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다 치료 성적 나쁜 폐동맥고혈압…"즉각적인 병용요법 필요하다" 

[페이션트 스토리] 한국폐동맥고혈압환우회 윤영진 회장 병용요법 치료율 18%vs79%일 때 3년 생존율 54%vs92% 일본·미국·유럽 등에선 진단 초기부터 병용요법 치료 적용 국내에선 상태 악화된 '3단계'부터 병용요법 치료에 급여

2023-10-06     김경원 기자
폐동맥고혈압(Pulmonary Arterial Hypertension)은 넓리 알려진 고혈압과 아주 다른 경과를 보이는 희귀난치질환이다. 사진 제공=게티이미지

폐동맥고혈압(Pulmonary Arterial Hypertension)은 널리 알려진 고혈압과 아주 다른 경과를 보이는 희귀난치질환이다. 고혈압은 폐에서 산소 샤워를 마친 혈액이 심장에서 뿜어져 나올 때의 혈관 압력이 높을 때를 말한다. 폐동맥고혈압은 온몸에 산소를 나눠주고 이산화탄소를 싣고 심장으로 들어온 혈액이 산소 샤워를 위해 폐동맥으로 진입할 때의 압력이 높은 병이다.

폐동맥 압력이 올라가 혈액이 계속 역류하면 심장이 부담이 심해져 급사 위험이 올라간다. 이 병은 대부분 심장에서 폐로 들어가는 혈관인 폐동맥이 좁아져 생기는데, 폐동맥이 좁아진 이유를 모르는 경우도 있지만, 알려진 위험도 있다. 바로 펜플루라민(식욕억제제), 선택적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우울증치료제) 등과 같은 폐동맥고혈압을 유도하는 약물 노출력이나 루푸스 같은 자가면역질환, 선천성 심장병, HIV 감염 등의 병력이 그것이다. 

폐동맥고혈압은 인구 1만명 당 1명 꼴로 발생해 국내 약 5,000명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실제 폐동맥고혈압 치료를 받고 있는 국내 환자는 2,000명도 되지 않는 것으로 국내 폐동맥고혈압 전문 의료진들은 추계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내 폐동맥고혈압 환자가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데, 바로 진단이 잘 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폐동맥고혈압환우회 파랑새 윤영진 회장도 어지럼증, 실신과 같은 폐동맥고혈압 증상이 처음 나타난 것은 2013년이지만 실제 병을 진단받은 것은 2017년이었다고 한다. 첫 증상 발현 뒤 병원에 갔을 때 윤 회장은 수축기혈압이 140mmHg 정도로 아주 높지 않았는데도 고혈압 진단을 받았고, 이후 고혈압 치료를 해왔다고 한다. 당연히 그에게 고혈압 치료가 효과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윤영진 회장은 "증상이 반복돼 중간에 MRI 검사까지 했는데도 계속 고혈압이라고 해서 혈압약만 복용했다"며 "2017년 온몸이 퉁퉁 부어올라 4~5일간 입원치료를 하면서 온몸에 CT, MRI 등을 다 찍은 결과 폐동맥고혈압이 의심된다고 해서 삼성서울병원으로 전원돼 이 병을 진단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2010년대 중반부터 폐동맥고혈압 관련 의학회에서 목소리를 내며 질환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리면서 과거보다 진단까지 걸리는 기간이 줄고는 있다.

한국폐동맥고혈압환우회 파랑새 윤영진 회장이 올해 열린 대한폐고혈압학회 학술대회에서 환우회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제공=윤영진 회장

하지만 폐동맥고혈압 환자가 현재도 병을 진단받기까지 1년 반 정도가 소요된다. 이처럼 진단이 늦는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이 병의 초기 증상은 운동 시 호흡곤란이나 아주 잠시 기절해 깨어나는 형태의 실신인데다 증상이 사라지면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해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폐동맥고혈압 환자가 초기 단계에 병원에 가지 않기도 하고, 병원에 간다고 해도 작은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검사로는 폐동맥고혈압을 진단하거나 의심할 수 없어 진단을 놓치기도 한다. 또 피로감, 호흡곤란 같은 여러가지 질환에 흔한 증상이 폐동맥고혈압의 주요 증상이기 때문에 천식, 공황장애 등으로 흔히 오진되기도 한다. 희귀질환이기 때문에 확진 검사인 우심도자술과 같은 전문적인 검사가 빠르게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국내 폐동맥고혈압의 낮은 조기 진단율은 결국 치료 성적이 나쁜 폐동맥고혈압의 예후를 더 떨어뜨린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조기 진단만 돼도 폐동맥고혈압의 생존율을 약 3배 올릴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폐동맥고혈압 환자 대부분이 신체 활동에 제약이 가해지는 단계에서 진단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폐동맥고혈압은 ▲1단계=신체 활동에 제한이 없는 상태 ▲2단계=신체 활동에 약간 제한이 있으나 휴식을 취하면 편안해지는 상태 ▲3단계=신체 활동에 많은 제한이 있으나 휴식을 취하면 편안한 상태 ▲4단계=휴식 시에도 호흡곤란과 피로가 나타날 수 있는 상태 등 4단계로 나뉘는데, 윤 회장도 급성 악화로 3단계 상태에서 진단돼 그나마 치료·관리를 통해 2단계로 개선됐다고 한다. 

