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에도 절실한 '정밀의료'…꽉 막힌 진단·치료 흐름 뚫어야 한다

소아고형암 정밀의료사업 스트림프로그램서 진단과 치료현실 조명 모두 희귀암인 소아고형암, 진단·치료 흐름 바뀌면 예후 달라질수도

2024-02-05     김경원 기자
정밀의료의 도입으로 각종 성인암의 치료 성적이 바뀌고 있다. 암을 유발한 '드라이버 유전자 돌연변이'를 찾아내 이를 타깃한 치료제를 투약함으로써 완치율이 확실히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소아암도 성인암의 정밀의료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치료 성적이 분명 개선될 수 있다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소아암은 정밀의료의 핵심인 '진단' 첫 단추부터 막혀 있고, 치료제 접근 역시 큰 숙제로 남겨져 있다. 

정밀의료의 도입으로 폐암, 대장암, 유방암 등 각종 성인암의 치료 성적이 바뀌고 있다. 암을 유발한 '드라이버 유전자 돌연변이'를 찾아내 이를 타깃한 치료제를 투약함으로써 완치율이 확실히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아암은 어떨까? 

소아암도 드라이버 유전자 돌연변이를 찾아내 성인암의 정밀의료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치료 성적이 분명 개선될 수 있다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소아암은 정밀의료의 핵심인 '진단' 첫 단추부터 막혀 있고, 치료제 접근 역시 큰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을 이끄는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의 고형암 세부사업부장인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피지훈 교수는 2일 열린 소아고형암 정밀의료사업 'STREAM 프로그램' 심포지엄에서 이같은 소아고형암 환아들이 처한 열악한 진단과 치료 현실을 짚었다. 

피지훈 교수는 "소아고형암은 진단이 매우 어렵다. 숫자가 적고 개별 장기로 나눠지면 다 희귀암에 들어간다. 분자생물학의 힘을 얻지 않고는 아무리 경험 많은 의료진도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아서 진단이 어렵다"고 짚었다. 진단 관련 시스템적인 제약도 많다. 

피 교수는 "현재는 비용, 인력 등 시스템적 제약으로 대부분의 병원에서 충분한 검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환아들이 갖고 있는 점라인 뮤테이션(germline mutation, 생식세포 돌연변이)에 대한 평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점라인 뮤테이션은 유전자 돌연변이 중 부모로부터 전달된 유전자 돌연변이인 생식세포 돌연변이를 말하는 것으로, 개체마다 특이적인 체세포 돌연변이(somatic mutation)와 다른 개념이다.

성인암과 달리 환경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하는 소아암의 특성을 명확히 알기 위해서는 점라인 뮤테이션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한데, 현재는 거의 힘든 상태인 것이다.

그 원인은 소아암의 열악한 인프라에 있다.  피지훈 교수는 "병리과 의사가 전체적으로 굉장히 적은데, 소아암을 보는 병리과 의사는 더 적고 각 병원마다 한 명씩 없는 곳도 있다. 각 도에 한 명 정도 있으면 다행"이라며 "수술을 해도 진단이 안 돼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와야 되는 문제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진단 시스템이 갖춰진 병원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피 교수는 "병원마다 찍어둔 유전자 돌연변이만 보는 '타깃 시퀀싱'이 최근 몇 년 사이 도입됐는데, 어느 병원은 좀 잘 하지만 어느 병원은 아주 몇 개밖에 못하고 있어서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타깃 시퀀싱이라는 것은 병원에서 찍어둔 유전자 돌연변이만 검사하는 것으로, 국내 발현 가능성이 높은 타깃을 많이 잘 찍어두면 환아가 가진 돌연변이를 걸러낼 가능성이 크지만, 조금만 찍어두면 돌연변이를 제대로 걸러내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또 소아암에 있어서 병원마다 조직은행이 없거나 각 의료진이 운영하는 분산된 조직은행 네크워크만 일부 있는 까닭에 희귀암인 소아암을 정밀진단하는데 필요한 인프라가 상당히 열악한 상황이다. 

이같은 현실에서 변화의 바람은 지난해 2월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의 스트림 프로그램을 통해 찾아왔다.

피지훈 교수는 "스트림 프로그램은 소아고형암 모두를 포괄해 최신의 전장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WGS, Whole Genome Sequencing) 결과를 얻어 가장 정확한 분자병리학적 진단을 제공한다"며 지난 1년간 새 진단시스템이 국내 만들어졌다고 했다. 

