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맞지만"…국가 정책 지원 첫 관문 '희귀질환 지정' 구멍 드러나
6일 '삶을 위협하는 희귀질환의 국가 관리 강화방안 모색 토론회' 열려 전신농포건선‧후천성단장증후군 등 증증 극희귀질환도 대상에서 배제 "극희귀질환‧중증도 심한 희귀질환, 산정특례 지원 대상 지정해 지원을" 복지부, 국가 관리 비대상 희귀질환 신약에 위험분담제 적용 방안 검토
삶을 위협하는 희귀질환에 대한 정부 지원 정책의 첫 관문인 '희귀질환 지정제도'의 구멍 탓에 적지 않은 희귀질환자들이 실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표적인 희귀질환이 전신농포건선과 후천성 단장증후군 등이다.
정부는 희귀질환자의 의료비 경감을 위해 중증질환 산정특례제도, 희귀질환자 의료비지원사업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희귀질환 지정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희귀질환이 분명함에도 희귀질환 지정과 정의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고, 동일 질환 내에서도 선천성과 후천성에 따라 지정 여부가 갈리는 게 현실이다.
지난 6일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와 미래건강네트워크가 주관한 '삶을 위협하는 희귀질환의 국가 관리 강화방안 모색 토론회'에서는 이같은 희귀질환 지정제도의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국가 관리 대상 '희귀질환' 미지정 사유에 이차성질환, 외인성질환, 감염성질환 등이 담기는 등의 이유로 의학적으로 중증 희귀질환이 분명한데도 미지정 처리되는 희귀질환이 적지 않은 현실이 이날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이날 충남대병원 피부과 정경은 교수와 서울대병원 소아외과 김현영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각각 전문 진료 분야인 전신농포건선과 후천성 단장증후군을 예로 국내 희귀질환 지정 및 산정특례 적용의 한계를 역설했다.
정경은 교수에 따르면 전신농포건선은 2021년 기준 국내 3,000여명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 희귀질환이다. 온몸에 고름 물집이 생기는 심각한 증상이 반복되며 삶의 질을 크게 위협한다. 재발성·지속성 질환이어서 치료하지 않고 그냥 둘 경우에는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증상과 합병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고름 물집인 수포가 떨어져 나온 피부에 옷깃만 스쳐도 많이 쓰라리기 때문에 병이 재발할 때는 경제활동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데 치료비도 만만치 않다. 병원에 1회 갈 때마다 보통 15만~20만원을 지출한다. 증상이 심하면 한 달에 4번 외래에 갈 때도 있고, 더 심할 때는 입원치료도 한다. 그러나 전문 의료진이 희귀질환으로 인정하는 이 병은 국가 지정 희귀질환이 아니어서 산정특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이에 한 전신농포건선 환자가 지난 2018년 이 병을 국가 관리 대상 희귀질환으로 첫 신청했지만, 5년째 희귀질환 지정이 안 되고 있다. 2020년 건선 전문 의료진이 모인 대한건선학회에서 희귀질환관리위원회에 이 질환에 대한 희귀질환 지정의 필요성을 담은 추가 자문과 질환 자료를 보완했는데도 심의결과는 미지정이었다.
건선학회는 이 결과에 불복하며 지난 2022년 학회에서 직접 희귀질환 지정 재신청을 했지만, 미지정 질환에 대해서는 공고 24개월 경과된 뒤에야 재심의가 이뤄진다는 당시의 규정으로 그 해 검토 대상에조차 오르지 못했고, 올해 재검토 대상으로 재심의가 예정된 상황이다.
국가 대상 희귀질환으로 재검토가 필요한 희귀질환은 이뿐만이 아니다. 후천성 단장증후군도 국가 관리 대상 희귀질환 미지정 사유인 '이차성질환'에 해당해 현재 국가 관리 대상 희귀질환이 아니다.
김현영 교수에 따르면, 후천성 단장증후군과 동일한 증상과 질병부담, 동일한 고통을 받는 선천성 단장증후군은 희귀질환으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궤사성 장염, 선천성 거대결장증 등으로 생후 수술적 절제를 해서 소장 길이가 짧아진 단장증후군은 희귀질환이 아니다.
신생아 저산소 허혈성뇌병증은 성인 뇌졸중과 묶여서 지원이 30일로 제한돼 있다. 인공 호흡기 의존 상태로 악화된 신생아 저산소 허혈성뇌병증 환아도 희귀질환 지정이 안 돼 산정특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소아 선천성 심장질환도 현재 최대 30일 제한된 지원을 받는데 그친다. 더 심한 복합심장기형인 경우에도 지원 일수는 60일로 제한돼 있다.
