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경척수염, 허가약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 필요하다"
[페이션트 스토리] 한국시신경척수염환우회 신현민 환우 시력상실·하지마비 초래하는 '중추신경계 자가면역질환' 그간 다발성경화증 한 형태로 여겨져…치료법 서로 달라 재발 시 장애 남아 '유지치료' 중요…허가초가 약만 급여 미국선 고효능 허가약 1차 치료제로 쓰이지만 국내는… 고가 허가 신약 3종 중 급여 치료제 없는 현실 개선돼야
과거 미지(未知)의 영역에 있었던 적지 않은 중추신경계질환들이 뇌과학의 발달로 차츰 기지(旣知)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새로운 이름을 얻고, 진단과 치료법이 정립되는 요즘이다. 그 대표적인 중추신경계질환의 하나가 뇌와 척수, 시신경 등의 중추신경계를 침범해 하반신 마비나 시력상실, 대소변 장애 등을 초래하는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이다.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은 '중추신경계 자가면역질환'의 하나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또 다른 중추신경계 자가면역질환인 다발성경화증의 한 형태로 분류됐으나 이 병에 특징적인 자가면역항체인 아쿠아포린4항체가 발견되고 다발성경화증과 다른 특징들이 확인되면서 시신경염과 척수염에 더해 뇌에 침범해 나타나는 증상까지 합해져 새로운 이름으로 명명됐다.
지난 2001년 설립된 한국다발성경화증협회 초대 회장을 지낸 신현민 씨(69세)도 불과 5~6년 전 시신경 척수염 진단을 받기 전까지 다발성경화증 환우로 알고 20년 넘는 세월을 지냈다. 지난 1997년 미국 코넬대학병원에서 다발성경화증 진단을 받고 국내 1호 인터페론 투여 다발성경화증 환우가 되면서 국내 다발성경화증 치료 환경 개선에 일조해왔었던 인물이 신현민 전 다발성경화증협회장이다.
시신경 척수염은 시신경에 문제가 생겨서 안구통, 시력 저하 등이 나타나거나 척수에 문제가 생겨서 팔다리, 대소변 기능 등이 약화되고, 심하면 시력상실, 팔다리 마비, 대소변 장애 등이 초래된다. 더 문제는 다발성경화증과 같이 재발할 때마다 몸에 또 다른 장애를 남긴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주 심각한 병이지만 과거에는 중추신경계질환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아서 제대로 진단조차 되지 못했다.
처음 두통으로 이 병이 시작된 신 전 회장도 검사를 위해 세브란스병원 입원 중 갑자기 심각한 하지 약화 증상이 나타나 물오징어처럼 다리가 흐느적해지며 낙상하는 일까지 겪었지만, 1997년에는 병명조차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의료진은 심한 두통의 원인을 뇌졸중이나 뇌종양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여러 검사를 해도 두통과 더불어 갑자기 휠체어를 타야 할 만큼 약화된 하반신 문제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결국 신현민 전 회장은 정확한 병명을 알기 위해 미국행을 택했고, 코넬대학병원에서 '다발성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그곳에서 스테로이드제제로 치료를 받은 뒤 귀국한 그는 병원을 옮겨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시작했고, 의학의 발달로 다발성경화증 환우에게 시도해볼 수 있는 치료제로 인터페론이 떠오르면서 2000년대 초반 인터페론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현민 전 회장은 "이틀에 한 번씩 피하주사로 맞는 약이었는데, 한 달 약값이 180만원이었다"며 "의사는 2~3년 맞아보고 효과가 있으면 죽을 때까지 인터페론을 맞는 것이고 2~3년 맞아도 효과가 없으면 안 맞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맞고 보니 나빠지지 않았고 운동을 같이 하니 상태가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문제는 매달 180만원의 돈을 내고 약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사업체를 운영하던 그였지만, 병으로 제대로 일하지 못하는 처지에 매달 180만원의 약값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른 환우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상황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던 그는 2001년 다발성경화증 환우들을 모아 환우회를 만들었고, 환우들의 목소리를 담아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에 인터페론 급여화를 위한 공문을 보내며 치료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그 와중에 복지부 청사에서 우연히 당시 복지부 수장인 김원길 장관을 만나 다발성경화증 환우의 고충을 직접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면서 인터페론 급여는 두 달도 되지 않아 빠르게 실현됐다고 한다. 인터페론이 급여가 되면서 다발성경화증 환우가 부담하는 인터페론 한 달 약값은 약 45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급여가 되면서 약값이 150만원 선으로 내린 데다 환자 부담금은 당시 30%였던 까닭이다.
