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 상당수 여전히 실패율 높은 피임법 사용해"
이경욱 교수, 국내 피임 동향 및 인식 조사 결과 발표 "피임상담 만족도, 의료진과 국내 여성간 인식차 뚜렷"
지난 2022년 11월 '연세 메디컬 저널(Yonsei Medical Journal, YMJ)'에는 국내 여성 및 산부인과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피임에 대한 여성의 인식과 지식 및 국내 피임 사용 동향'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연구에 따르면, 피임법의 많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 여성들은 아직까지 콘돔이나 자연피임법 외에 장기 지속형 가역적 피임법(Long-Acting Reversible Contraception, LARC)을 포함한 대체 피임법에 대한 지식과 사용률은 매우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낮은 사용률에 반해 LARC를 사용한 여성들은 높은 만족도를 보였으며, 또한 대다수(83.1%)의 여성들은 현재 사용 중인 피임법과 다른 피임법에 대한 정보에 미충족 수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피임 정보 제공과 관련해 여성들과 산부인과 의료진들의 인식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피임 상담시 제공된 정보에 대한 만족도는 물론이고, 정보를 충분히 제공한다는 가정하에 환자들이 선택할 피임법 등에 대한 인식 차이가 명확했다. 이에 이 연구의 제1저자인 고대안산병원 산부인과 이경욱 교수를 만나 연구의 배경과 함께 주요 결과 및 시사점 등을 살펴봤다.
- 이 연구를 진행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피임은 의료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보건의 문제다. 의학적인 분야이긴 하지만 피임을 올바르게 하지 못함으로써 원치 않은 임신과 그로 인한 시술, 젊은 여성의 건강 문제나 2차로 수반되는 사회적 비용 등의 결과가 따르기 때문에 무척 중요하다. 이 연구는 유럽에서 보고된 TANCO(European Thinking About Needs in Contraception) 연구를 모티브로 해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진행한 연구로,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설문조사를 시행한 후 이 두 그룹간 피임에 대한 다양한 인식 및 만족도 차이를 보기 위해 진행됐다.
이전에도 국내 소규모 여성 집단 또는 10대 청소년 내지는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은 있었지만, 여러 의료진을 포함한 조사는 없었다. 이 연구는 의료현장에서 다양한 의료진의 입장, 그리고 환자들에 대한 인식 등에 대해 보편적인 자료를 조사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 이번 조사에서 국내 여성들의 피임법 사용 현황은 어떠했는지.
국내 여성들은 아직까지도 질외사정법(52.4%) 등 실패율이 높은 피임법들을 상당히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아직까지 국내 여성들의 피임에 대한 인식이 뒤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콘돔은 사용하기 편하고 즉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좋은 피임법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내 여성의 약 52.4%가 아직도 자연 주기 및 질외사정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피임에 실패한 사람들조차도 여전히 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다.
LARC, 경구피임약 등 피임 성공률이 높은 방법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여성들이 질외사정법 등 불확실한 방법을 계속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 같다. 사회적으로 교육이 안 됐을 수도 있고, 우리나라의 성교육 실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 연구 결과 중 특히 의료진과의 인식 차이가 눈에 띄었다.
이번 연구에서는 피임에 대해 국내 여성들이 어떻게 느낄지에 대한 의료진의 인식도 조사됐다. 의료진 입장에서 여성들이 피임법에 대해 어떻게 느낄지, 왜 여성들이 이러한 피임법을 선택하지 않을지 추정해본 것이다. 여기에는 피임 상담에 대한 만족도 부분도 포함됐다. 연구 결과, 산부인과 의료진들의 93.3%가 피임 상담 시 제공된 정보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반면 여성들의 정보 만족도는 60.2%로 큰 차이를 보였다.