김현영 교수는 "희귀질환 지정이 되지 않아 사각지대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희귀질환자에 대한 희귀질환 지정과 산정특례 적용이 필요하다"며 "대상자가 적은 극희귀질환은 경증과 섞인 진단명을 사용하기도 해서 진단 및 진단기준 정의가 어려울 수 있으니 해당 분야의 전문가 자문 풀(Pool)을 확대해 질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토론회 패널로 참여한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김진아 사무국장도 희귀질환 지정제도의 개선을 촉구했다. 김진아 사무국장은 "치료적 대안이 없어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삶을 위협당하고 있는 전신농포건선이나 중증 호산구성 천식, 중증 단장증후군 등 환자들의 현실을 반영해 실질적인 계획이 추진돼야 한다"며 "현행 희귀질환 지정 기준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설정됐는지 제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김 사무국장은 "대상 환자 수가 적은 극희귀질환의 경우이거나 중증도에 대한 구분 없이 진단명이 부여되는 경우에는 중증도에 따라 해당 질환을 산정특례 대상으로 지정해서 환자들의 치료제 접근성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논의가 필요하다"며 "적어도 희귀의약품, 희귀질환 지정 절차와 같은 제도적 문제로 인해 사각지대에 놓여 고통받는 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희귀의약품으로 허가가 되면 해당 의약품 사용이 필수적인 질환은 희귀질환으로 지정하는 방안 등을 각 부처가 보다 유기적으로 소통해달라"고 요청했다.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된 치료제라 하더라도 이 치료제를 사용하는 질환이 국가 관리 희귀질환이 아니면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하는 점도 이날 다뤄졌다. 희귀질환으로 지정돼야 신약의 급여 적용 평가를 할 때도 위험분담제를 적용할 수 있고 경제성 평가 자료 제출을 생략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고가의 희귀질환 신약이 환자의 손에 닿기는 요원하다.
실제 전신농포건선과 단장증후군도 신약이 개발돼 있지만, 현재 국내 환자들은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베링거인겔하임의 스페솔리맙은 2021년 미국 식품의약국으로부터 성인 전신농포건선 치료제로 첫 승인됐고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지만, 전신농포건선이 희귀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의 손에 닿기 어려운 상황이다. 단장증후군도 신약이 있다. 다케다의 테두글루타이드가 그것이다. 이 약은 2018년 식약처의 허가를 획득했지만, 아직 급여 관문을 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오창현 과장은 "건강보험 재정이 충분치 않은 한계점이 있다보니 생존을 위협하는 질환의 약제에 맞춰서 제도를 유연하게 하면서 점차 생존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삶의 질에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개선까지도 규제를 완화하자는 쪽으로 지금 가고 있다"며 "전신농포건선과 후천성 단장증후군 같은 질환은 아직 희귀질환으로 지정은 안 됐지만 (최신) 약제가 삶의 질 개선 효과가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임상적으로 효과가 있는 약이라면 혁신성을 인정할 수 있는 범위에 들어올 수 있는 것들을 좀 정해서 위험분담제를 적용해 등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회 방안을 제시했다.
이어 "이런 악제들이 굉장히 고가여서 제약사들도 일정 부분 재정에 대한 분담을 같이 해야 되겠지만 우선은 그런 방식을 통해서라도 약재 등재를 시킬 수 있는 길을 좀 열어보는 방법들을 올해 고민하고 있다"며 "지금 논의 중에 있고, 혁신성의 범위를 어느 정도까지 할지는 아직 정하지는 못했지만 두 가지 질환의 약제도 혁신성 범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패널로 나선 질병관리청 희귀질환관리과 이지원 과장은 희귀질환 지정 절차와 최근 바뀌 휘귀질환 지정제도의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이 과장은 "국가 관리 대상 희귀질환 지정은 희귀질환의 희소성, 중증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를 해 전문위원회 및 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서 지정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전문가와 학계 유관 기관 등과의 종합적이고 심도 있는 검토가 단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과장은 "심의 결과 미지정 질환에 대해서는 공고하고 24개월 경과 이후에 재심의를 수행 하게 됨에 따라 사실상 신청한 분들 입장에서는 3년 이상의 대기 기간이 소요가 되고 그 과정에서 재신청을 하는 것도 어렵다는 요구 사항이 있어 재심의 소요 기간을 1년으로 단축하고 신속한 재신청이 가능하도록 작년 한 해 동안 지정 절차 개편을 추진해 이를 지정 절차 지침으로 배포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위원회 구성 확대와 전문가 풀을 확대하고 다양한 위원들을 구성할 필요성에 공감해 기질환 전문위원회 구성을 분과별 10분 이내에서 20분 이내로 확대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하고 더 다양한 세부 분과 전문의를 위원으로 모실 수 있도록 추진했다"며 "내실 있는 위원회를 구성해서 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