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후성 심근증’ 알리기에 팔 걷어붙인 의사들

심초음파학회, ‘비후성심근증연구회’ 신설…회장에 이상철 교수 비후성 심근증 인지도 높이기 위해 유튜브 제작 추진 연구회 통해 레지스트리 구축…국내 진료지침 등 마련

2023-10-13     유지영 기자

유병률이 200~500명당 1명으로 국내 환자수가 10만명에서 25만명으로 추정되지만 2021년 기준 실제 진단된 환자 수는 1만9,925명에 불과한 질환이 있다.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는 유전성 희귀질환 ‘비후성 심근증(hypertrophic cardiomyopathy, HCM)’이다. 개인에 따라 증상이 없기도, 때로는 급사 위험도가 높기도 하지만 현재 진단된 환자수는 유병률에 턱없이 모자라다. 숨어있는 환자가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이에 비후성 심근증에 대한 국내 인지도를 높여 숨어있는 환자를 발굴하고, 국내 레지스트리를 구축해 우리나라 환경에 맞는 진료지침을 만들어보겠다며 전문가들이 뭉쳤다. 한국심초음파학회 내 신설된 ‘비후성 심근증 연구회’가 그것이다.

초대 회장은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이상철 교수가 맡았다. 이상철 교수를 만나 국내 비후성 심근증에 대한 치료환경, 연구회를 설립한 목적, 앞으로의 활동 계획 등에 대해 들었다.

한국심초음파학회 내 비후성 심근증 연구회 초대 회장을 맡은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이상철 교수

- 비후성 심근증 연구회를 설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비후성 심근증이라는 것은 유전성 심근질환 중에서는 생각보다 유병률이 높은 질환이다(개인적으로는 질환이라는 단어보다 컨디션을 선호한다). 문헌상으로는 500명 중에 1명이라고 돼 있을 정도니까. 질환의 정도도 가벼운 것부터 심각한 것까지 있으며, 젊은 사람일수록 급사 위험이 더 높지만 중장년층 이후로는 급사 위험도는 높지 않더라도 뇌경색 진단을 받은 환자에서 비후성 심근증을 진단받는 경우가 꽤 많다.

비후성 심근병증은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면서 생기는 심장병이다. 심근에는 두가지 단백질인 액틴과 마이오신이 있다. 두 단백질이 서로 결합하며 심장 근육을 수축시켰다, 이완시켰다 하며 전신에 혈액과 산소를 공급한다. 그러나 액틴과 마이오신이 서로 과도하게 연결되면 심근이 지나치게 수축, 심근의 이완이 어려워짐으로써 심장의 변형을 초래하고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유병률만 따지고 본다면 흔한 유전성 심근질환이지만 위험도가 높은 만큼 국내 인지도를 높여야겠다는 생각에 연구회를 설립하게 됐다.

비후성 심근증에 대해서는 최근 10여 년에 걸쳐 새로운 지식들도 상당히 많이 축적된 상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국내 많은 연구자들이 비후성 심근증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기는 한데 통합된 연구가 없다. 이에 연구회를 설립해 병원별로 이뤄지고 있는 레지스트리를 통합, 비후성 심근증에 대한 국내 레지스트리를 구축해 보려고 한다.

- 뇌경색을 진단 받은 환자에서 비후성 심근증이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경과에서 뇌경색으로 진단이 되면 무조건 심장 검사를 하게 된다. 특히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라면 더 그렇다. 뇌경색의 원인이 심장에서 비롯된 혈전 때문일 수 있기에 심장에 혈전이 발생할 만한 컨디션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검사를 하게 되는데 그 때 비후성 심근증이 발견이 되는 것이다. 외국 통계에 의하면 비후성 심근증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특히 중장년층 이후로는 뇌경색 발병 위험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 연구회에서 가장 먼저 추진하는 사업은 무엇이 있나.

연구회가 가장 먼저 준비하고 있는 것은 한국심초음파학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일반 국민이나 의료인들에게 비후성 심근증에 대해 알리는 것이다.

