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번이 묵살된 전문 의학회 의견…“솔리리스 급여, 환자 중심 판단 중요”

[사전심사제도 논란 해부②] 솔리리스 급여기준 무엇이 문제인가 신장·혈액·이식·병리 등 6개 학회 “TMA 원인 명확히 구분 어려워” aHUS, 혈액질환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투석 등 신장 손상 야기해 신장학회 김형종 보험이사 “질환 특성 따라 급여기준 조정 필요”

2024-01-09     유지영 기자

고가의 희귀질환치료제의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약제 사전심사제도'가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aHUS)에 유일한 치료제인 '솔리리스(성분명 에쿨리주맙)'에 대해서는 접근성 강화가 아닌 장벽이 되고 있어 논란이다.

사전심사제도란 고가의 약제 사용 전 치료제가 필요한 환자인지 여부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판단 받는 제도다. aHUS 치료제인 솔리리스와 올토미리스,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인 졸겐스마와 스핀라자, 저인산효소증 치료제 스트렌식 등이 사전심사 약제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솔리리스의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된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신청된 40건 중 38건이 불승인됐다. 승인율은 5%.

심평원은 급여기준에 대한 의료진의 이해부족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급여 기준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심평원의 급여기준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현 급여기준 부당함 조목조목 지적하는 신장학회

우선 솔리리스의 보험급여 기준은 활성형 혈전미세혈관병증(TMA: Thrombotic Microangiopathy)으로서 각각의 항목에 모두 부합돼야 한다. 혈소판수는 해당 요양기관의 정상 하한치 미만, 분열적혈구(schistocytes) 확인, 헤모글로빈 <10g/dL, LDH(lactate dehydrogenase) 정상 상한치의 1.5배 이상에 해당해야 한다.

또한 신장기능이 저하된 환자에서 eGFR 20% 이상 감소 신장기능이 정상인 환자에서는 혈청 크레아티닌이 연령 및 성별에 따른 정상 상한치 이상이어야 한다. 더불어 혈장교환 또는 혈장주입 이전 혈액 샘플에서 ADAMTS-13 활성이 10%(ADAMTS-13 활성 결과 확인 전 혈소판 수 30×109/L 이상 및 혈청 크레아티닌 150μmol/L(또는 1.7/) 이상인 경우에는 사전신청서 제출 후 투여 가능하지만 ADAMTS-13 활성 결과 10% 미만인 경우 이후 투여 분부터는 불인정하며, 대변 STEC(Shiga toxin-producing E.Coli) 결과는 음성이어야 솔리리스 투여가 가능하다.

그러나 대한신장학회는 지난 2018년부터 2020, 2022년에 이르기까지 심평원에 보낸 의견서를 통해 솔리리스에 대한 현 급여 기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우리 몸은 aHUS로 인해 보체계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면 작은 혈관들에 혈전과 염증이 생기는 혈전성 미세혈관병증(TMA)이 나타난다. 이는 혈뇨, 단백뇨, 탈진 등의 증상과 더불어 신장·심장·뇌 등 주요 장기를 손상시켜 적절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수개월 내 말기신장병과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신장학회는 의견서를 통해 aHUS는 혈전성 혈소판감소성자반증(TTP) 의심 질환을 하나씩 배제하며 감별 진단을 해야 하는데 악성종양, 약물, 임신, 감염과 같은 질환들도 aHUS를 촉발시킴으로 이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신장학회는 물론 소아신장학회, 혈액학회, 이식학회, 병리학회, 임상유전학회 등 6개 의학회의 공통된 의견이다.

신장학회는 aHUS의 다양한 임상양상을 고려해 현재 솔리리스의 급여기준에서 헤모글로빈 수치와 LDH 수치를 변경하고 신생검(신장조직검사)을 통한 TMA 진단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각 기준들이 TMA를 진단하는데 있어 활용되는 요소인 것은 맞지만, TMA 환자들이 혈소판 감소증을 포함해 모든 혈액학적 임상적 증상이 발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신장학회의 입장이다.

