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일부 커지는 희귀병…유방암 신약이 치료제인 이유
팔·다리 등 신체 일부 과증식질환 '클리펠-트라우네이-베버증후군' PIK3CA 변이가 원인…유방암 원인 변이 PIK3CA 표적치료제 효과
신체가 여러 분절로 이뤄졌다고 했을 때, 일부 신체 분절만 커지는 희귀질환이 있다. 국내 200명이 넘는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분절성증식증후군'이라 불리는 클리펠-트라우네이-베버증후군이 바로 그것이다. 신기하게도 이 병의 치료제는 노바티스의 유방암 신약 '알펠리십'이다.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과 이범희 교수는 유튜브 채널 '의대도서관 - [월간 이.범.희] EP3. 한쪽 팔과 다리만 커지는 '클리펠-트라우네이-베버증후군(분절성증식증후군)'에서 "종양에서 유전자 이상을 찾아내 표적약물을 개발하는데, 이 약(알펠리십)도 그렇게 개발됐다"며 "처음 유방암치료제로 승인됐고, 클리펠-트라우네이-베버증후군도 똑같은 유전자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약을 썼더니 개선된 것"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알펠리십은 PI3K 경로를 억제하는 인산화효소억제제로, 유방암 원인 돌연변이가 PIK3CA 유전자일 때 쓰이는 표적치료제다.
클리펠-트라우네이-베버증후군(Klippel-Trenaunay-Weber syndrome)은 수술이나 외상 등의 특이 병력 없이 신체 일부가 누가 봐도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질환으로, 이 병의 원인 유전자도 PIK3CA다.
이 병은 특정 신체 부위와 연관된 세포에 모자이크 형태의 돌연변이가 생긴 것으로 추정한다. 최근 기초연구에 따르면, 클리펠-트라우네이-베버증후군은 세포 특정 부분에서의 증식과 관련이 있었다. 특정 신체 부위 세포에 대한 유전자 가운데, 일부에만 과증식 PIK3CA 돌연변이가 나타나는 형태의 희귀질환인 것이다.
이 병은 양쪽에 대칭적으로 증식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한쪽' 팔다리가 커지는 형태로 나타나고, 75%가 다리에 발생한다. 이 병은 근육과 뼈 같은 근골격계 외에도 뇌를 비롯해 심장, 간 등의 장기에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피부에 붉은색의 화염성 모반이 특징적으로 생긴다.
이범희 교수는 "사지에 이 병이 생겼을 때 뼈도 증식되고 근육도 증식되지만 혈관이 같이 증식한다"며 "큰 혈관도 같이 자라기는 하는데, 대개는 피부 모세혈관이 증식돼 피부에 뻘건 반점 같은 것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때 혈관이 터져서 안에 혈종이 생기기도 한다.
클리펠-트라우네이-베버 증후군은 점점 악화되는 질환이다. 이 교수는 "부모 이야기를 들어보면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는데, 자라면서 점점 더 진행된다고 한다"며 빠르면 생후 수개월 내 진단되기도 하지만, 대개 4~5살에 진단된다고 설명했다.
이 병은 굵어지는 형태로 증식되기도 하지만, 신체 길이도 달라질 수 있다. 이범희 교수는 "신체 좌우의 차이가 크면 심리적 고통이 굉장히 크고, 아이들은 좌우가 비대칭이 되다보니까 자꾸 넘어져서 외상이 잘 생기고, 비대칭이 점점 심해지면 측만증이 악화된다"고 말했다.
또한 성인이 된 클리펠-트라우네이-베버 증후군 환자는 관절통과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많다. 이외에 어느 부위에 클리펠-트라우네이-베버 증후군이 발현되느냐에 따라 여러가지 문제에 노출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신약 알펠리십을 클리펠-트라우네이-베버증후군 환자의 치료에 쓰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범희 교수는 "치료 전에는 재킷을 못 입었던 환자였는데, 약을 쓴 뒤에는 팔이 가늘어져서 재킷을 입을 수 있게 됐다"며 알펠리십은 돌연변이가 생긴 유전자를 조절해서 '증식된 조직'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알펠리십은 클리펠-트라우네이-베버증후군을 비롯해 아직 유방암치료제로도 국내 허가되지 않은 약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동정적 사용 승인을 통해 클리펠-트라우네이-베버증후군 환자에게 알펠리십이 쓰이고 있는데, 약값만 1년에 억단위다.
이 약 외에는 현재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이 교수는 "치료는 압박스타킹을 입거나 뼈 길이가 너무 차이가 나면 정형외과적인 수술을 하기도 하고, 큰 혈관 같은 경우에 중재적인 시술로 교정한다"고 말했다. 이 병에 특징적인 화염성 모반으로 붉어진 피부를 레이저로 치료하기도 쉽지 않다.
이범희 교수는 "모세혈관이지만 혈관 증식이 얕게 있지 않다. 그래서 화염성 모반을 레이저로 치료하려 해도 효과는 제한적"이라며 "이 병은 아무 치료를 안 하면 계속 커져서 성인은 관절염이나 통증 등으로 고통을 받는다"고 국내 클리펠-트라우네이-베버 증후군 치료 현실을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