집단지성을 통해 소아고형암의 진단 정확도를 높이는 인적인프라도 구축됐다. 피 교수는 "연세의대 병리학교실 김세윤 교수가 위원장을 맡는 병리위원회를 만들어 소아암을 볼 수 있는 병리학자들의 온라인 미팅을 통해 진단을 한 번 더 리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제까지 없었던 소아암 전용의 유전자분석 파이프라인도 구축됐다. 피 교수는 "소아를 위한 임상시험이 이뤄지지 않고 소아를 위한 약이 없는 것처럼 유전자분석도 소아를 위한 파이프라인이 사실 없었다. 대부분의 암 유전자분석 파이프라인은 성인암을 타깃하기 때문에 소아암에는 적합하지 않았다"며 지난 1년간 토의를 하면서 점점 고도화해 상당히 정교한 소아암 전용 유전자분석 파이프라인을 만들었다고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바이오업계와 손 잡고 소아암에 특화된 솔루션을 제시하는 프로그램도 구축했다. 피지훈 교수는 "드러그 라이브러리(drug library)를 환아의 암세포에 적용해 어떤 항암제를 쓸 것인지에 대한 레포트를 제공해주는 프로그램"이라며 "기존의 약제에 더해 신약까지 테스트해서 적게는 30가지 많게는 100여 가지 약제에 대한 테스팅을 하고, 그 결과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아고형암 진단 정확도가 높아지고 그에 맞는 치료 솔루션이 제시되면서 진단과 치료 흐름을 원활히 하겠다는 목표의 스트림 프로그램에서 다른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됐다. 바로 정밀진단에 맞춰 소아고형암 환아에게 치료제를 쓰지 못한다는 국내 현실이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

이날 피지훈 교수는 100% 사망하는 최악의 예후를 보이는 소아암 '뇌관교종(diffuse midline glioma)'에 걸린 7세 환아에게 스트림 프로그램을 적용하면서 유전자분석검사를 통해 암 드라이버 유전자로 BARD1 유전자 돌연변이를 찾았다고 소개했다.

최근 BARD1 유전자 돌연변이에 대해 올라파립 같은 PARP1억제제가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스트림 프로그램에서는 이 치료제 임상시험을 솔루션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뇌관교종 환아는 PARP1억제제를 써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피 교수는 "치료 솔루션에 대해 권고했지만 이것이 현실화되지 않았다"며 "약을 구할 수 있느냐, 약을 구할 때 누군가 서류를 써야 되는데 서류를 쓸 주치의가 있느냐 등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짚었다. 

이날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고경남 교수도 "국내 없는 약을 들여오는 과정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고, 국내 약이 도입돼 있어도 적응증이 없으면 사용할 길이 없다. 동정적 사용이 가능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가 필요하고 여기에 서류나 행정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노력이 든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모두가 희귀암인 소아고형암에서 치료목적사용승인 등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그 치료제를 신청하는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사실 소아암은 모두가 희귀암이고 거의 소아 대상 연구가 돼 있지 않아 허가를 획득하기 어렵다. 때문에 타깃 유전자에 대한 치료제 관련 성인암에 근거가 있으면 이를 허가하는 것도 필요하다.  

고경남 교수는 "제약사는 이미 성인에서 허가가 나서 소아에 대한 임상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식약처에서 소아에 맞게 허가 관련 전향적으로 바꿔줄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 최종적으로 환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제시했다. 

이날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성기웅 교수도 "소아암은 정부에서도 우선순위에 밀리고, 소아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은 제한적으로만 진행돼 왔다"며 "30~40년 전에 개발된 세포독성항암제로 치료하고 있는 소아암에 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아암 전문가인 의료진과 함께 소아암의 진단과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민관의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함께 끊겨진 소아암의 진단과 치료의 흐름을 만들어가는데 머리를 맞댄다면 난치 영역의 소아암에도 반전이 찾아올 수 있다.  

피지훈 교수는 "저희가 갈 길은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여러 바이오벤처와 제약사와 협업하면서 암의 취약점을 찾고 스스로 임상연구와 치료제 테스팅을 하는 것"이라며 이와 관련 모두가 협심해 실제 국내 소아암 환아의 생존율이 향상될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