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환자들, 정부 도움 시급"
[인터뷰] 희귀질환 치료환경 관심 기울이는 서영석 의원 유전성망막질환 치료제 '럭스터나' 급여 시급성 강조 "약이 있어도 못 쓰는 환자들, 소외감·상실감 커"
유전성 망막질환은 유전자 변이로 인해 시각 손실과 실명이 발생하는 희귀질환이다. 현재까지 300개 이상의 원인 유전자가 밝혀졌지만 대부분 치료법이 없어 증상 완화를 위한 보존적 치료만 가능한 상황이다.
최근에는 유전자 분석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특정 유전자로 인한 유전성 망막질환을 치료하는 신약이 하나둘 개발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2021년 9월 'RPE65 유전자 변이'에 의한 망막질환 치료에 최초로 개발된 유전자 치료제 '럭스터나(성분명 보레티진네파보벡)'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아 도입됐다.
하지만 럭스터나는 고가 유전자 치료제인 만큼 건강보험 급여로 보장해주지 않으면 환자 개인이 사용하기는 불가능한 상황. 실제 식약처 허가 후 럭스터나 급여 심사가 진행되는 2년 동안 임상시험 참여 환자를 제외하고는 국내에서 단 1건의 치료 사례도 나오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은 지난 4월 같은 당 정춘숙·신현영·최종윤 의원과 함께 희귀 유전성 망막변성질환 치료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주최해 럭스터나를 포함한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들의 급여 환경 개선 방안을 모색한 바 있다. 이에 서 의원을 만나 토론회 이후 럭스터나 급여 논의 진척 상황과 희귀질환 정책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 유전성 망막변성질환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희귀질환은 상대적으로 치료비가 비싸 환자 개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워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분야이기에 평소 관련 정책에 관심이 있었다. 지난 2021년 희귀질환 치료 환경을 개선하고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고, 2022년 11월에는 희귀·난치질환 환자의 의약품 사용 편의와 치료제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법안도 발의했다. 의료 사각지대에서 사회적 약자로서 어려움을 겪는 희귀질환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고민을 계속해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명을 유발하는 희귀질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
결정적으로는 한 뉴스 보도에서 박선경 씨의 사연을 접하면서 유전성 망막변성질환, 그 중에서도 망막색소변성증에 좀 더 집중하게 됐다. 이번 토론회 발표자로도 참여했던 박 씨는 치료제 임상에 참여해 병을 치료했지만 같은 질환을 앓던 남동생은 치료시기를 놓쳐 실명하게 됐다. 그야말로 '남매의 비극'인 셈이다.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당 질환의 치료 환경 개선에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당시 정책토론회와 함께 이례적으로 VR을 통해 직접 유전성 망막변성질환의 증상을 체험할 수 있는 캠페인도 함께 진행했다.
공감의 힘은 크다. 그리고 그 공감은 경험을 통해 더욱 커진다. 어떤 일이든 '나의 일'이 되지 않으면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기 쉽지 않다. 유전성 망막변성질환 환자들의 어려움을 '나의 일'처럼 경험하고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VR 캠페인을 마련했다.
VR 기기를 통해 직접 체험해봤더니 간단한 물건을 집는 것도,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가상현실 속에서 거리를 걷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좁은 시야 때문에 신호등이 잘 보이지 않아 몇 번이나 차에 치일 뻔했다. 화재가 난 집을 탈출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실제 비상상황 발생 시 환자들이 겪을 어려움을 생각하니 실로 아찔했다.
VR 캠페인은 국회의원회관 2층 로비에서 진행했는데 다른 행사 때문에 국회를 찾은 많은 분들이 관심 있게 보고 직접 체험했다. 시야가 좁아진다는 사실을 말로만 들었을 땐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VR 체험을 통해 유전성 망막변성질환이 얼마나 심각하고 치명적인 질환인지 알 수 있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 사망에 이르는 질환에 비해 시력을 잃는 질환을 다소 경시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란 속담이 있다. 그런데 이게 단순한 속담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환자의 신체장해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참고하는 '대한의학회 장애평가기준(KAMS)'에 따르면 시각장애율이 100%일 경우 전신장애율 85%로 환산하도록 돼 있다. 눈을 잃으면 우리 몸의 8할 이상을 잃는다는 것이다.