여기에 더해져 2001년 산정특례제도 신설 뒤 다발성경화증이 2003년 1월 1일부터 산정특례 대상 질환이 되면서 환자 부담금은 30%에서 20%로 더 줄었고, 그 이후 10%까지 내려갔다. 다발성경화증 치료 환경이 개선된 뒤, 그는 꾸준한 치료를 통해 증세가 나빠지지 않는 듯 했지만 어느새 눈을 제외하고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이상 증세를 갖게 됐다.
한때 재활치료를 통해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 있게 됐던 그는 현재 늘상 휠체어를 타야 할만큼 보행 능력이 악화됐고, 방광 등에 문제가 생기면서 대소변 장애도 찾아왔다. 그가 진실을 마주한 것은 2018년쯤이었다. 중추신경계 자가면역질환에 정통한 그의 주치의 국립암센터 신경클리닉 김호진 교수가 다발성경화증이 아닌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이라는 진단을 그에게 내린 것이다.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은 다발성경화증과 매우 유사하지만, 뇌보다는 척수 증상이 더 흔해 하지 마비 증상이 더 심하고 시신경을 침범한 경우에는 시력 손실도 더 심한 특징이 보이며 재발율도 다발성경화증 보다 높다. 시신경 척수염 진단 뒤 신현민 전 회장에게 바뀐 것은 처방약이 인터페론에서 면역치료제 리툭시맵으로 변경된 것뿐이었지만, 치료 환경은 다시 악화됐다.
그것은 리툭시맵이 비급여 약제였기 때문이다. 리툭시맵은 국내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시신경 척수염 정식 허가를 받은 약은 아니지만 여러 소규모 연구를 통해 이 병의 재발을 막는데 효과적인 약제로 입증되면서 시신경 척수염 환자들에게 많이 쓰였다. 결국 신현민 전 회장은 다시 리툭시맵의 급여에 힘을 싣는 활동들을 전개했고 3~4년이 지난 2021년쯤 리툭시맵의 급여가 이뤄졌다.
그 사이 시신경 척수염에 대한 고가 허가 신약 3종 에쿨리주맙, 사트랄리주맙, 이네빌리주맙이 나오면서 시신경 척수염 글로벌 치료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국내도 2022년 말 그간 비급여로 쓰였던 시신경 척수염 유지치료제 아자치오프린, 마이코페놀레이트, 리툭시맙이 모두 급여 약제로 바뀌는 개선이 있었지만, 글로벌의 아주 큰 발걸음을 따라갈만큼은 되지 못한 게 현실이다.
현재 국내 급여체계로는 시신경 척수염 1차 유지치료제로 아자치오프린을 쓸 수 있고, 이후 재발되면 2차 유지치료제로 마이코페놀레이트나 리툭시맙을 쓸 수 있다. 사보험 체계의 미국은 고효능의 허가 신약 3종이 1차 유지치료제로 쓰이는 상황이지만, 국내는 3종의 약제가 허가는 됐지만 단 하나도 급여가 되지 않아 쓸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신현민 전 회장은 "지금 시신경 척수염 환우들은 허가 신약보다 효과가 떨어지는 오프라벨(허가초가) 약을 맞고 있다"며 "시신경 척수염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질환 등의 상황을 고려해 급여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시신경 척수염 3차 유지치료제로 3종의 허가 신약 중 한 개라도 급여가 빠르게 돼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허가 신약 3종은 리툭시맵보다 훨씬 고가의 약제(에쿨리주맙의 경우 약 7억원 소요)이지만 '재발'이 곧 '장애'를 의미하는 시신경 척수염 환우에게는 아주 절실한 약제다. 특히 이 병으로 이미 한 눈을 잃은 환자에게 재발은 완벽한 실명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에, 재발율을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는 약제가 사회인으로서 살아갈 기능을 보존하는 측면에서 더 가치가 있다.
더구나 시신경 척수염은 30~40대 한참 일할 젊은층에 다발하는만큼 한 사람의 환우라도 더 많은 신체기능을 보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사회적 이득이 더 크다. 이런 목소리를 내기 위해 그간 다발성경화증협회 회원으로 있었던 시신경 척수염 환우들이 이달 7일 한국시신경척수염환우회를 만들었다. 40대 중반 이 병이 발병한 신 전 회장이 고문 역할을 했고, 시신경 척수염 환우의 남편인 박홍규 씨가 회장을 맡았다.
신현민 전 회장은 "신약으로 치료해 재발 확률이 줄면 그만큼 재발로 인해 병원에서 치료 받는데 드는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며 "환우회 역할은 정책적으로 정부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해서 환우의 치료 의지를 꺾지 않고, 희망을 갖고 치료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칭만 환우회가 되지 않게, 실질적으로 환우회가 환우회 역할을 할 수 있게 지원하겠다"고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