신장내과, 임상 현실 반영한 급여기준 개선 방안 제안

구체적으로 급여 기준에서는 헤모글로빈 기준을 10g/dL 미만으로 정하고 있는데 이는 말기 신부전 환자에서 발생하는 적혈구 생성 과정에서 발생한 빈혈 수치에 가깝다는 게 신장학회의 지적이다.

또한 적혈구의 손상으로 인한 용혈성 빈혈을 진단하는 지표인 LDH정상 상한치의 1.5배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미 많은 연구 및 문헌들에서는 ‘LDH가 정상 상한치보다 높을 경우TMA 진단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고 했다.

급여 기준대로라면 1.5배 이상은 되고 1.3배는 안 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근거가 있는 게 아닌 만큼 수치가 정상이 아니라면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급성 TMA에서는 LDH 상승이 초기 단계의 적혈구 손상 정도와 비례하지 않을 수 있어 LDH로 질병의 중증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게 신장학회의 설명이다.

때문에 혈액학적 지표와 더불어 임상적으로 더 유용한 신생검을 TMA 진단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신장 조직검사는 조직의 내피세포 손상을 육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이고 유용한 검사 방법으로, TMA로 인한 만성적인 진행 여부 또한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신장학회의 설명이다.

또한 혈액학적 지표상 판단이 어려운 경우, 즉 혈액학적 수치가 정상 소견이거나 경증을 보이는 경우 신장 조직 검사를 통해 진단뿐만 아니라 표적 장기 손상의 진행도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aHUS로 인해 말기 신부전이 발생한 환자에서 신장 이식을 시행한 경우, TMA가 임상적으로 의심된다면 혈액학적 이상이 심하지 않더라도 신장 조직검사를 시행해 조기에 진단 및 치료를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장학회는 “aHUS의 임상 양상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며 이는 혈액학적 수치로도 반영되기 때문에 aHUS에 대한 해외 가이드라인에서는 MAHA의 혈액학적 검사를 모두 만족하지 않을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호주와 캐나다에서는 혈액학적 기준이 모든 항목을 만족하는 것이 아닌 2개 이상 만족하는 경우에도 보험 급여를 인정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 현재 급여 기준을 모두 만족하지 않더라도 다른 나라들처럼 aHUS를 진단할 수 있으며, 지표들이 질환의 중증도를 평가한다는 근거 또한 없기에 다른 나라들처럼 혈액학적 지표를 모두 만족이 아닌 일부분 만족으로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신장학회는 의견서를 통해 급여 기준 개선 방안으로 혈소판수는 해당 요양기관의 정상 하한치 미만으로 하고 분열적혈구(schistocytes) 존재 여부 헤모글로빈은 해당 요양기관의 정상 하한치 미만 LDH의 경우 해당 요양기관의 정상 상한치 이상 등으로 하고, 이 중 혈소판수를 포함해 3개 이상 TMA 기준에 부합하는 경우 또한 신생검으로 TMA가 확인되는 경우, 말기 신부전 환자의 신장 이식 후 신생검으로 TMA가 확인된 경우에는 aHUS로 인정해줄 것을 제안했다.

또 이로 인해 고가의 치료제인 솔리리스의 급여기준이 변경될 경우 약제 사용이 늘어나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사전승인 이후 모니터링을 통해 투여 중단을 결정하게 된다면 얼마든지 환자 수나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기 치료가 중요한 aHUS의 특성을 고려할 때 변경된 기준을 적용해 약제를 조기에 투여하는 게 환자의 치료와 예후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말기신부전으로의 악화를 막아 건강보험 재정 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제언이다.

꿈쩍 않는 심평원…"낮은 승인율, 의료진의 이해부족 탓"

하지만 심평원은 여전히 aHUS에 있어서 솔리리스의 급여 기준 완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이 질의한 희귀질환 약제 사전심의제도에 대해 심평원은 솔리리스의 승인율이 낮은 이유는 의료기관이 급여 기준에서 투여대상 조건과 제외기준을 명확히 판단해 승인신청을 해야 하나 이러한 판단을 사전심사분과위원회를 통해 받고자 하는 경우와 급여기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신청한 경우가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주최한 희귀질환 약제 사전심의 제도 개선방안 토론회에서도 심평원 윤휘중 내과심사수석위원은 약가 사전심의제도 승인율이 낮은 이유에 대해 의료진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도 환자를 위해 승인 신청하는 게 많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의료진이 기준의 일부에 정확하게 부합하지 않더라도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사전심의를 신청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것.

