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내분비종양 환우들 해외원정치료 등 떠미는 규제 변화에 청신호

복지부, 고시 통해 허초 루타테라 비급여 치료 횟수 확대안 제시   환우회, 정부안 환영…장기적으론 방사성의약품법 제정 필요해  강건욱 교수 "방사선의약품법 제정 외에 약사법 정비로도 가능"

2024-04-18     김경원 기자

신경내분비종양 치료제인 방사성의약품 '루타테라(성분명 루테튬 옥소도트레이오타이드)'에 대한 국내 치료 횟수 규제(급여 4회, 비급여 2회)로 어쩔 수 없이 해외원정치료를 떠나야 했던 환우들이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국내 치료권 보장에 청신호가 켜졌다. 

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진미향 회장에 따르면, 이달 4일 열린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의 간담회에서 보건당국은 신경내분비종양 환우들의 루타테라 해외원정치료 현실에 대한 적극적 개선 의지를 드러냈다. 이날 보건당국이 제시한 해법은 '허가 또는 신고범위 초과 약제 비급여 사용승인제도'를 이용해 치료 기회를 확대하자는 것이었다. 

의료기관에서 루타테라를 비롯해 루타테라와 똑같은 화학적 구조를 가진 루테슘 기반 방사성의약품으로 6회를 초과한 치료의 효과와 안전성 관련 의학논문을 심평원에 근거자료로 제시하면 적극 검토해 기존 4회의 급여 치료와 2회의 허가초과 비급여치료에 더해 의학논문의 근거에 기반해 허가초가 비급여치료 기회를 더 주겠다는 것이다. 

진 회장은 "이날 루타테라는 아니지만 루타테라와 똑같은 화학적 구조를 가진 루테슘 기반 방사성의약품으로 6회를 초과해 치료 후 효과와 부작용 등을 조사해 발표한 문헌 5개를 복지부와 심평원 담당자와 공유해 얻어낸 결과"라며 "이 자료들이 받아들여질지는 심평원 위원회에서 결정이 될텐데 당일 간담회 회의 분위기는 요양기관에서 신청서를 올리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신경내분비종양 환우들의 목소리로 국내 루타테라 도입에 적극적인 도움을 줬던 보건당국이 다시금 신경내분비종양 환우들의 치료현실 개선에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심평원이 "건강보험 급여 승인이 그렇게 났기 때문에 치료횟수 제한을 풀어주기 어렵다"는 답을 보내온 지 불과 20여일만의 달라진 태도이다.   

강건욱 교수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강건욱 교수(대한핵의학회장)는 "환우회와 정부의 간담회 이후 의료기관에서 근거 자료를 첨부해 허가 초과 횟수 확대 신청을 심평원에 제출하면 신속하게 검토하겠다는 복지부 오창현 보험약제과장의 메시지를 받았다"며 "현재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총 6개 병원 핵의학과 의료진이 각 병원 별로 자료 제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복지부가 제안한 '허가 또는 신고범위 초과 약제 비급여 사용승인제도'로는 국내 신경내분비종양 환우들이 해외원정치료를 떠나야 하는 현실을 완전히 막기는 어렵다.

현재까지 글로벌에 업데이트된 루테슘 치료 의학논문들은 최대 8회의 치료 효과와 안전성 프로파일을 담고 있는 까닭에 국내에서 이 제도를 통하면 현재보다 치료 횟수가 최대 2회 더 느는데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방사성의약품에 대한 임상시험은 다른 항암제의 임상시험과 달리 치료 효과가 입증되는 선까지 '최소한만' 이뤄진다. 방사성의약품은 다른 항암제와 달리 생산 단가가 비싸고 동위원소의 반감기가 짧아 운송비용이 많이 들어 임상연구 시 1회 치료 재료비만 약 1,000만원이 든다.

이런 까닭에 제약사는 방사성의약품 임상연구를 할 때는 약제의 효과를 입증할 수 있는 최소로 진행해 허가를 받는다. 그것이 루타레라의 글로벌 공통허가 사항이  '8주 간격의 총 4회 투여'가 된 이유이다. 

이같은 '최소 치료'로 유의미한 임상시험 데이터만 내도 우리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전문의료진의 의견을 존중해 횟수 제한으로 치료제의 사용을 막지 않는 까닭에 모든 제약사들이 방사성의약품에 한해서는 임상연구를 더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핵의학 치료 분야의 상식이다.   

신경내분비종양 환자가 서울아산병원에서 루테슘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 출처=서울아산병원

루타테라는 부작용이 없고 효과가 계속되면 신경내분비종양 환우들이 20번도 받을 수 있는 치료다. 그런데 핵의학 치료인 방사성의약품 임상시험의 한계로 현재까지 나온 임상연구 등의 근거자료로는 국내에서 루테슘 치료는 복지부의 안대로 개선해도 최대 8회만 가능해진다.  

정부는 현재의 복지부 고시인 '허가 또는 신고범위 초과 약제 비급여 사용승인에 관한 기준 및 절차'라는 기존 틀 안에서 해결해보려고 하지만, 임상연구가 담긴 근거 자료가 기반이 되는 복지부 고시로는 신경내분비종양 환우들이 해외원정치료를 내몰리는 현실을 완벽히 차단할 수 없는 게 국내 제도의 한계다.

진미향 회장은 "지금 당장 해외원정치료를 가야 하는 신경내분비종양 환우들을 위해 추가 2회라도 받아들여야 할 입장"이라며 "국내 루테슘 치료 횟수가 총 8회로 제한되는 것이라면 계속해서 개선 활동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음 국회에서 치료 횟수에 대한 제한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방사성의약품법이 제정될 수 있게 활동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강 교수도 "정부 제시 대로 국내에서 루테슘 치료 횟수를 지금보다 확대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심평원에 제출할 생각이지만, 이것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결과적으로는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가 제시한 방사성의약품법 제정도 해외원정치료를 원천 차단하는 하나의 대안이지만, 더 쉬운 방법도 있다. 바로 약사법 제54조인 '방사성 의약품' 조항에 관련 내용을 담거나 약사법 하위법령인 시행령, 시행규칙에 국내 암환자들이 방사성 의약품으로 횟수 제한 없이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강건욱 교수는 "현재 약사법에는 방사성의약품에 대한 조항이 마련돼 있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방사성의약품의 제조 및 수입 등에 필요한 사항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과 협의해 정할 수 있다'는 것이 전부"라며 "방사성의약품 관련 식약처장과 과기부 장관이 정하라고 한 내용 이외에 약사법을 비롯해 하위 법령들에도 방사성의약품에 대해 담긴 것이 하나도 없는데, 지금이라도 약사법에 방사성의약품의 특수적인 상황을 담아서 국내 암환자들이 우리나라에서 치료받을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