조기 진단이 어려운 폐동맥고혈압의 특성을 고려한다고 해도 국내 폐동맥고혈압 치료 성적은 낮다. 과거 국내 폐동맥고혈압 5년 생존율은 50%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최근에는 70%까지 바라보는 상태로 올라섰다. 그래도 여전히 국내 폐동맥고혈압 5년 생존율은 전체 암 생존율 71.5%(중앙암등록본부 암생존통계 자료)보다 낮고, 미국와 일본의 폐동맥고혈압 치료 성적보다도 크게 떨어진다. 그 이유가 있다. 

윤영진 회장은 "국내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병용요법 치료율이 미국, 일본보다 낮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폐동맥고혈압은 두 가지 이상의 약제를 쓰는 병용요법 비율에 따라 치료 성적이 다르다. 실제 한국, 미국, 일본의 폐동맥고혈압 병용요법 치료율이 각각 18.4%(2008~2016년), 52.4%(2006~2014년), 79.2%(1992~2012년)였을 때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3년 생존율은 각각 54%, 68%, 92%였다.

병용요법 치료율이 18%로 낮으면 3년 뒤 살아남은 폐동맥고혈압 환자 비율이 54%로 반토막에 불과하지만, 병용요법 치료율을 79%까지 올리면 3년 뒤 살아남은 폐동맥고혈압 환자 비율은 92%까지 올라선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8월 유럽심장학회에서 발표된 유럽 폐동맥고혈압 진료지침에서는 저·중위험군 환자에게도 병합요법을 시작할 수 있게 했다. 

현재 폐동맥고혈압 치료에서 글로벌 우위에 있는 일본은 초기부터 세 가지 약제의 병용요법이 가능하다. 하지만 국내는 폐동맥고혈압 3단계에서부터 병용요법을 급여 치료로 쓸 수 있다. 이것도 폐동맥고혈압 4단계에서만 병용요법이 가능했던 것이 국내 폐동맥고혈압 전문 의료진의 목소리로 지난해 2월 그나마 폐동맥고혈압 3단계로 개선된 것이다. 

윤 회장은 "우리나라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폐동맥고혈압 진단 뒤 즉각적으로 병용요법이 이뤄지게 바뀌어야 한다"며 "병용요법이 폐동맥고혈압 환자가 몇 년을 살지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에 경제성 논리로 접근하기보다 실제 환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약제 급여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폐동맥고혈압은 진단과 치료 환경만 열악한 것이 아니다. 진단 뒤 고혈압보다 더 강력한 강도로 삶을 뒤흔들지만, 일상에서 병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도 제대로 알려져있지 않다. 더구나 국내 3분 진료의 현실에서 희귀질환자가 자신의 병에 대해 제대로 전문 의료진에게 물어보기도 어렵다.

사진 제공=한국폐동맥고혈압환우회

이런 까닭에 폐동맥고혈압환우회가 국내 몇 되지 않는 폐동맥고혈압 전문 의료진을 직접 섭외해 환우의 질환 관리를 돕는 동영상을 제작하는 것에 더해, 지난 8월에는 '폐동맥고혈압 환자 안내서'를 직접 기획해 출간까지 했다. 

폐동맥고혈압 환자 안내서는 폐동맥고혈압 환우의 실질적인 고민에 전문 의료진이 답하는 Q&A 형식의 서적이다. 또한 책 후반에는 폐동맥고혈압환우회가 직접 만든 '건강일지'가 담겨 있어서 이를 통해 어떻게 병을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고, 실제 자신의 건강일지로도 활용할 수 있다. 

윤영진 회장은 "환우회 임원들이 머리를 짜내서 폐동맥고혈압 관리를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다 집어넣었다"며 "병원에 가기 전 의사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 약에 대한 부작용은 없는지 등을 꼼꼼하게 챙길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 카페에서 벗어나 지난해 정식 오픈한 폐동맥고혈압환우회 공식홈페이지에서 '폐동맥고혈압 환자 안내서'를 신청하는 환우에게는 10월까지 무료 배포한다.  

다음 단계로 폐동맥고혈압환우회는 환우들이 병에 대해 아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실행력 향상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계획하고 있는 것은 질환 관리에 유용한 책을 함께 읽는 독서모임이자 자조모임을 정기적으로 여는 것이다.  윤 회장은 "예를 들어 튀김을 먹지 말라고 해도 환자들 거의가 먹는다. 근데 책을 읽고 왜 먹지 말아야 되는지를 알게 되면 안 먹을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이외에 폐동맥고혈압환우회는 환우의 정서 관리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폐동맥고혈압은 치료해도 점차 병이 악화되는 질환인데다 급사 위험도 크기 때문에 진단 뒤 정서적으로 힘겨워하는 환우들이 많다. 때문에 환우들에게 어떻게 폐동맥고혈압을 바라보며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지를 가이드하고,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환우회가 동영상이나 만화로 제작해 홈페이지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관심이 덜한 희귀질환을 제대로 알리고 사각지대에 선 희귀질환자들의 권익을 위해 윤영진 회장은 희귀질환환우회가 발전될 수 있는 사회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윤 회장은 "독일은 국가에서 환우회에 보조금을 대준다. 일본은 사무실도 만들어주고 환우회에 리더십 교육도 해준다. 치료제 급여도 정부에서 주도해서 의사와 같이 다 알아서 해준다"며 국내와 다른 상황을 역설했다.

윤영진 회장은 "우리나라는 환우회에 대한 국가 지원도 없고, 기부금도 받을 수 없게 돼 있다. 희귀질환관리법에 지정기부금 발행 대상으로 희귀질환환우회만 넣어주면 국가에서 지원하지 않아도 희귀질환환우회가 기부금을 받아서 환우회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며 사회적 사각지대에 선 희귀질환 환우들이 적극적으로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게 제도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