지 모르고 수술을 하다가는 혈압 조절이 안돼 ‘테이블 데스’할 수 있다. 갈색세포종은 효소 이상이나 유전자 이상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수술만으로 완치될 수 있기 때문에 혈압을 올리는 원인을 수술로 치료한 뒤 다른 질환을 해결해야 수술 도중 혈압 조절 실패로 ‘테이블 데스’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그렇다면 의사나 환자 입장에서 언제 ‘일반적이지 않다’ 의심을 해보고 좀 더 전문적인 병원을 찾아가야 할까.
흔치 않은(unusual) 증세를 보일 때 한번쯤 의심해보는 게 좋다. 예를 들어 20~30대 젊은 사람인데 혈압이 높아 고혈압약을 먹어야 한다고 해보자. 물론 식이습관이나 비만 등으로 인해 고혈압이 생겼을 수 있지만 무조건 약만 처방하려 하지 말고 가족력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혈압으로 장기간 혈압약을 복용해 왔다거나 그런 중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왔다면 반드시 검사해보는 게 좋다.
골절이 되어 정형외과 가서 전해질 검사를 했는데 인이 부족하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자. 통상 정형외과 의사들은 인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지 않아 영양이 부족한 것 같다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런 일이 반복이 된다고 한다면 ‘왜 그렇지, 뭔가 이상하다’ 한번쯤 의심해보고 큰 병원으로 가볼 것을 권유해야 한다.
- 그러기 위해서는 환자들도 병원을 이곳저곳 다니기보다는 자신의 건강을 꾸준히 살펴줄 수 있는 단골병원을 만들어놓는 것도 중요하겠다.
예전 전남에서 개원하고 계신 분이었는데 혈압약을 처방해 복용하고 있던 환자가 가끔씩 “선생님 왜 저는 신발이 작아지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했다며 말단비대증이 의심된다면서 환자를 보내주셨다. 진찰을 해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저에게 환자를 보내셨던 건데 역시나 검사해보니 말단비대증이었다.
말단비대증은 얼굴 윤곽이 달라진다. 손과 발도 굵어지기 때문에 신발이 작아질 수 있다. 급격히 변하는 게 아니라 5년, 10년에 걸쳐 변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 옛날 사진을 꺼내보라고 권한다. 나이가 들고 체중이 늘어서 변하는 것이면 모르겠지만 체중에 변동이 없는데 신발 사이즈가 자꾸 커진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 환자분은 수술하고 완치되셨다. 결국 희귀질환은 환자는 물론 의사의 관심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 개원가는 다빈도 질환 위주로 진료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통상적인 것과 다르다고 한다면 한번쯤 의심해보는 게 중요하다. 혈압인데 약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 젊은 사람이 비만하지도 않는데 고혈압이 있다? 혈압으로 인한 합병증이 빨리 생긴다? 얼마든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증상들이지만 이러한 경우 희귀질환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 2023년도 내분비학회 희귀질환연구회의 계획이 궁금하다.
지난 4년간 희귀질환연구회장을 맡아왔다. 그러나 2023년부터는 세브란스병원 이유미(내분비내과) 교수에게 바통을 넘겨준다. 이유미 교수의 경우 골다공증 등의 명의다. 좀 더 발전적으로 연구회를 이끌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내분비학회는 특히 2032년 설립 50주년을 맞아 ‘격과 결이 다른 혁신’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사회적 영향력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내분비 희귀질환연구회를 위원회로 재편해 연구, 교육 등을 강화하고 아태 내분비희귀질환 플랫폼을 구축, 국제적 네트워크를 주도할 방침이다. 또한 상생포럼 정례화 등 내분비 환우회와의 파트너십을 확대하는 한편, 학회-환우회 협의체를 구성, 보험과 정책 등에서 협력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이를 위해 내분비희귀질환재단 등 사회공헌재단을 설립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