실명은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의 삶과 일상까지 심각하게 위협한다. 가족 중 누군가는 환자의 눈을 대신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실명은 노동력과 세수 상실, 시설 및 장비 수요 발생, 복지 재정의 투입 등 대규모 사회경제적 비용의 손실을 초래한다. 실제 세계보건기구(WHO) 발표에 따르면 시각장애로 인해 연간 약 4,110억 달러의 글로벌 생산성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환자와 가족은 물론 사회·경제적 측면으로 봤을 때도 결코 경시되어서는 안 되는 게 바로 실명이다.
- 정책 토론회 이후 정부 움직임은 어떤지 궁금하다. 럭스터나 급여심사에는 진전이 있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유전성 망막변성질환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한 신속한 급여심사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질의해 복지부로부터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험급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서면답변을 받았다.
정부도 여러 고민을 하고 있겠지만 무엇보다 환자들의 시간이 부족하다. 유전성 망막변성질환 대부분이 진행성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토론회에서 다뤘던 'RPE65 유전자 변이 망막색소변성증'의 경우 질환의 진행 속도가 빨라 이르면 청소년기에, 늦어도 30대를 전후해 완전 실명에 이르게 된다. 유일한 치료제인 '럭스터나'의 경우 망막세포가 충분히 살아 있는 단계에서만 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식약처 허가 후 2년이 지나도록 급여 논의가 원활히 이어지지 않아 환자들의 속이 타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의 여러 측면을 고려하는 정부 입장은 이해하지만, 이제는 '재정을 위한 재정'이 아닌 '국민을 위한 재정'으로 거듭났으면 한다. 언제 실명할지 모를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유전성 망막변성질환자들과 같이 도움이 시급한 이들을 위해 신속하게 판단하고 재정을 지출하는 것, 그것이 '필수의료'이고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약자복지' 아닐까.
- 우리나라에서는 럭스터나 치료에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허가 2년이 지나도록 치료받은 환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희귀질환 치료신약의 급여가 늦어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치료 기회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유전성 망막변성질환을 비롯해 실제 많은 희귀질환 치료신약이 국내 도입에 난항을 겪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의 고유한 특성 때문이기도 한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회에서도 여야 할 것 없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희귀질환 치료제들의 급여가 늦어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현행 급여 적정성 평가 방식을 꼽을 수 있다. 희귀질환은 그 이름처럼 환자 수가 적어 정확한 유병인구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희귀질환 치료제의 임상 데이터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질환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다른 질환과 같은 선상에서 일률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런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치료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할 수 없는 환자들을 위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일지 정부가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 희귀난치성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급여와 관련해 실제로 체감하는 국민 요구는 어떠한가.
희귀질환은 정확하게 진단을 받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실제 희귀질환 환자들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의 '진단 방랑'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어렵게 진단을 받더라도 치료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 사실 희귀질환에 치료제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물고 귀한 일이다.
하물며 치료제가 국내에 허가돼 있더라도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현실에서는 희귀질환자 대부분 치료제 접근성이 매우 떨어져 있다. 이 경우 약이 버젓이 있는데도 쓰질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상실감, 소외감을 더 크게 느낀다. 이는 실제로 토론회에서 망막색소변성증 환우회 '실명퇴치운동본부' 회원들이 가장 많이 한 이야기 중 하나다.
최근 한 조사에서는 국민의 85%가 정부의 재정 지원이 중증·희귀질환에 사용돼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소수였던 희귀질환자들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민이 희귀질환 치료 접근성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무척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국민적 공감을 기반으로 제한적인 재정 속에서 시급성과 위급성을 고려해 우선순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제도 운용 과정에서 희귀질환의 특성이 충분히 고려되고 희귀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 많아질 수 있도록 긴밀한 소통과 수준 높은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유전성 망막변성질환을 비롯해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어 신약의 급여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든 희귀질환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하고 싶다. 병마와 싸우는 환자와 가족의 아픔을 현장에서 생생히 지켜봐 왔던 약사 출신 국회의원으로서 그 지난한 여정에 각별한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특히 어려운 상황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주는 희귀질환 환우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환우들의 노력으로 많은 제도가 변했고, 또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의정활동 목표로 삼고 있는 '차별없는 세상, 건강한 사회'를 향해 단 한 명의 희귀질환자도 소외받지 않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