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면역질환 이야기] 선천성 면역결핍증, 한번쯤 의심해 봅시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최준식 교수

2024-04-19     최준식 교수

특발성 관절염, 루푸스, 베체트병 등등 희귀면역질환은 수없이 많지만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는 많지 않다. 유전성재발열증후군 같은 극희귀면역질환은 거의 정보가 없다. 선천면역결핍질환을 비롯해 어릴 때부터 나타나는 자가염증질환과 자가면역질환은 모두 만성적이고 중증도가 높지만 서서히 발병하는 데다 제대로 된 정보가 없어 진단과 치료에 어려움이 많다. 이에 코리아헬스로그는 국내 극소수 희귀면역질환 전문의료진이 모인 대한소아임상면역학회와 함께 <소아 면역질환 이야기>를 연재한다. 희귀면역질환을 앓는 환아의 진단과 치료에 좋은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면역결핍증이란 선천적, 후천적 요인에 의해 면역 기능의 일부 혹은 전부에 결함이 발생한 질환 또는 질환군을 통틀어 일컫는다. 유전자 단위에서 발생한 문제로 인하여 출생 시부터 결함이 있는 경우 선천성 또는 일차 면역결핍증(Primary immunodeficiency, PID)에 해당한다. 출생 이후 여러 가지 외부, 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면역결핍질환은 이차 면역결핍()으로 분류하는데, 대표적으로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 감염에 의한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 즉, AIDS나 조혈모세포 이식 및 항암 치료에 의한 일시적인 면역결핍 상태가 있다.

‘Bubble boy’'

선천성 면역결핍증이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된 계기는 1971년에 출생한 미국의 David Vetter라는 소년 때문이다. 선천성 면역결핍증 중에서도 가장 심한 유형에 해당하는 중증복합면역결핍(severe combined immunodeficiency, SCID)으로 진단받은 David는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제작한 특수한 멸균 풍선 안에서 생활하여 ‘Bubble boy’라고 불렸다. 먼 훗날 이를 모티브로 ‘Bubble boy’라는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그는 조혈모세포 이식 후 합병증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이후 많은 사람이 면역결핍질환에 주목하게 됐으며 그가 치료 받았던 텍사스 어린이병원과 지역 사회에서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다.

선천성 면역결핍증은 문제가 있는 유전자와 실제로 영향을 받는 기능적 이상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1999년 국제면역학회연합(International Union of Immunological Societies, IUIS)에서는 면역결핍증의 경고 징후(warning sign) , i)가족력이 있거나 ii)기존의 일차 면역결핍증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임상적, 면역학적 특징을 보이거나 iii)반복적, 지속적 혹은 심각한 중증 감염, 기회감염 등 통상적인 지역사회 감염의 특징과 차이를 보이는 일차 혹은 이차 면역결핍질환을 총 7개 질환군으로 분류했다. 이는 현재까지도 면역결핍질환 분류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일차 면역결핍증이 특징적인 증상과 징후, 검사 소견을 보이는 소수 희귀질환으로 한정된다는 문제가 제기됐고, 이후 분자유전학과 세포생물학의 발전으로 감염에 대한 취약 반응 기전이 상대적으로 더 명확하게 알려지면서 일차 면역결핍증의 영역은 점차 확대됐다.

이에 따라 전형적인 경고 징후를 보이지 않거나 일종의 면역 불균형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자가염증질환, 자가면역질환이 포함되는 등 일차 면역결핍의 정의 자체에 근본적인 개념의 변화가 일어나게 됐으며, 이러한 질환군까지 포함하기 위해 최근에는 일차 면역결핍증(primary immunodeficiency)’이라는 용어 대신 선천면역이상(inborn error of immunity)’이라는 용어가 상위 개념으로 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90개 정도로 알려졌던 일차 면역결핍질환은 현재 거의 500개에 달하며, 가장 최근 출판된 IUIS의 질환 대분류는 아래와 같다.

임상 진료 중 일차 면역결핍증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은 매우 다양하다. 일차 면역결핍증의 연구, 진단, 치료를 지원하면서 대중적인 홍보 활동을 병행하는 자선단체인 제프리 모델 재단(Jeffrey Modell Foundation)에서는 일차 면역결핍증을 의심할만한 10가지 징후를 한국어를 포함한 50개 언어로 배포하고 있다.

여기에 일부 또는 전부가 해당되는 경우는 당연히, 또한 상술한 바와 같이 일차 면역결핍증의 전형적인 특징에 해당하지 않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임상 양상을 보이는 예도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전문가 상담을 의뢰하거나 관련 평가를 진행하는 것을 권고한다.(제프리 모델 재단에서는 전 세계의 관련 임상면역학자 혹은 의사의 정보도 소개하고 있다.)

