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그리소 복용 3개월 만에 일상생활 가능…“제2의 인생 살고 있다”

디스크인줄 알았는데 ‘폐암’이라니…머리·흉부·복부·다리까지 전이 “결혼식에는 꼭 참석해야 한다는 딸 소원 들어줄 수 있어 기쁘다” 3개월에 1900만원…살았다는 기쁨 뒤 비싼 약값에 “포기해야 하나”

2023-03-14     유지영 기자

엄마가 내 결혼식 촛불은 켜줘야지, 그게 소원이니 약값은 걱정 말고 약 잘 먹고 빨리 건강해져야 해요.”

둘째딸 결혼식을 10여일 앞두고 기자와 만난 63세 백금선 씨는 딸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백씨는 현재 아스트라제네카의 폐암 표적항암제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를 복용하고 있다.

지난해 5월 폐암 판정을 받을 때만 해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허리통증에 시달렸고, 이러다 죽겠구나싶을 정도로 허벅지, 고관절이 아파 먹지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화장실조차 혼자서는 갈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상태였지만 백씨는 타그리소를 복용한 지 3개월만에 휠체어 없이도 가벼운 집안일은 물론 산책도, 동네 마트도 갈 수 있게 됐다. 백씨는 다시 일상을 찾았다며 행복해했다. 

“내가 왜 폐암에…”

백씨는 머리, 흉부, 복부, 다리까지 암이 전이돼 있는 4기 폐암환자다. 평소 기침도 하지 않았고 숨 쉬는 게 힘들지도 않았던 백씨로서는 자신이 폐암 4기라는 의사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작년 4월말부터 허리가 아프고 걷는 게 힘들었다. 60대에 흔한 디스크나 관절염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관절전문 병원을 찾아가 X레이, CT, MRI 등 검사라는 검사는 다해봤지만 디스크라고만 했다. 뼈가 쑤시는 이유가 암 때문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통증이 너무 심해 먹지를 못하니 체중이 35kg이나 줄기도 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5월 동네병원에서 다시 MRI를 찍었는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더라. 그런데 폐에서 암세포가 발견되면서 폐암 진단을 받았다. 종양은 1cm로 크지 않았지만 이미 머리와 다리까지 전이 된 4기였다. 담배를 피운 적도 없고 기침도 하지 않는데 폐암 4기라니. 그 말을 듣는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연세 암병원에 입원한 백씨는 정밀검사를 통해 변이가 있음을 확인하고 종양내과 김혜련 교수에게 타그리소를 처방 받아 9개월 째 복용하고 있다.

타그리소는 세계 최초로 'EGFR 엑손 19 결손 또는 엑손 21(L858R) 치환 변이된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1차 치료제'로 승인 받은 ‘3세대 EGFR 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 표적항암제. 현재까지 개발된 3세대 EGFR 티로신 키나아제 억제제(TKI) 중 유일하게 진행성 단계 1차 치료에서 3년 이상의 전체생존기간 중앙값(mOS)을 입증하며, 미국과 유럽에서 표준치료제로 자리잡고 있다.

EGFR 변이 폐암 환자 중 약 20%는 진단 시 뇌 전이가 있고, 뇌전이가 있을 경우 두통, 구토, 인지, 언어 및 보행기능 장애 등 일상생활이 어렵다. 하지만 기존 1, 2세대 치료제의 경우 혈액뇌장벽 투과율이 낮아 뇌 전이에 대한 효과가 현저히 떨어지고 부작용도 심한 편이다. 반면 타그리소는 뇌 전이 환자에서도 뇌 전이가 없는 환자와 동일한 수준의 치료 효과를 보인다. 이는 대규모 글로벌 임상과 리얼월드 분석을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다.

폐암 4기 환자 백금선씨. 타그리소 복용 뒤 일상생활이 가능해지면서 아파트 앞에서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타그리소 없었다면 이미 이 세상사람 아닐 수도”

백씨는 이같은 타그리소의 효과를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3달 정도 먹고 나니 몸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에는 너무 아파 울기도 많이 울었다.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아팠다. 그런데 지금은 진통제를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허리통증이 사라졌다. 고관절도, 다리도 안 아프다.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가도 이상이 없을 정도다. 처음에는 말도 더디고 목소리도 안나왔는데 다들 좋아졌다고 한다. 타그리소를 쓰지 않았더라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 같다. 지금은 마트도 가고 커피숍에 가서 얘기도 할 정도로 삶의 질이 좋아졌다.”

타그리소 복용 후 상태가 호전되면서 백씨는 현재 3개월마다 진료를 받고 있다.

백씨는 병원에 갈 때마다 김혜련 교수님께서는 암세포가 줄었어요라는 말씀을 한다몸에 있는 종양이 타그리소로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심하지는 않지만 구내염이 생기고 다리에 쥐가 나기도 했다. 머리카락이 빠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시 나고 있다. 허리와 고관절이 아플 때를 생각하면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지'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기쁨도 잠시…약값만 수천만원

그러나 살았다는 기쁨도 잠시, 삶의 희망을 갖을수록 또 다른 고통과 맞닥뜨리게 된다고 했다. 4주에 600만원, 12주에 2,000만원 가까이 하는 약값 때문이다. 타그리소의 경우 재발한 2차 치료에만 건강보험이 적용될 뿐 백씨와 같은 1차 치료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백씨는 3개월에 한 번씩만 병원에 간다고 하니 좋으면서도 한 번에 3개월치를 처방 받기 위해서는 1,900만원이 넘는 돈을 내야하기 때문에 부담이 되고 있다"며 "한 번은 주치의 선생님이 약값이 부담되지는 않느냐고 물어보시더라. 약값 부담에 계속 먹어야 하는지 여쭤보니 치료를 위해서는 당연히 먹어야 한다고 했다"고 했다.

백씨는 남편과 자식들은 집이라도 팔 테니 약값은 신경 쓰지 말고 치료만 잘 받으라고 했지만 그동안 모아뒀던 돈은 이미 다 약값으로 들어간 상태라며 하루빨리 건강보험이 안되면 정말로 집이라도 팔아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엄마의 약값을 대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들딸을 보며 고맙기도, 이겨내겠노라 마음을 다잡기도 하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한다는 폐암 커뮤니티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남의 일이 아니어서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65세 환자 분이 더이상 약 먹을 돈이 없다. 이 정도면 오래 살았으니 단념해야겠다고 댓글을 쓰신 것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아프면 온 식구가 다 불안하게 된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모든 환자가 맞는 것은 아니지만, 변이가 있어서 효과를 볼 수 있는 환자들이라면 제발 치료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탄원서라도 내고 싶은 심정이다.”

“‘돈 없어 죽는 일 없도록 하겠다’ 윤석열 대통령 공약 이뤄지길”

지난 26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는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비소세포폐암치료제인 타그리소1차 치료 급여를 요청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은 5만명의 동의를 얻어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국회가 열리면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다뤄지게 된다.

백씨는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때 돈 없어 사람이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공약한 바 있다. 타그리소가 그 공약에 해당하는 것 같다하루 빨리 건강보험 급여가 이뤄져 돈이 없어 약도 못 먹고 죽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매일 아침 9시면 백씨의 핸드폰에서는 타그리소 복용시간을 알려주는 알람이 울린다. 단 하루라도 타그리소를 복용하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특히 그는 타그리소가 폐암 1차 치료에 급여가 돼 경제적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주부대학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새 삶을 살게 된 만큼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