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우회가 지역사회 기반 '엔젤타운' 설립 꿈꾸는 이유

[페이션트 스토리] 엔젤만증후군환우회 이영란 회장·심현주 팀장 2004년 국내 첫 환자 나와…현재 국가 영유아검진으로 조기 발견 2세부터 발달지연·언어장애·운동장애 등 본격화…IQ 평균 20~30 인지·언어·작업 등 재활치료 통해 개선…"성인기에 첫 걸음 떼기도" 재활치료 시설 부족·활동보조사 돌봄 거부 등 케어 시스템 열악해 "질환 맞춤 지원 필요"…발달장애인과 함께 하는 사회 환경 조성을

2023-05-04     김경원 기자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엔젤만증후군은 15번 염색체에 위치한 UBE3A 유전자의 돌연변이 등으로 발생하는 유전성 희귀난치질환이다. 1만8,000명에서 2만명 당 1명 꼴의 발생률을 보이는 이 병은 1965년 영국 의사 해리 엔젤만이 의학계에 보고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보통 유전성희귀질환은 환자마다 증상 스펙트럼이 넓지만 엔젤만증후군 환우에게는 100% 나타나는 증상이 있다. 바로 '중증 발달지연'과 최소한의 단어를 쓰거나 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언어장애', 걷지 못하거나 걷더라도 휘청거리며 걷는 '운동장애'가 그것이다. 또 눈에 띄는 행복한 표정과 함께 쉽게 흥분하고 손을 파닥거리거나 흔드는 동작과 과잉행동도 엔젤만증후군 환우 모두에게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80% 이상의 엔젤만증후군 환우는 3세 이전부터 경련을 겪는다. 경련은 나이가 들면 줄지만 성인이 됐는데도 지속하는 경우도 있다. 머리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작다. 경련과 소두증 보다 적은 비율이지만 2시간가량 자고 일어나기를 24시간 반복하는 형태의 '수면장애', 빨거나 삼키기 힘든 '연하장애', 입에 물건을 물고 있는 '구강행동'도 흔하고, 피부 저색소증, 척추측만증, 변비, 비만 등도 엔젤만증후군 환아에게 잦다. 

20년간 '뇌성마비'로 알았는데…2004년 엔젤만증후군 첫 환자 나와

국내 엔젤만증후군의 역사는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과거에 이 병을 앓는 환자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뇌성마비 등으로 오진됐다. 엔젤만증후군 환아가 제 병명을 찾게 된 시작점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뇌성마비 환자로 알고 지냈던 만 19세 은비 양이 심각한 척추측만증으로 2004년 일본에서 수술을 받다가 엔젤만증후군으로 진단된 것이다.

은비 양의 부모는 '올바른 병명을 찾아야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음 카페에 한국엔젤만증후군협회의 전신인 '한국엔젤만신드롬가족모임'을 만들어 이 병에 대해 알리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국내 미진단 엔젤만증후군 환우들이 제 병명을 찾아갈 수 있게 된 셈이다.

요즘은 어떨까? 약 100명의 엔젤만증후군 환우와 200~300명의 가족이 모인 엔젤만증후군협회의 이영란 회장은 "거의 매년 이뤄지는 국가 영유아 건강검진을 통해 부모가 아이의 이상한 점을 병원에서 빨리 확인하게 되면서 요즘은 빠르게 발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 영유아 건강검진은 생후 14일부터 71개월까지 총 8차례에 이뤄지는 검진으로, 성장 단계 별 발달 상태를 확인해주는 무료 검진시스템이다. 

이같은 검진시스템 이외에 이 병에 나타나는 증상으로 인해 병이 진단되기도 한다. 이 회장은 "아이가 너무 안 자서 뇌파를 찍었더니 의사가 '경기파'가 있다고 했다. 대학병원 진료 예약을 하고 기다리는데, 35개월 쯤 아이가 경기를 했다"며 "그 일로 대학병원에 가니 주치의가 협진 의사를 불렀고, 협진 의사는 아이 외관만 보고 엔젤만증후군이 의심된다고 말했다"고 딸이 진단된 과정을 설명했다. 실제 유전자검사로 두 달 뒤 이영란 회장의 딸은 엔젤만증후군 확진을 받았다.