평가를 시행하는 경우, CBC, 일반화학 등의 기본적인 혈액검사 이외에 체내 면역글로불린 농도, 림프구 분율, neutrophil burst test, 특정 보체 농도, 특정 백신 접종 후 특이항체가 측정 등 다양한 검사를 시행해 볼 수 있다.

면역계를 구성하는 세포의 숫자나 기능에 어떠한 이상이 있는지를 살피며, 과거력, 자주 감염을 일으켰던 병원체, 자가면역질환의 증상이나 악성 종양 등 동반된 임상 징후를 종합하여 최대한 가능성 있는 진단 범위를 압축하며, 최종적으로는 분자유전학적 방법을 통하여 관련 유전자의 존재나 돌연변이 유무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전 양상 파악 및 향후 가족계획 상의를 위해 부모나 친척의 유전자 검사를 함께 시행하는 때도 있다.

일차 면역결핍증 환자들은 진단되는 질환에 따라 다양한 항생제, 항바이러스제, 항진균제 등의 항미생물제를 예방 목적으로 복용하거나 특정 세균에 대한 예방접종을 추가로 시행하기도 한다.

근본적인 치료 방법으로는 유전자 단위의 이상을 교정한다는 의미에서 조혈모세포 이식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조혈모세포 이식은 그 자체로 여러 가지 위험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질환 자체의 특성, 환자의 전신 상태나 동반된 장기 부전의 유무, 이식 후 예상되는 합병증 등 여러 인자를 고려하여 결정해야 한다.

또한 모든 일차 면역결핍증을 반드시 조혈모세포 이식으로만 치료할 필요는 없으며 부족한 물질을 보충하거나 특정 신호전달 체계를 차단하는 정도로도 충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증복합면역결핍증이나 만성 육아종증 같은 질환에서는 진단 후 가급적 빨리 조혈모세포 이식을 시행하도록 권고되고 있으나, 이미 몇 차례의 심각한 감염 질환이나 이로 인한 합병증으로 일부 장기 부전 등이 진행하여 조혈모세포 이식 과정을 무사히 마치기 어려워 보이는 환자에게는 고식적 치료로 여명 기간 삶의 질을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반면 X-염색체 유전 무감마글로불린혈증의 경우 B세포 이상에 의해 면역글로불린 농도만 저하되어 있으므로 약 3~4주 간격으로 면역글로불린 주사를 맞히는 방식으로 정상인과 비슷한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

최근에는 중증복합면역결핍증 중 일부 형태(Severe combined immunodeficiency due to adenosine deaminase(ADA) deficiency, ADA-SCID)lentivirus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를 시행하여 좋은 성적을 낸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진단 이후의 관리와 치료도 중요하지만, 환자가 중증 감염을 몇 차례 경험하게 되면서 결국 전신 상태가 악화하고 조혈모세포 이식의 위험성이 증가한다는 점에서 출생 후 스크리닝을 통한 고위험군의 조기 선별이 이상적인 방법으로 논의되고 있다. , 조혈모세포 이식이 시급한 질환을 우선 선별하고 최대한 이른 시기에 이식을 시행하여 치료의 성공 확률도 높이고 부작용은 최소화하자는 개념인데, 미국, 일본, 유럽 각국 등의 선진국에서는 물론,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신생아 스크리닝 검사에 면역결핍증이 포함되어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러한 스크리닝이 도입되지 않은 상태로, 국가 단위의 사업 시행을 위해서는 정확한 역학 자료가 필요한데, 2001년에서 2005년까지의 자료로 수행된 국내 다기관 연구에서는 일차 면역결핍증의 유병률을 100만 명당 11.25명으로 추산했다. 전 세계적으로는 500명당 1명이 일차 면역결핍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만큼, 전술한 국내 자료에서는 연구에 포함되지 못했거나 진단조차 받지 못한 환자들이 많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기존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후속 연구 및 지속적인 감시가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통해 정확한 유병률과 발생률 파악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임상 현장에서는 의사들의 많은 관심과 기존에 진단된 환자의 세심한 관리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국내 역학 상황의 파악에 도움이 될 환자등록체계의 개발이나 신생아 스크리닝 도입 등의 화제가 관련 학회와 전문가 집단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일차 면역결핍증 환자들이 조기에 진단되고 고통을 최소화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최준식 교수

최준식 교수는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전남대학교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삼성서울병원에서 소아감염 전임의를 수료하였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임상조교수를 거쳐 현재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진료교수로 재직 중이며 소아감염 및 면역질환을 진료하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대한소아감염학회, 대한감염학회, 대한항균요법학회, 아시아태평양 면역결핍증학회(APSID) 회원 및 대한소아임상면역학회 정보이사로 활동 중이다.