- 유튜브를 통해 비후성 심근증에 대해 알리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튜브에 비후성 심근증에 대한 영상을 올리려는 것은 위험도가 있기 때문에 미연에 빨리 진단해서 위험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비후성 심근증은 진단하는 게 어렵지 않기 때문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증상이 경미하거나 없는 등 발현 정도도 환자마다 제각각이다보니 본인이 비후성 심근증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 숨겨진 환자도 적지 않다. 질환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다보니 너무 오해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과잉 걱정하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유튜브를 통해 비후성 심근증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려는 것이다.

또한 심장이라는 구조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이름만 듣고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더구나 진료현장에서 충분히 설명을 다 못 받는 환자들도 적지 않은 것 같더라.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찾아봐도 어그로 끄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고 제대로 된 정보가 없다. 유튜브를 통해 비후성 심근병증이라는 게 어떤 질환인지, 어떤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고, 어떤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 왜 위험한지, 어느 정도가 위험한 건지 등을 이해하고 온다면 의료진과 커뮤니케이션할 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이상철 교수

- 진단이 어렵지는 않다고 했는데 비후성 심근증을 의심할 수 있는 증상이 있나.

일반적인 심장질환의 증상은 호흡곤란과 흉통, 두근거림 등 이 세가지 정도인데 그런 증상이 있는 분들은 당연히 심장검사를 하게 될 것이고, 심장내과 의사라면 진단하는 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동네 내과나 가정의학과에서도 심전도만 찍어봐도 어느 정도 의심을 할 수 있는데 심전도로 파악이 안되는 경우가 있기에 의심이 되면 큰 병원을 가는 게 좋다.

- 유튜브 제작과 함께 계획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앞서 비후성 심근증에 대한 레지스트리를 구축한다고 했는데.

각 병원마다 비후성 심근증에 대한 레지스트리들이 있다. 따라서 각 병원들의 데이터를 수집해 통합하는 작업을 하고, 레지스트리가 없는 병원의 경우 셋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런데 레지스트리에 들어갈 데이터 자체도 통일이 될 필요가 있다. 환자들의 데이터가 통일돼 있어야 코호트 연구를 할 수 있고, 환자들을 분류해 동양인의 위험도 평가 기준도 새로이 만들 수 있다. 레지스트리가 구축된다면 국내 비후성 심근증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진료지침을 만들 계획이다.

비후성 심근병증은 좌심실 근육이 대동맥을 통해 전신으로 나가는 혈류를 방해하는지 여부에 따라 폐색성과 비폐색성 등 2가지로 나뉜다. 두꺼워진 좌심실 근육이 대동맥을 통해 전신으로 나가는 혈류를 방해받는 경우를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obstructive Hypertrophic Cardiomyopathy, oHCM), 반대로 혈류를 방해받을 정도로 좌심실 유출로가 막혀있지 않은 경우를 비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nonHCM, non-obstructive HCM)이라고 한다. 15∼20%가 oHCM에 속한다.

- 그동안 적합한 치료제가 없던 비후성 심근증 치료에 ‘캄지오스’라는 약이 개발돼 국내 허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비후성 심근증 환자들은 어떻게 치료를 해오고 있었나.

현재까지 비후성 심근증 증상을 획기적으로 완화시키는 것으로 입증된 약제는 없었다. 가이드라인에 나와 있는 약제들을 써보고 안되면 다른 약제를 쓰는데 기본적으로 심부전에 준해 베타차단제나 칼슘채널차단제 등을 사용한다. 영국 등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진단 및 치료 가이드라인을 계속 발표하고 업데이트 해오고 있다.

- 비후성 심근증에 유일한 치료제인 ‘캄지오스’에 대한 기대가 클 것 같다.

캄지오스는 비후성 심근증 가운데 하나인 폐색성 비후성 심근증(oHCM)에 허가된 유일한 치료제다. 폐색성 비후성 심근증으로 힘들어하는 환자의 증상을 획기적으로 완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입증된 새로운 약이다. 리얼타임 데이터가 나와 있지는 않지만 해외 데이터가 워낙 좋게 나와 있고 미국에서도 쓰여 지고 있으며, 현재까지 부작용이 보고된 것이 없기 때문에 국내에 출시가 된다면 적극 써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