대학병원 의료진이 아이를 보기만 하고 이 병을 떠올릴만큼 질환에 대한 인지도가 올라가게 된 것은 엔젤만증후군환우회의 목소리로 2007년 6월 이 병에 대한 산정특례가 이뤄지면서부터다. 올해 13살의 엔젤만증후군 환아를 키우는 엔젤만증후군협회 심현주 사업팀장은 "엔젤만증후군에 산정특례가 적용되면서 병원에서 빠르게 발견하는 것 같다"며 "요즘은 보통 3~4세 때 이 병을 진단받는다"고 설명했다. 

재활치료, 환아 예후에 주요…시설 부족해 재활 대기만 3~4년 이상

엔젤만증후군 환아의 문제는 진단 이후 본격화된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이전에 아이였기 때문에 당연했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이 부각되는 데다 몸집이 커지고 힘도 세지며 점점 더 부모가 감당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이의 행동 반경이 넓어지는 것은 각종 사고 위험도 높인다. 

거기다 엔젤만증후군은 현재 명확한 치료법이 없다. 중증 발달장애가 있고 언어장애와 운동장애가 있기 때문에, 재활치료가 환아의 예후에 주요하다. 재활치료를 해야 아이가 제대로 먹고, 걷고, 조금이나마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평생 걷지 못하다 꾸준한 재활치료를 통해 성인이 된 뒤 걷는 환우도 있다고 한다. 문제는 재활치료를 받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심현주 팀장은 "병원에서는 재활 대기자들이 워낙 많으니 걷기만 하면 치료를 종결시킨다"며 "근육이 약해 척추측만증도 오고 발목도 돌아가고 사지에 문제가 지속되는데, 결국 지역사회 복지관이나 시설 재활치료센터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런 곳들도 재활치료 대기자가 많다. 복지관은 3~4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현실을 짚었다.

이영란 회장은 "낮병동에서도 만 8세가 지나면 엔젤만증후군 환아는 치료를 못 받게 돼 있다"며 "그래서 부모들 사이에 '나중에 갈 데가 없으니, 지금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을 때 많이 받아둬야 한다'는 말을 한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재활치료를 받는 중에도 부모가 원하는 만큼 엔젤만증후군 환우가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안 된다. 이 회장은 "연하치료·물리치료·작업치료는 급여지만, 인지치료·언어치료·감각통합치료 등은 비급여"라며 경제적 문제를 한 가지 이유로 꼽았고, "부모 욕심에는 비급여여도 병원에서 치료를 할 수 있을 때 모든 치료를 다 하고 싶은데, 그것도 재활 인프라가 부족해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엔젤만증후군 환우는 재활치료 등을 포함해 한 달 병원비로 얼마를 쓸까? 이영란 회장은 "재활치료를 적게 받으면 250만원, 좀 많이 했다고 하면 300만원이 든다"고 말했다. 아이 치료비용이 한 달 생활비를 넘어서기 때문에 실손보험 등에서 치료비를 보존 받지 못하는 경우에는 재활치료를 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때문에 병원의 의료비 지원 프로그램이나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의 의료비 지원 등 외부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는 환우도 있다고 한다. 

꼭 필요한 재활치료들이 비급여인 것도 문제인데, 재활 인프라 부족으로 병원 밖으로 쫓겨나면 그 부담은 더 가중된다. 제도권 밖의 재활치료센터는 비용 부담이 높고, 시설 마다 비용 차이도 크다. 때문에 엔젤만증후군 환우 가족은 누구나 제도권 내에서 재활인프라가 확충돼 아픈 아이들이 제대로 치료 받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엔젤만증후군 환아 특성 반영한 '맞춤' 치료·지원책 필요해

더구나 현재의 병원시스템과 의료·복지 지원책은 엔젤만증후군 환아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은 "엔젤만증후군 아이의 특성 상 한 시간은 재활치료를 해야 아이들이 집중하는데, 30분 재활치료 내내 산만하다가 이제 겨우 집중할 때쯤 되면 치료가 끝나는 형국"이라고 한탄했다. 

또 엔젤만증후군은 산정특례 대상이지만 환아 상당수가 겪는 수면장애 치료에 대해서는 산정특례가 적용되지 않는다. 급여가 이뤄지는 연하치료도 삼키는데 문제가 없으면 급여 치료가 적용되지 않는다.