윤 위원은 이런 경우 미충족 사유로 반려하고 싶었지만, 환자들에게 약제 급여의 기회를 부여하는 측면에서 전권을 심의하고 있다면서 이런 사례가 전체적으로 승인율을 낮추는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의료진이 급여 기준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서 기준에 맞는 케이스만 신청하면 승인율은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솔리리스의 낮은 승인율이 급여기준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진의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심사를 위한 심사 아닌 환자를 위한 심사 이뤄질 수 있어야

그러나 이같은 심평원 입장에 대해 해운대백병원 김양욱 교수는 심사 과정에서 수치가 악화될 것이 예상돼 조기 치료 목적으로 기준 수치를 충족하지 못한 검사 결과를 제출한 것을 두고 의료진의 이해도가 낮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급여 기준을 충족했을 때 사전승인을 신청하면 예후가 좋지 않다면서 심사를 위한 심사가 아닌 환자를 위한 심사가 이뤄질 수 있게 하려면 급여 기준을 일부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양철우 교수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양철우 교수도 "혈전성 혈소판감소성자반증(TTP)은 혈장반출이 첫번째 치료이고 세 번까지 혈장반출을 했는데 안 좋아지면 'aHUS'구나 생각한다"며 "혈장반출 뒤엔 aHUS 진단을 받아도 솔리리스 투약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aHUS를 의심하기 전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면 의료진들은 TMA의 또 다른 하부 질환인 혈전성 혈소판감소성자반증(TTP)을 의심해 혈장반출이라는 첫번째 치료를 하는데, 그 결과가 솔리리스의 투약을 막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즉, 유사질환의 가능성을 배제하며 진단하는 과정 중 환자에게 나타난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한 의료행위가 실제 '진짜 치료제' 솔리리스의 투여를 막는 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신장학회 김형종 보험법제이사(분당차병원 신장내과 교수)aHUS 치료제인 솔리리스의 경우 질환의 특성에 따라 급여 기준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사전심사분과위원회에 신장 분야 전문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형종 보험법제이사는 “aHUS가 혈액질환과 관련해 시작을 하긴 하지만 결국은 신장 기능이 망가져서 투석을 하게 되는 만큼 결국 혈액질환만은 아니다라며 그런데 혈액검사 수치 하나가 기준에 부족하니 승인할 수 없다고 한다면 직접 환자를 보는 의사들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김 보험법제이사는 환자 중심의 심사라고 해놓고 현실은 급여 기준에 맞춰 환자를 보라고 한다. 그러나 환자가 급여 기준에 맞춰서 오는 건 아니지 않나라면서 고가의 치료제라 비용적인 부분도 고려해야겠지만 질환의 특성에 따라서 급여 기준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재는 사전심사분과위원회 심사위원에 신장분야 전문가가 한명 참여하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10여명의 목소리에 묻힐 수밖에 없다면서 위원회에 신장분야 전문가가 더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겠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그는 aHUS 환자들이 치료의 기회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신장학회에서는 심평원 등 정부에 급여기준 개선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한편, 정부는 현행 14일 정도 걸리는 사전심의 기간을 단축하고 솔리리스 등 안정적으로 오랜 기간 승인되고 있는 약제부터 사후심사형태로 심사 방식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오창현 보험약제과장은 사전심사제는 (희귀질환 약제의) 고가적 측면, 불확실성, 약 오남용 우려 측면에서 시행하는데 앞으로는 제도 개선을 하고자 심사평가원에서 여러 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오 과장은 사전심사에 적용하는 약제 기준은 무작정 쭉 가는 게 아니라 일정기간으로 정하자는 논의를 하고 있다솔리리스 등 오래된 것들 중 안정적으로 승인되는 약제부터는 사전 승인을 사후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