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에 갇혀있던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자기혐오’ 깨뜨리고 나오다

사노피·중아연, ‘아토피피부염의날’ 맞아 인식개선 캠페인 개최 아토피 환자 5명, 생성형 AI로 고통과 희망의 자화상 그려내 사노피 “평범한 일상도 아토피 환자에겐 쉽지않다 나타내려 했다”

2023-09-15     유지영 기자
잠 못 드는 아토피환자의 밤을 경험할 수 있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 밤이 되면 찾아오는 참을 수 없는 가려움과 아픔을 시각적&청각적으로 형상화했다. 

“샤워할 때 물이 몸에 닿으면 마치 유리파편을 맞는 것 같았어요. 저에게 샤워 시간은 고통의 순간이었습니다. 거울에 비친 저의 모습이 너무 싫어 불을 끄고 어둠속에서 샤워를 했어요. 피부 주름과 주름 사이 진물이 나오고 굳게 되면 그 곳에 물이 들어가는 순간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따릅니다, 그 고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지난 14일 사노피와 중증아토피연합회가 ‘아토피피부염의 날’을 맞아 개최한 ‘나의 흠:집 – 가픈 몸에 새겨진 집, 밥, 잠의 기록’ 팝업 전시회에서 만난 중증아토피연합회 최정현 부대표의 사연이다.

중증아토피연합회 최정현 부대표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중증아토피연합회 최정현 부대표는 생성형 AI를 통해 그려진 ‘Raining Daggers(젖다, 찢다)’라는 작품을 통해 불 꺼진 샤워실에서 유리파편처럼 날카로운 물줄기를 맞고 있는 한 남성의 모습을 그려냈다. 

최정현 부대표는 ‘Raining Daggers’라는 작품을 통해 물이 닿는 순간의 두려움, 우울, 공포, 자기혐오를 마주해야만 했던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두 번째 작품 ‘Dancing Waves(파동, 박동)에서는 듀피젠트 치료 후 찾은 일상의 기쁨을 표현했다. 올해 27년만에 처음으로 바닷물 속에 들어가 봤다는 최 부대표는 “그동안은 따가워 바닷물 속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물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며 “‘Dancing Waves’는 물에 대한 해방감, 그리고 자기혐오에 대한 깨뜨림, 희망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전시회에서는 최 부대표 말고도 4명의 아토피피부염 환자가 참여한 그림이 전시됐다. 

래퍼 씨클

래퍼 씨클은 ‘Man in the Mirror(거울 속의 타인)’라는 작품을 통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열등감과 콤플렉스를 거울 속 또 다른 ‘나’에 투영시켰으며, ‘Less is More(춤추는 일상)’라는 작품에서는 그저 '덜' 가렵고 ‘덜’ 아픈 하루에 만족한 그 순간에는 조금은 더 추상적이고 우주 같은 음악들이 떠올라 그때의 마음을 표현했다고 했다.  

‘아토피전쟁’ 채널 운영자인 유튜버 정원희 씨는 'The Masquerade(나의 뒷면)'라는 작품을 통해 평범한 얼굴 뒤에 꼭꼭 감춰둬야만 했던 이면의 ‘나’를 표현했다. 힘들지만 때로는 괜찮다고 이야기 해야 하는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 작품이다. 

‘아토피전쟁’ 채널 운영자인 유튜버 정원희 씨.

‘Above & Beyond(내게 무해한 세계)’라는 작품을 통해서는 아토피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에서 벗어난, 피부에 닿는 모든 것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은 순간의 감정을 형상화했다. 

이외에도 과도한 스테로이드 사용 등으로 결국 한쪽 눈을 실명한 조재헌씨는 ‘Self-diss-topia(자기속박)이라는 작품을 통해 단단한 외피로 스스로를 옭아맨, 세상으로부터의 고립을 표현했다.

반면 ’My Utopia(꿈꾸는 자유)‘를 통해서는 그 어떤 제약이나 구속 없이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누리는 ‘나’를 표현했다. 

조재헌 씨 작품

지금은 세 아이의 엄마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는 주부 김혜진 씨는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 아토피가 아이에게 유전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에 떨며 모유수유를 했었다며 ‘나의 고통이 아이의 고통으로 대물림되지 않을까?’하는 불안과 고통을 ‘Gloomy  Expectation(위험한 유산)’에 담았다고 했다. 

지금은 아토피가 호전돼 세 아이의 엄마로서 행복한 일상을 지내고 있다는 김혜진 씨는 ‘Romancing the Ordinary(평범함의 미학)’을 통해 모든 고통과 걱정에서 벗어난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을 환상적으로 표현했다. 

주부 김혜진 씨 작품

이번 아토피 인식개선 캠페인을 준비한 사노피 면역질환사업부 김현정 상무는 “‘나의 흠:집’이라는 테마는 피부와 내면의 상처들로 흠집이 난 환자, 또 그런 상처가 흠이라고 생각하는 환자를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며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에게는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조차 쉽지 않다.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에 대한 삶을 이해하고 인식을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나의 흠:집 – 가픈 몸에 새겨진 집, 밥, 잠의 기록'이라는 주제의 이번 전시회는 오는 17일까지 서울 연남동 카페스콘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