심현주 팀장은 "저희 애들을 질환 특성 상 90% 이상이 수면 문제가 있는데, 산정특례 적용 기준에 빠져 있어서 비급여로 약을 처방받는다"며 "수면장애 치료제에 대해서도 산정특례 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영란 회장도 "섭식장애로 연하치료를 받는 아이들도 많지만 못 받는 친구도 있는데, 삼키는데 문제가 없으면 급여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라며 "우리 애들은 혀 자체를 안 움직이고 대충 씹고 삼켜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연하치료를 하면 저작 작용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저작이 안 돼 변비가 심하게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질환 특성에 맞는 치료와 지원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뿐 아니다. 엔젤만증후군 환아는 지적장애 1급에 해당하는 경우가 거의 100%인데, 장애판정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 팀장은 "엔젤만증후군 환우의 평균 IQ는 20에서 30에 불과할 만큼 낮다"며 "그런데 장애등급 판정이 아이의 상태가 아닌 지역마다 다르게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영란 회장은 "우리 아이들은 IQ로 봤을 때 거의 1급(IQ 35 미만·일생동안 타인의 보호 필요한 사람)이고 그나마 좋아야 2급(IQ 35 이상 50 미만·타인의 도움으로 직업생활 가능한 사람)"이라며 "하지만 3급(IQ 50 이상 70 이하·교육 통해 직업적 재활 가능한 사람) 받는 환아들도 있는데, 왜 3급을 받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중증도에 맞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현재의 시스템 이점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한계에 엔젤만증후군 환우와 부모는 부딪힌다. 장애등급이 반영돼 활동보조 지원 시간이 결정되는데, 매월 최대 480시간의 활동지원을 받는 와상 상태인 환우만큼 보호와 도움이 절실한 엔젤만증후군 환우는 대부분 120~150시간을 받는다는 것이다.

경제적·심리적·물리적 어려움에 놓인 환우와 가족들…대책 마련 나서

엔젤만증후군 환아와 가족의 어려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활동보조사 지원을 받아도 엔젤만증후군 환아는 그 서비스를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심 팀장은 "중증이나 질환 특성으로 손이 많이 가는 환우들은 활동보조사 지원이 더 필요한데, 활동보조사가 힘든 아이들은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때문에 실제 서비스를 이용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고 한탄했다.

때문에 이런 특성을 반영해 엔젤만증후군 같이 업무 강도가 높은 질환군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활동보조 지원금을 책정할 필요가 있다고 엔젤만증후군협회는 목소리를 냈다. 엔젤만증후군 환아는 제대로 걷지 못하는 데다 배변도 잘 가리지 못하고 부산하며 과잉행동을 하기 때문에 젊은 부모들도 체력적으로 24시간 아이를 보는 데 어려움을 느낄만큼 힘들어 별도의 유인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여러 상황 때문에 현재는 부모 중 한 명이 아이 케어를 위해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 맞벌이를 그만두니 가계 수입은 줄고, 치료 비용은 한 달 생활비를 상회하니 긴 병에 결국 경제적 어려움에 맞닺게 되기 십상이다. 치료 비용만이 아니라 아이의 발 아치가 무너지고 척추가 잘 휘는 특성 상 특수 신발과 척추 보조기 등이 필요한데, 이런 것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것도 부모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엔젤만증후군 환우가 성인이 됐을 때다. 장애인주간보호시설 등이 있지만 시설이 많지 않고 대기가 길며 일정 기간만 이용 가능하다. 때문에 부모가 노쇠해 아이를 돌보기 어려워졌을 때, 엔젤만증후군 환우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엔젤만증후군 환아는 여러 건강 문제를 겪지만 천수를 다하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성인기와 노년기까지 고민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 같은 여러 문제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은 과정에서 엔젤만신드롬가족모임으로 시작한 환우회는 2020년 1월 엔젤만증후군협회로 명칭을 바꿨다. 이영란 회장은 "현재 지정기부금단체를 준비하고 있다"며 "성인기 이후까지 생각해 기부금 등을 통해 사단법인의 사회 기반 시설을 설립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가칭 엔젤타운을 협회 주도로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환우들이 점차 많아지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이후의 삶을 고민한 결과, 지역사회 기반의 시설을 설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협회가 지정기부금단체가 되면 현재 진행하는 부모 교육사업, 환우와 가족을 위한 정책사업과 복지사업, 홍보사업 등도 같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엔젤만증후군 환우 가족으로서 이영란 회장이 바라는 소망도 있다. 이 회장은 "호주에서는 유치원 아이들이 나오는 모든 채널의 프로그램에 꼭 발달장애아 한 명이 포함된다"며 "이를 통해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되는데, 국내에도 그런 프로그램이 나와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뤄지고, 우리 아이가 밖에서 과잉행동을 해도 사회에서 조금 불편한 애구나라고 인식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