또한 상담 시간에 대한 만족도 역시 산부인과 의료진은 약 78.0%, 여성은 49.1%로 여성에서 상대적으로 낮게 확인됐다. 여성들은 피임 상담을 본인이 먼저 주도했지 의사가 먼저 주도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피임 정보 및 방법 등 설명도 의사와 여성들 간의 인식 차이를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나온 데이터이기 때문에 의료진에게도 충분히 경각심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개원의(클리닉) 선생님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데이터인 것 같다. 대학병원은 피임만을 목적으로 오는 경우가 없으며, 다른 의료적 상황과 목적을 위해 다양한 피임법을 찾는 여성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의료진은 다양한 피임 방법들 중 해당 여성에게 어떤 피임 방법이 맞는지 충분한 설명과 함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피임 목적도 있지만 여성이 처한 상황이나 조건 또는 다른 동반질환이 있는가에 따라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피임법이 있다. 예를 들어 자궁내막증 등 다른 질환의 유무, 흡연 유무 등은 의료진이 따져봐야 하는 부분인데, 과연 국내 환경에서 이러한 진료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 국내 여성들의 LARC에 대한 낮은 선호도 원인 분석에도 인식차가 있었다.
이번 연구에서는 왜 여성들이 미레나와 같은 LARC를 선호하지 않는지에 대해 물었는데, 의료진들은 주된 이유로 '경제적 부담(65.3%)'을 꼽은 반면, 실제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뽑은 여성은 16.4%에 불과해 모든 답변 중 인식 차이가 가장 크게 나타났다. LARC를 단순 피임 목적으로 시술하게 되면 보험급여를 적용 받지 못해 비용 부담이 있을 수 있다.
아마도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가 비용을 부담스러워 할까봐 권유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반영됐을 수 있다. 하지만 LARC의 경우 단순 피임 목적으로 사용한다 할지라도 장기적인 사용 기간을 고려한다면 비용에 대한 부담이 덜할 수 있으며, 월경과다 등 월경 관련 질환이 있으면 보험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여성들이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옵션이라고 생각한다.
- 국내 여성들이 높은 피임 성공률에도 불구하고 LARC 등을 잘 안 쓰는 데에는 호르몬 제제, 이물질 등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있는 것 같다.
그 부분은 의사들도 가장 고민하는 지점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서양에 비해 자궁 내 장치나 피하 이식 장치 등 LARC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사용 비율도 매우 낮다. 장기 피임제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은 논문 등 의학적 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이물질을 넣고 시술한다는 이유로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또, 나중에 임신할 때 지장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많이 하는데, 이는 경구피임약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인식의 장벽이 어려운 문제 같다.
LARC 사용률을 늘리자는 취지는 아니지만, 안전하고 굉장히 효과적인 피임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이러한 피임법에 대해 접하고 인식하고 선택하게 되는 총체적인 계기가 별로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 그렇다면 어떤 여성에서 LARC 사용을 고려해볼 수 있나.
월경과다, 월경곤란증 등 월경 관련 질환이 있거나 자궁내막증을 동반한 여성에게는 효과적인 치료 옵션으로서 '미레나'와 같은 LARC를 사용할 수 있다. 자궁내막증이 월경 과다의 원인은 아니지만 미레나 등 LARC의 경우 자궁내막증 억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미레나는 생리 억제 효과가 꽤 높아 자궁내막증, 자궁근종 등 월경과다를 동반하는 월경 관련 질환의 경과에 도움이 된다. 때문에 대학병원에서는 이러한 질환에서 수반되는 증상을 경감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미레나를 많이 쓰는 것 같다. 물론 클리닉에서 오로지 피임 목적으로 내원했을 때에도 LARC는 1차 옵션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
- 다양한 피임법에 대한 국내 여성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려면.
피임 행태를 지역 단위 또는 소단위의 의료기관에서 바꾸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결국은 보건의료적인 측면이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피임약을 판매하는 제약회사 등에서도 홍보 책자를 제작하지만, 대부분 병원에 비치하는 용이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진 않는다.
국내에 관련 학회로 대한피임생식보건학회가 있지만,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고, 교육을 해나가는 등의 대중 캠페인 활동은 단순히 하나의 학술 기관에서 수행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정책적인 측면이 동반이 되어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